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서 크는 타샤의 집
권 영 상
겨울 방학이다. 창밖엔 소리없이 하얀 눈이 내려와 있다. 주차해 놓은 아파트 승용차 위에, 단풍나무 마른 나뭇가지 위에, 길 건너 건물 옥상 위에 눈부시게 쌓여 있다. 하늘을 쳐다본다. 파란 하늘빛과 하얀 눈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모처럼만에 보릿짚처럼 노란 햇살이 쏟아지는 거실 바닥에 앉아 책을 읽는다. 지난 해 봄에 한번 읽은 <타샤의 집>이다.
여름이면 정원에서 허브를 따 말리고, 염색물을 들이기 위해 미역취꽃, 데이지, 층층이부채꽃을 딴다. 타샤는 풍요한 자연 속에 살면서도 뭐든 버리기 아까워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모두를 아끼고 소중히 생각한다. 먹고 남는 사과는 말리고, 콩이나 옥수수 브로콜리는 얼려서 잘 보관해 둔다. 그녀는 옷도 손수 짠다. 자신의 시간을 성실히 쪼개고 아껴서 베틀에 앉아 직물을 짠다.
“타샤가 물려받은 물레는 응접실에 버티고 있다. 언제든 짬이 날 때마다 물레질을 할 수 있도록 실패에 아마뭉치가 걸려 있다.”
나는 지금 <타샤의 집> 78쪽을 읽으며 거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겨울햇살을 본다. 햇살 속에 손을 밀어넣는다. 햇살이 곰질곰질 내 마른 손등을 간지른다. 나는 마치 쿠키를 굽듯 내 손등과 손바닥을 햇살 속에서 이리저리 뒤적인다.
타샤의 물레질 솜씨는 수준급이다. 물레에 꽂은 실패가 술술술 돌아가도록 자으려면 오랜 기술이 필요할 텐데, 그녀는 바쁜 중에도 시간을 어르고 달래어 물레질을 한다. 예전에 나의 어머니도 그러하셨다. 부엌 대솥 곁에 물레를 걸어놓고 누에실을 뽑으셨다. 나도 타샤의 삶을 지금 살고 싶다. 곤줄박이와 이야기하고, 꿀벌과 놀고, 냉이를 캐고, 염소를 길러 젖을 짜고, 우물을 파 닭들과 나누어 먹고. 너남없이 서로 아끼며 사는 삶을 살고 싶다. 떨어진 양말 뒤꿈치를 깁고, 짧은 청바지단을 풀어 늘이고, 못 입는 긴 팔 티셔츠는 짧은 팔로, 목이 좀 해진 한소대는 안에 잘 받쳐입는, 소박한 삶이 그립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타냐의 집>을 내려놓는다. 가만히 일어나 겨울 햇볕이 가득한 베란다로 나간다. 나무 상자에 부추와 쪽파가 크고 있다. 지난해 주말농장에 심어 기른 것들이다. 날이 추워지자, 무 배추만 덜렁 차에 싣고 왔다. 밭에 그냥 두고온 쪽파와 부추가 저녁마다 눈에 밟혔다.
“그 아까운 것들 그냥 얼려 죽일 셈이에요?”
나보다 아내가 두고 온 것들을 더 걱정했다.
그 며칠 뒤, 퇴근하자마자 밭으로 갔다. 눈 덮인 밭에 달빛이 환하게 쏟아지는 밤이었다. 나는 꽃삽을 들고 부추며 쪽파를 캤다. 밭은 찡하도록 얼어 있었다. 힘을 써서 잔디를 뜨듯 부추 두 이랑을 떴다. 그리고 쪽파도 캐어와 나무상자에 심었다.
우리 집에 들어온 지 34일째다. 따뜻한 집안으로 거처를 옮겨 그런지 그간 많이 자랐다. 초록 부추 한 잎을 떼어 맛을 본다. 싸아하니 맵다. 본성을 잃지 않았다. 베란다 햇볕이 쉬지 않고 함뿍함뿍 부추 상자에 쌓인다. 좀 안됐지만, 아내는 저 고운 부추잎을 추운 겨울에 잘라먹자는 거다. 부추야 슈퍼에 가면 얼마든지 있다.
아내가 그걸 모를 리 없고 보면 아마도 깨끗한 자연의 맛을 좀 느껴보고 싶다는 뜻 같다. 심어놓은 쪽파도 그간 바늘끝처럼 꼿꼿하게 일어섰다. 기특하고 대견하다. 요기 좁은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자칫 빈 밭에 내버렸을 생명을 보고 있으려니 행복하다.
어쩌면 <타샤의 집>도 이런 소박한 생명의 매혹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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