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타임머신
권영상
소나기 한 줄금 지나간 끝으로 손을 털고 일어섰습니다. 밤골에 내려올 적마다 마실 돌기가 잘 안 됩니다. 시골살이를 해보니 4, 5월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걸 알겠어요. 봄엔 이야기를 길게 하지 마라는 인디언 속담이 맞습니다. 그랬다간 씨뿌리고, 모종내고, 모종낸 걸 살려낼 시기를 다 놓칩니다. 다행히 오늘은 모종한 줄콩과 동부콩에 물 줄 일을 소나기가 대신해주어 마음먹고 일어섰습니다.
길 건너 장기 할아버지 밭엔 작년처럼 올해도 고추를 심었네요. 능소화 피는 집 땅콩 밭에도 작년처럼 땅콩 농사를 짓습니다. 큼직한 두둑에서 고추며 땅콩이 한창 성하게 커 오릅니다. 작년도 그랬지만 올해도 동네길은 꽃으로 요란합니다. 꽃빛이 쏘는 듯이 진한 붉은 색 꽃입니다. 하도 요란해 지나가는 분에게 꽃이름을 여쭈어 봤지만 그분도 모르네요. 패랭이 같이 생긴 다년생 꽃인데 길을 쭉 따라가며 피어있습니다. 외래종인 듯합니다. 내가 가끔 들르던 배나무집 마당엔 장미 두 그루가 크고 노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농원이나 화원에서 가끔 보던 탐스러우나 낯설기만한 장미꽃입니다.
자두나무집 마늘밭 길에는 꽃 양귀비가 피기 시작합니다. 밭가장자리에 들깨 한 포기, 콩 한 포기 더 심으시던 예전 아버지들과 요즘 농사법은 다릅니다. 농사도 짓고, 꽃도 심어 가꾸는 여유가 깃들어 있습니다.
안길이 거의 끝나가는 즈음에서 나는 발을 멈추었습니다. 뉘 집 담장 앞에 핀 접시꽃 때문입니다. 분홍색입니다. 줄기는 벌써 담장 높이만큼 꼿꼿이 커 올랐고, 꽃은 아래에서부터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하늘색 지붕을 한 집과 시멘트 블록 담장과 앵두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왠지 잘 어울립니다. 내가 꿈꾸었던 초여름 우리네 소박한 시골 풍경 그대로입니다.
누가 그 풍경을 옮겨놓은 듯합니다. 풍경도 풍경이지만 거기 피어있는 접시꽃이 정겹습니다. 무엇보다 그 꽃이름을 내가 알고 있대서 더욱 반갑습니다. 이름을 안다는 건 이 낯선 마을에서 고향 동무를 만나는 것 같이 가슴을 뛰게 합니다.
초가지붕이 하늘색 지붕으로 바뀌었고, 흙담장이 시멘트 담장으로 바뀐 것뿐 그 풍경이 내 마음을 꼭 움켜쥐네요. 고향에도 지금쯤 한창 접시꽃이 피고 있겠지요. 어린 시절 고향에선 접시꽃을 꼬꼬댁꽃이라 불렀습니다. 한자이름 촉계화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들은 빨간 접시꽃잎을 떼어 침을 발라 이마에 붙이고는 꼬끼오오! 소리치며 놀았지요.
나는 접시꽃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과거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접시꽃은 나를 먼 과거 속으로 데려가는 일종의 타임머신이네요. 타임머신이 가 닿은 곳엔 소년 시절의 젊은 어머니가 있고, 회색 두루마기를 입고 읍내에서 돌아오시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담장 앞에서 이마에 수탉벼슬처럼 꼬꼬댁 꽃잎을 떼어 붙이고 닭울음소리를 내던 동무들이 있습니다.
서해안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받아온 접시꽃 씨앗을 올봄 뜰에 심었습니다. 뜰에 앉아 그 옛날의 고향을 들락이고 싶었던 거지요. 근데 잎만 무성할 뿐 꽃대가 올라오지 않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태가 지나야 꽃대가 나오고 꽃이 핀다는군요.
화려한 외래종 꽃이 핀 시골길보다 내게는 아직 접시꽃이나 금잔화 봉숭아 맨드라미가 핀 풍경이 좋습니다. 그 꽃들엔 나의 과거가 온전히 묻어 있습니다. 아직도 나는 가끔 내 소년 시절을 그리워하곤 합니다. 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과거가 없다면 살면서 겪는 아픔을 무엇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요. 아픈 과거도 이제는 다 받아들일 나이에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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