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나는 얼마짜리 인생인가

권영상 2012. 6. 21. 13:52

나는 얼마짜리 인생인가

 

                                        권 영 상

 

 

아침마다 옷장문을 열면 망설여진다.

옷장 안에 옷은 가득 차 있는데 마땅히 입을 옷이 없다.

‘오늘 또 뭘 입지?’

그러며 이것저것 뒤적이다 엊그제 입고 출근했던 옷을 또 꺼낸다. 아침마다 옷장 앞에 서서 머리 쓰는 시간만큼 성가신 게 없다.

 

“백화점 세일 기간이니 봄옷 좀 보러 가요.”

토요일, 집에 오니 나보다 먼저 퇴근한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옷장 앞에서 우물쭈물하던 내가 딱했던 모양이다. 백화점 가는 거 싫다는 내 말에도 아내는 이미 나를 데려 가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그간 딸아이 뒷바라지 때문에 옷 한 벌 변변히 갖추어 입지 못한 건 나보다 아내다. 아내가 고생하고 있으니 아내에게 옷이라도 하나 사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더는 버티지 않고 따라나섰다.

 

아내 말대로 우선 남성복 코너를 여기저기 돌았다.

“저 진한 베이지색 양복 괜찮은데…….”

아내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만하면 내 눈에도 괜찮아 보였다. 나는 아내와 함께 그 양복을 향해 다가갔다. 동시에 매장 점원도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아내가 입어보라고 옷을 내렸다. 하라는 대로 받아 입고 점원이 가리키는 거울 앞에 가 섰다.

 

오십 나이의 후반, 머리칼이 어느덧 반 백인 사내. 눈밑의 주름이 쳐지고, 피부가 빛을 잃어 한 눈에 보아도 맹렬한 기운이 한 풀 꺾인 모습이다.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 해도 대놓고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당당하지 못한, 그저 세상 위력에 눌려 근근히 살아온 모습이 얼굴에 읽힌다. 대쪽 같이 살아온 것도 아니고, 이렇다할 지조나 원칙도 없이 그저 상식 정도의 방식으로 살아왔으니 가슴을 펴고 거울을 봐도 거울 속의 사내는 왠지 어깨가 좁고 허리가 구부정하다.

 

그런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옷이 하나 필요해 보였다.

‘이만하면…….'

 나는 만족한 눈으로 거울 속의 어색한 사내를 바라봤다.

“당신한테 아주 잘 어울려요, 산뜻하고.”

아내가 내 표정 속에 숨은 마음을 읽었는지 살 것을 권했다.

대답 대신 가격이 적힌 택에 눈이 갔다. 순간, 나는 찔끔 했다.

 

“꼭 샀으면 좋겠어.”

아내가 마음에 쏙 들어했다.

바짝 다가와 선 점원도 너무 멋있다느니, 너무 젊어 보인다느니, 그런 상술로 합세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어보이며 뚜걱뚜걱 매장을 걸어나왔다. 마지못해 따라나오는 아내는 그만한 옷 찾기 어렵다며 자꾸 졸랐다.

 

“내가 입기에 너무 비싼 것 같아.”

내 말에 아내가 벌컥 화를 냈다.

“비싸다니! 그럼 당신은 도대체 얼마짜리 옷을 입어야하는데?”

나는 아내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고 색상이 마음에 안 든다는 둥, 좀 작아 보인다는 둥 이리저리 둘러대며 아내의 성화를 밀막았다.

 

결국 철 지난 매장에 들러 계절이 벗어놓은 옷 하나를 샀다.

그러느라 아내도 가벼운 옷 하나를 겨우 사들고 나왔다. 돌아오는 내내 아내는 연실 투덜댔다.

“당신 떳떳한 직장 있잖아. 마누라인 나도 그렇고. 자식도 그만큼 키웠어. 당신은 도대체 당신이 얼마짜리 인생이라 생각하는데?”

아내는 그 베이지색 양복을 못 산 게 계속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아내의 성화가 성가시기는 했지만 오늘, 나는 처음으로 내가 얼마짜리 인생인지, 이 세상에 와 쌀 한 가마 값이나 하고 사는지, 내 가격을 생각했다. 나는 얼마짜리 인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