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웃게 해준 아프리카의 익살
권영상
“한 사람이 태어나 자신이 속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마쳤다면 그는 평안하게 안식을 취할 수 있다. 난 그런 노력을 다했다고 믿고, 그래서 영원히 잠잘 수 있을 것이다.”
넬슨 만델라의 어록 중 한 구절이다.
만델라는 그의 말대로 그의 임무를 마치고 영원히 잠자러 갔다. 잠 자러간 그를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은 요하네스버그로 모여들었다. 100여 명의 각국 정상들과 지도자들, 십여만 명의 조문 인파들, 그리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그를 추모한 전 세계 사람들. 그들 모두 만델라의 죽음 곁에 있었다. 그는 확실히 조화와 동등을 실현해낸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나는 그런 그의 삶에 감동했다.
영결식은 월드컵 개폐막식이 있었던 FNB 경기장에서 열렸고,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모여든 많은 조문객들은 아프리카인들답게 노래 부르거나 그들 특유의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그들은 그런 아프리카의 방식으로 ‘잠자러’간 만델라를 추모했다. 그것은 그들의 ‘건국의 아버지’를 향한 애정과 눈물과 안식의 기원이었다.
그날 영결식엔 오바마 대통령,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만델라의 민주화 동지 앤드루 음랑게니, 남아공 대통령의 추도사가 있었고, 아브라함 주교의 설교가 있었다. 그날의 가장 멋진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수화통역사 탐산카 잔트지에(34)의 수화였다. 그는 수화통역사답게 사뭇 진지하게 현란한 손짓언어로 세계 지도자들의 추모사를 신들린 사람처럼 통역해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난 다음 날, 남아공 문화예술부 장관의 사과가 있었다. 수화통역사의 엉터리 수화 때문에 수많은 논란이 빚어졌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말에 나는 또 한 번의 진한 감동을 받았다. 이거야말로 금세기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아프리카다운 영결축제라는 생각이 불현 들었다. 수화통역사의 ‘엉터리 통역’은 배고픈 아프리카가 전세계를 향해 던진 향기로운 익살이었다. 그는 세계 정치계의 내로라 하는 고수들을 따돌리며 전 세계인을 한바탕 웃겨주었다. 인종 갈등, 전쟁, 빈부 문제, 그리고 노동에 지친 인류에게 멋진 수화로 즐거운 웃음을 선사했다.
그의 익살은 하루가 지난 뒤에야 웃음을 폭발시킬만큼 고급스러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들 중에 전 인류를 이만큼 멋지게 웃게 해준 인물이 있었는가. 통역사는 자신의 익살에 넘어간 인류에게 사과를 한다며 이렇게 능청을 또 떨었다. 자신은 통역 당시 다른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고.
아프리카답지 않은가. 아프리카는 최초로 인류를 생산했으며, 인류의 모국답게 지칠대로 지친 세계인들을 한순간 웃음으로 구원했다. 이것이야말로 넬슨 만델라가 바라고, 아프리카가 바라던 추모식이 아니었을까.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위해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남은 인생을 여러분의 손에 맡기겠다.’ 만델라의 어록을 읽으면서 나는 웃는다. 그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고, 자신의 인생을 남의 손에 맡기겠다고 자꾸 그런다. 오늘따라 그분의 말이 왜 자꾸 익살스럽게 들릴까.
<교차로신문 2013년 12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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