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까지도 사랑해야지
권영상
메르스 감염이 주로 병원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에 문득 서형이 생각났습니다.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습니다. 별일없이 통원치료를 잘 받고 있다면서도 목소리에 힘이 없습니다.
서형에겐 오래도록 병원신세를 져야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서형의 아내는 신장이 건강하지 못해 일 주일에 두어 번씩 투석을 받으러 병원을 들락여야 합니다. 내가 알기로 그러는지 25,6년은 됩니다. 투석은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받아야하기 때문에 가끔씩 만나는 모임도 그 날짜에 겹치면 어렵습니다. 그런 거야 고충이라 할 수는 없지요.
지난해에 직장에서 퇴직을 하였으니, 서형은 직장을 다니면서, 자식들 돌보면서, 아내의 간병까지 맡아하려니 그 고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본인도 그렇지만 가족이 모두 힘을 잃게 마련입니다. 20년 가까이 몸져 누우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서형의 고충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가족과 함께 여행 많이 하세요.”
서형이 그 말을 하였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아내가 병석에 있으니 한시도 집을 비울 수 없을 테지요. 집에서 여자가 해야할 일이 또 좀 많습니까. 그 일을 도맡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형의 손이 아무래도 많이 갈 테지요. 그런 그가 1995년 마지막이었던 여행을 혼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기내에서 자신도 모르게 울었답니다. 왜 울었냐고, 서형의 속엣대답을 꼭 듣고 싶어 되물었습니다. ‘막막해서.’ 서형이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막막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완치되는 우환이 아니고 보면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서는 일은 어쩌면 이승에서는 요원할지 모릅니다. 한번 가보려고 해도 도저히 가 질수 없는, 벽앞에 서 있는 심정이 막막함이겠지요.
저번에는 간신히 날짜를 잡아 서울역 근처에서 저녁식사 모임을 가졌습니다. 한창 술기운이 돌 때쯤입니다. 소리없이 음식점의 열린 문으로 나가는 서형을 보았습니다.
“좀더 있다 함께 나갑시다.”
나는 얼른 뒤따라 나가 문을 나서는 서형을 잡았습니다.
“권형만 알고 있어. 9시가 넘으면 집사람이 우울해지는가봐. 옆을 지켜주려고.”
그 말을 남기고는 서부역 건널목을 투덕투덕 건너갑니다. 어두운 밤길을 건너가는 서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려니 마음이 찡했습니다. 서형은 모임이 있을 적마다 얼마쯤의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소리없이 사라지곤 했었습니다.
이 밤 아내의 병석을 지켜줄 사람은 서형 밖에는 없습니다. 분가한 자식들은 또 자식들이지요. 그들도 사는 일이 보나마다 우리의 그 시절이 그러했듯 바쁘고 힘들게 뻔합니다.
“내 그림자까지도 내가 사랑해야할 몫인 것 같아.”
서형은 그렇게 담담하게 사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그늘을 피하기보다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돌아섰습니다.
오늘 낮에 뜰에 나갔습니다.
뜨거운 볕에 채송화가 곱게 피었습니다. 참 색깔이 곱습니다. 유월이 떨어뜨려놓은 연지같이 예쁩니다. 근데 그 고운 꽃 뒤에도 꽃그늘이 숨어 있습니다. 예쁘고, 빛나는 존재의 뒤에도 다 어두운 그늘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꽃은 그늘로하여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 그늘을 딛고 고운 꽃을 피웁니다. 눈물에 젖었으나 이제는 눈물을 이겨낸 서형의 아름다운 사랑을 보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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