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권영상
아침밥을 지어먹고 눈사람을 만들러 마당에 나갔다. 제법 하얗게 눈이 내렸어도 눈뭉치를 굴릴 정도는 아니다. 삽으로 눈을 긁어모아 마당 가운데에 눈사람을 하나 만들어 세웠다. 눈 코 입을 만들고, 귀도 붙였다. 내 안에 숨은 오래된 소년이 아카시 한 가지를 잘라다 눈사람 머리 위에 얹는다.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대신한 그분을 닮은 눈사람이 됐다.
크리스마스와 아무 관계도 없으면서 나이를 먹어오는 동안 종교의 벽이 내 손에서 이미 사라짐을 본다. 다시 방에 들어와 일을 하다가 창문 밖을 내다본다. 눈사람이 혼자 우두커니 마당에 서 있다. 세상에 눈사람과 나 둘밖에 없는 듯 시골의 한낮이 고요하다. 이 고요함이 좋아 일이 있을 때면 일거리를 싸들고 안성에 내려와 고요함과 어울려 살았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고요함이 내 몸을 짓누른다.
늦은 오후, 저녁을 먹자는 핑계로 가까이에 있는 백암으로 나갔다. 내 마음에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와 있었다. 좀 번잡하고, 떠들썩한 크리스마스의 밤을 내 몸이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청미천 제방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걸어 시내로 들어섰다. 길거리엔 가로등이 켜지고 가게 앞 크리스마스 트리엔 반짝이 전구가 색색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내 몸이 아련한 추억속의 이런 풍경을 원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길모퉁이 작은 순댓국 집을 찾아 들어섰다. 탁자 세 개와 작은 난로, 그리고 눈사람처럼 우두커니 바깥 풍경을 내다보고 서 있는 주인아주머니 한 분이 전부인 집.
그 아주머니가 만들어주신 순댓국 한 그릇을 받아놓고 국그릇에 숟가락을 막 집어넣을 때다. “엄마!”하며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이는 바른쪽 점퍼 주머니를 두 손으로 감싼 채 난로 곁에 서 있는 제 엄마한테 다가왔다. 엄마가 그 아이의 주머니를 내려다보았다. 아이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참새였다.
“워서?”
그러며 제 엄마가 물었다. 골목길에서 주웠단다. 아이는 날개 다친 참새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호호 연실 분다. 그러더니 제 엄마를 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크리스마스 선물. 그렇잖아. 엄마.”
아이가 빈 음료수 종이 상자를 찾아들고 음식점을 나갔다. 집에 가 참새집을 만들어줄 모양이다. 문을 열고 나간 아이가 다시 빠끔히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엄마! 빨간약 테레비 옆에 있지?”
그렇게 묻고는 대답도 안 듣고 가버린다.
식사를 마치고 순댓국 집을 나온 나는 불빛에 번쩍이는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보는 대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내 몸이 백암으로 오고 싶어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번쩍이는 도심의 불빛이 아니라 순댓국 집 어린 아이가 보고 싶었던 거다. 쫓기듯 학원을 다니느라 날개 다친 참새 따위에 관심 없는 아이가 아니라 그걸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아이.
지금쯤 손바닥 위에 참새를 올려놓고 다친 날개에 호호 ‘빨간약’을 바르고 있을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아이의 착한 손길이 2013년 전의 이 무렵에 태어나신 성자를 닮았다. 집에 돌아오니 가시면류관을 쓴 눈사람이 컴컴한 마당에서 나를 반긴다.
<교차로신문 2013년 12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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