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얘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다

권영상 2015. 8. 23. 17:16

얘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다

권영상

 

 

 

 

 

얘가 정말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너무 뜨겁게 달라붙는다. 사랑도 이런 사랑은 싫다. 세상에 뜨거운 사랑 싫어하는 사람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뜨겁게 달라붙는 사랑만은 싫다. 사랑이라면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냉온방식으로 밀고 당기는 맛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얘는 자신의 정열을 일방적으로 퍼붓는 올인 방식이다.

내가 그애를 알게 된 건 지난 유월이다.

 

 

 

 

나는 테헤란로에서 그애를 만났다. 치과에서 나올 때다. 길가엔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만들어낸 푸른 그늘이 나를 유혹했다. 나는 그 그늘의 유혹에 이끌려 전철 탈 일을 포기하고 강남역까지 걸었다. 테헤란로의 자유로운 공기를 호흡하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로수 그늘을 들락날락하며 걷고 있을 때다. 그늘 바깥을 벗어날 때마다 누군가의 손길이 나를 그늘 속으로 들어서게 했다. 그가 누군지 몰랐지만 그의 손이 고마웠다. 그의 손은 뜨겁다면 뜨거웠고 따뜻하다면 따뜻했다.

하여튼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애의 손은 싫지만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나를 초록빛 그늘 속으로 들어서게 하는 지치지 않는 배려심이었다. 강남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애가 누구인지 알았다. 유월이라는 여름이었다.

 

 

 

 

그후 나는 그애를 또 다시 만났다. 이번엔 그애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30도가 웃도는 뜨거운 가슴으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애의 집적거림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창문을 열어놓아도, 선풍기를 켜도 그애의 집적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참다 참다 못해 나는 그애의 손에 잡혀 마을 쉼터로 가 실낱같은 바람에 몸을 식히곤 했다. 그애는 분명 나를 지치게 했다. 그 배려심 많던 애가 그렇게 집착이 강한 줄 나는 몰랐다.

 

 

 

그 애의 사랑은 7월로 접어들어서면서 더욱 거칠고 가혹했다. 그애와의 관계가 이렇게 발전될 줄은 몰랐다. 급기야 8월이 되자, 그애는 자신의 본성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나를 바다로 이끌었다. 암만 뿌리치려 해도 한번 잡은 손은 놓아주지 않았다. 그애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스타일이었다. 가끔 그애와 테헤란로에서 만난 일을 후회했지만 피할 수 없게 됐다. 간단히 물러설 애가 아니었다. 결국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동해안 북단에 있는 삼포해수욕장이었다. 거기서 그애는 보란 듯이 내 옷을 벗겨냈다. 2박 3일, 그애의 뜻대로 나는 벗고 살다시피 했으며 그래서 나는 지쳤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갈 일이 있다. 그애 덕분에 바다를 찾았다는 점이다. 나는 거기서 수평선을 보았고, 아늑한 섬과 바다가 베푸는 향연을 즐겼다. 놀랍게도 그애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엔 벼 이삭이 패고, 과원엔 사과가 굵고, 호수엔 잉어가 살찌고 있었다.

그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녹초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이제는 헤어지고 싶다. 8월의 고비도 넘어선지 오래다. 그러나 그애의 나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뜨거운 손을 놓으려하지 않는다. 얘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다. 지금으로 봐서 쉽게 떠날 것 같지 같다.

 

 

 

 

그애에 대한 푸념을 멈추고 좀 냉정해 본다. 그애를 이렇게 만든 건 누구일까. 지난 유월부터 연일 혹서를 경신하게 만드는 이 나쁜 버릇은 누가 들였을까. 그애를 성실히, 또는 겸손한 마음으로 대했는데도 이럴까. 어떻든 그애는 아직도 저쪽 가을이 오는 문을 버릇없이 가로막고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얘가 정말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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