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날마다 낭떠러지 위를 걷는다
권영상
재작년 봄이다. 뜰 앞에 모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유실수를 심어두면 가을에 과일 거두는 기분을 맛보리라 해 오랜 고민 끝에 정한 나무가 모과나무다. 그때까지 나보다 새들이 좋아할 나무를 주로 심어왔다.
이식의 몸살을 마친 모과나무가 지난해에 꽃을 피웠다. 나는 가을이면 노랗게 익어갈 모과를 떠올리며 어서 열매를 맺어주기 바랐다. 그러나 내 꿈과는 달리 꽃만 피었다가 부질없이 지고 말았다. 그러던 것이 올해에는 튼실한 모과 열매를 맺었다. 쌀뜨물을 내어주다가 문득 쳐다본 나뭇잎 새에 파란 열매가 쑥 불거져 있었다. 그때부터 짬만 나면 살곰살곰 모과 열매를 보러 뜰에 나갔다. 애지중지 그를 사랑했다. 비록 나무가 열어놓은 열매라고 해도 사람의 자손처럼 귀엽고, 예쁘고, 신기하고, 볼 때마다 놀랍고 반가웠다.
“보여 드릴 게 있다오. 잠깐만요.”
우편 배달을 하시는 분이 마당 의자에 우편물을 놓고 나갈 때다. 내 부탁에 그분이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그분을 데리고 가 실궂하게 크고 있는 모과 열매를 보여드렸다.
어떠세요? 놀랍지요? 탐스럽지요? 신기하지요? 너무 잘 생겼지요? 파란 잎새에 숨어있는 모과를 찾는 그분에게 나는 성급하게 물었다. 모과 열매에서 눈을 뗀 그분이 나를 보더니 ‘예쁘지는 않네요.’그렇게 웃고는 서둘러 집을 떠났다. 보내놓고 생각하니 내가 우스웠다.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휴대폰 카메라로 모과를 찍어 바탕화면에 띄웠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모과 열매가 서울에 올라가 일을 보고 일 주일 만에 내려와 보니 없어졌다. 누렇게 쪼그라든 것이 나무 밑둥이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쪼그려 앉은 채 열매가 달려있던 모과나무를 쳐다봤다. 소년의 키만한 높이. 그 높이가 모과나무 열매에겐 위태로운 낭떠러지였다. 발길 한번 삐끗 하면 벼랑으로 떨어지고 말 거리. 그 거리를 멀쩡하던, 아니 탐스럽기만 하던, 아니 내게 노란 가을을 꿈꾸게 해주던 어린 목숨이 무슨 까닭에서인지 그만 자리를 바꾸어 앉고 말았다.
나는 쪼그라든 열매를 버리지 못하고 방안 책상 위에 놓았다. 아무 향기도 없는, 그저 풀냄새 정도나 나는 앳된 모과다.
그걸 무연히 바라보고 있을 때다.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가 고향 친구 k의 근황을 전했다.
“조기에 발견한 암이라 쉽게 수술을 마치고 쉽게 퇴원까지 한 거 너도 알지?”
친구가 그쯤에서 말을 끊었다. 나도 그가 쉽게 퇴원한 일에 안도했었다. 근데 그 쉽다는 것이 다행인 게 아니었다. 조기에 발견해 조기에 수술을 한 게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상태가 급속하게 악화돼 오히려 위중졌다는 거다.
전화를 끊고 친구 k를 생각했다.
그에겐 10여 년째 치매에 걸려 누워있는 어머니가 있다. 요양원에 보낼 수 없다며 직장까지 버리고 병수발 중인데 오히려 그가 당했다. 아니라고 했지만 친구는 그간 복병처럼 찾아오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던 게 분명하다.
내남없이 우리들은 날마다 숨어 있는 낭떠러지 위를 걸으며 산다. 앳되기 만한 모과도 아무런 이유 없이 낭떠러지 벼랑 아래로 떨어졌지만 세상에 까닭없는 일이 있을까.
언젠가 k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봐야겠다. 그가 애처롭기도 하지만 치매인 노모를 둔 그의 형편이 벼랑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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