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언제 한번 연락할게

권영상 2015. 8. 19. 18:28

언제 한번 연락할게

권영상

 

 

 

차를 몰고 가며 라디오를 켰다. 옛 친구들에게 보내는 30대 중반 남자의 음악 신청 사연이 흘러나왔다. 대학 시절에 친구 셋이 있었다. 자신감에 가득차 있던 때라 두려울 것 없던 셋은 군 입대도 함께 했고, 제대를 해서 복학도 다 함께 9월에 ·했다. 종종 술을 마셨는데 술에 취해 거리에 나서면 늘 ‘don't‘ look back in anger' 를 소리쳐 불렀다. 내 영혼이 떠나간다 해도 화내며 뒤돌아 보지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으니까 적어도 오늘은.

그렇게 서로에게 심장을 내어줄 듯 외롭지 않게 지내다가 헤어진 지, 벌써 10년.

사연을 읽어나가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여기서 끊겼다. 그러더니 회고에 잠긴 목소리로 다시 신청자의 글을 마저 소리내어 읽었다.

“그립다. 나중에 한번 연락할게!”

사연은 그렇게 끝났다.

 

 

 

나는 순간 혼자 웃었다.

‘정말 나중에 연락할까?’

그 말이 내 귀에는 그렇게 빈말처럼 들렸다. 물론 신청자의 생각은 나와 다를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 나중이란 내일이 될 지, 아니면 다음 주 중이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게는 그 말이 다르게 들렸다. 그냥 ‘어디서건 잘 살어!’ 그렇게 들렸다. 나중에 연락한다는 게 아니라 연락 한번 하고 싶을 만큼 그 시절의 추억이 그립다는 말 같았다. 그는 그런 그리운 추억을 가지고 정신없이 바쁜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느라 무려 10년이 걸렸다. 그에게 있어 그 정신없는 세월이 여유있는 세월로 바뀌지 않는한 ‘나중에 한번 연락’은 어렵다. 앞으로 10년이 더 걸릴지 20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어쩌면 한번 연락하고 싶다는 마음을 평생 간직하지만 연락 한번 못하고 살게 될지 그건 누구도 모른다.

 

 

 

 

우리에겐 다행히 이런 립서비스 차원의 관용적인 말이 있다. ‘언제 한번 봐’, 라거나 ‘언제 밥 한번 먹자’ 라거나 ‘나중에 술 한잔 해’ 그러며 굳은 악수를 하고 돌아서는 작별인사가 그 말이다. 아니 오랜 통화 끝에 아무 생각없이 쓰는 말도 그 말이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술 한 잔 할 때를 기다라는 사람 또한 없다는 것쯤 나는 안다. 그래서 야멸찬 작별인사 대신 우리는 오래도록 그 말을 애용해왔다.

 

 

 

"그래, 언제 한번 만나!"

 그러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적이 있다.

몇 년 전이다.

시집이 간행되자, 부천에 살고 있는 잘 아는 그분에게도 한 권 보내드렸다. 대개 누군가의 저서를 받으면 이메일이든, 엽서든, 아니면 휴대폰 문자로든 형식적이긴 하지만 잘 받았다는 답례를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분한테서는 한 달이 다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일이 바빠 잘 받았다는 말을 못했다며 ‘다음에 서울 올라가면 같이 식사나 해요.’ 그랬다. 나도 남들에게 다음에 술이나 한잔 하자는 말을 잘 쓰면서도 그분의 그 말은 곧이곧대로 믿었다. 식사나 하자던 그 연락은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없었다. 나는 한동안 그분의 그 인사말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살면서 나는 그 일을 잊었다.

 

 

 

올해에 간행된 내 시집을 그분에게 보내고 또 한 달을 넘긴 지난 유월이다. 그분한테서 전화가 왔다. 일본에 일이 있어 두어 달 나갔다가 방금 돌아왔다면서. 그분은 미안했던지 ‘한번 만나 식사해요. 제가 살 게요.’ 그랬다.

나는 뭐 그러실 것까지 없다면서도 “제가 안성에 내려가 4,5일씩 머물다 올라오곤 하니, 연락을 주신다면 2,3일 전에 주세요.” 그렇게 그분이 편하도록 대답해주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나 바보스러웠다. 그런 관용적인 인사에 한번 당하고도 또 그 말이 진심인 걸로 착각하는 내가 어수룩해도 보통 어수룩한 게 아니었다.

가끔 나도 쓰는 이런 인사치례 말에 허탈해 했을 나의 상대방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그때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아니, 나중에 한번 연락하겠다는, 보컬 오아시스의 노래를 신청한 그 젊은이의 말이 그 옛날의 우정만큼이나 진실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