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여름밤 별

권영상 2016. 6. 11. 13:09

여름밤 별

권영상




저녁을 먹고 집 앞 공원에 나갑니다. 공원엔 아이들 놀이터가 있고, 그 옆에 어른들이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며 운동기구가 있습니다. 오늘은 바쁜 아내를 꼬드겨 함께 나갑니다.



공원 커다란 플라타너스 아래엔 나무 벤치 둘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중 한 의자에 앉아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무가당 음료를 마십니다. 약간 어스름한 어둠이 좋습니다. 어딘가에서 흘러오는 컴컴한 바람이 참 좋습니다. 저쪽 느티나무 숲 위로 별 하나가 보입니다. 참 반갑습니다.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유년의 동무 같은 별입니다. 아내가 그 별을 보며 또렷이 시를 욉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아내는 아직도 마음에 ‘별 헤는 밤’이라는 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비록 한 부분을 외긴 했지만 그래도 나무숲 사이로 뜬 별을 보고 시를 떠올리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아내도 나처럼 시골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러느라 밤이면 싫도록 별을 보았을 테지요. 그런 때문일까요. 아내는 아직도 그 무렵의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조차도 별처럼 간직하는 것이지요. 그 무렵에 꿈꾸었던 동경과 시와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마저 보석처럼 마음에 보듬어 안고 있는 것이지요.



그 시절 우리들은 뜰에 나와 별을 세며 자신이 별처럼 순수하기를, 소박하나 향기롭기를 바랐지요. 그런 때에 다들 별을 보며 배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의 바깥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세계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걸 알게 됩니다. 넓은 우주 속의 이 작은 지구, 이 지구 속의 작은 우리나라, 우리나라 속의 작은 동햇가 마을, 그 마을 속의 작은 우리 집, 우리 집 식구들 중의 작은 나.

우주에 비하면 내가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밤하늘별을 보며 알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별을 보며 사는 사람은 겸손하다는 걸 배웁니다. 그 후, 어른이 되어 좀 잘난 척 할 때에도 우리는 그때에 배운 겸손과 겸양을 생각합니다.



그런 별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지 오래 됐습니다. 어쩌다 밝기가 큰 별이나 간혹 볼 뿐 별을 보기 어렵습니다. 놀이터에 나와 놀고 있는 저 아이들은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는 걸 알 리 없지요. 별을 보지 못하면 하늘의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정말일까요. 언제부터 겸손과 겸양의 미덕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고귀한 ‘나’라는 존재가 등장했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오만한 나입입니다. 그때로부터 내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입니다. 숨소리를 낮추고는 단 한 순간도 살지 못하는 ‘나’는 소란스럽습니다.



이 모두 별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후유증이 아닐까요. 믿기지 않겠지만 별을 보지 않고 우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2060년이 되면 대기오염으로 인구 100만 명당 조기 사망자수가 1109명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별을 되찾아 내야합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우주속의 소박한 존재라는 인간성도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세상을 되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