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비오는 날이 좋다
권영상
점심 설거지를 마치고 한숨 돌리는데 비 온다.
오후엔 뜰앞 보리수나무 밑의 풀부터 좀 정리하려 했는데 글렀다. 건너편 숲이 요란히 흔들리는 걸 보니 잠깐 오고 그칠 비가 아니다. 한 주일 만에 안성에 내려왔으니 밀린 일이 꽉 찼다. 이 일이 밀리면 사나흘 머물렀다 올라갈 내 일정이 헝클어진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비도 이런 때엔 성가시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굵어진다. 나는 혹시나 하고 집어 들었던 호미를 놓고 처마 밑 의자에 눌러앉았다. 주변 농가의 밭들 모두 비닐로 멀칭을 한 까닭에 빗소리가 요란하다. 몇 곱절로 크게 들린다. 마치 개울물 소리처럼 소란하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건너편 숲에서 국국국 산비둘기가 비를 맞으며 운다. 사방이 소란스러운데도 시골이란 한적하다.
지난주에 한두 송이 피던 장미가 한창이다. 처음으로 장미 전지를 했는데 올바른 전지였는지 장미꽃이 푸짐하게 폈다.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가는 경계를 장미가 넘어서고 있다. 장미가 붉게 피면 어디선가 머뭇대던 여름이 불쑥 밀려온다.
5월 마지막 주중의 비를 맞는 붉은 장미를 본다. 비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장미가 폈구나 했는데 비 오니까 비로소 뜰앞의 장미와 마주한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장미는 이 자리에서 피었다. 오래 된 여름날의 추억을 만나는 듯 새롭다. 장미가 언뜻 피어오르던 나의 추억처럼 숙연히 비를 맞고 있다. 비를 맞아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삭이고 삭인 추억이다.
나는 할 일 없이 장미꽃 송이를 세어본다. 하나, 둘, 서이, 너이, 다, 여, 일곱……. 이름을 부르듯 한 송이 한 송이 그들을 불러준다.
장미는 내 안의 과거처럼 비를 맞고 있고, 나는 비를 피할 수 있는 이쪽 처마 밑에 앉아 있다.
꽃이었다고 여겨 왔던 것이 잘못이었다.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이 고통이었다.
슬픔이 깊으면 눈물이 된다.
가시가 된다.
눈물을 태워본 적이 있는가.
한철 불꽃으로 타오르는 장미
불꽃 심연
......
나호열의 시 <장미를 사랑한 이유>가 떠오른다.
가위를 찾아들고 일어섰다. 비를 맞고 있는 장미에게 다가가 꽃인 줄로만 여겼던 ‘고통’을 한 가지 잘랐다. 스파게티 소스를 먹고 난 빈병에 꽂아 식탁 위에 놓았다. 고통이 심해서 눈물이 되고, 그 눈물이 다시 가슴에 박힌 뽑을 수 없는 가시가 되었다. 너는 우리가 칭송해마지 않는 순수의 꽃이 아니라 한철 불꽃으로 타오르는 말할 수 없이 깊은 아픔이다.
세상에 아픔 없이 살아있는 것들이 어디 있으랴. 나는 천천히 장미꽃에 코를 댄다. 아픔의 강을 건너온 꽃답게 향기가 은근하고 깊다. 그의 심장에 깊이 박힌 가시의 눈물이다.
어딘가에 떠나가 있던 빗소리가 조용한 우리 사이를 비집고 식탁 주변에 모여든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적적하도록 시간이 텅 비자, 비로소 빗소리가 그 공허한 시간으로 들어서고, 무심히 보던 장미가 가시의 눈물로 들어와 나를 채운다.
가끔은 비 오는 날이 좋다.
생각해 보니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나는 맑고 해 뜨는 날만 사랑했다. 첫 소풍도 그렇고, 첫 출근도 그렇고, 이사를 할 때도 그렇고, 먼데 여행을 나갈 때도 나는 날 좋기만을 바랐다.
근데 언제부터였을까.
가끔은 비오는 날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단맛뿐 아니라 쓴맛마저 고맙게 받아들일 줄 알던 나이, 슬픈 일마저 내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된 나이, 어쩌면 그 나이에 들어서면서부터 비 오는 날도 사랑할 줄 알게 된 듯하다.
바깥에 비 내리는 적적한 비요일. 비요일 오후, 어디서 전화라도 한 통 걸려올까 싫어진다. 오랫동안 적적함과 단둘이 있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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