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 커피집
권영상
연한 봄 느낌이다. 어제 기온이 영상 12도, 오늘이 4도, 내일이 영하 6도로 내려갈 거란다. 아무리 영하로 내려간다 해도 서울의 아침은 이미 봄 느낌이다.
올 겨울은 춥고 지루했다. 그 사이 안성 집에 수도가 동파 되었다. 집을 비워둔 사이 터진 물이 마당으로 쏟아져 나와 얼음바다가 되었다. 그 일로 안성을 오르내리며 예상에 없는 추위에 떨었다. 또 하나 큰일이 있었다. 아내의 퇴직이다. 아무리 원해서 낸 명예퇴직이라 해도 30년을 넘게 한 직장을 내려놓는다는 일이 허전했던 모양이다. 퇴직과 함께 그만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어제였다.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가려고 집을 나섰다. 저만치 있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을 때다. 황매화 가로수가 끝나는 곳에 세워진 손바닥만한 접이식 칠판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 칠판에 이런 글귀가 붉은색 분필 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봄, 너는 어디쯤이니?”
걸음을 재촉하던 나는 그만 멈추어 섰다. 누군가가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내를 병원에 둔 내 심정 같았다. 근데 그 화법이 독특했다. 마치 엊그제까지 봄과 통화를 주고받은 듯한 화법이다. 봄과 아주 절친한 사이처럼 느껴지게 할 줄 아는 이 인물이 누구일지 궁금해졌다.
바로 옆 길모퉁이에 조그마한 커피집이 있다. ‘서대리 커피집’. 그 집에서 내놓은 이를테면 영업용 칠판이다. 나는 가끔 그 커피집 앞을 지나치곤 했다. 그때마다 그 커피집이란 것이 얼마나 작은지 누가 소꿉장난을 하고 있나 했다. 아니면 누가 커피집을 내기 위해 미리 연습을 하고 있는 건가, 했다. 그만큼 작았다. 새끼손톱만했다. 고양이 이마쪽이 작다지만 그것보다 훨씬 작았다.
한길에서 골목길로 꺾어드는 모퉁이에 페인트가게가 있는데 그 가게 쪼꼬만한 귀퉁이가 그 집이다. 창구멍만 하나 달랑 뚫려있는 옛날의 담배가게, 딱 그만했다. 커피는 어디서 마시나? 나는 모른다. 마시는 이들을 본 적이 없으니까. 아마도 길에서 한 뼘 정도 들어간 오묵한 빈 자리가 그 자리일 거 같았다. 거기에 엉덩이만 간신히 올려놓는 나무의자 하나가 놓여 있곤 했다.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쑥쑥 들어서는 이 도시에서 요만한 커피집이라니.
그 가게 주인이 서대리인 모양이었다. 왜 하필이면 대리일까. 부장도 과장도 아닌 대리일까. 그 생각을 하며 나는 달려와 멈추는 버스에 올랐다.
병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내의 잔심부름이다. 냉장고 물을 꺼내달라거나 약을 달라거나 할 때 그 일을 도와주는 일, 그것도 아니면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주는 일이다. 밥은 잘 챙겨 먹느냐, 냉장고 몇째 칸에 뭐가 있는데 그걸 꺼내 어떻게 조리해 먹으라는 둥, 곰국은 가끔 가끔 끓여두어야 한다는 둥, 방청소는 자주 하느냐, 설거지는 제 때 하느냐, 벗은 양말 빨래통에 잘 넣느냐는 둥 그걸 싫지않게 들어주는 일이 나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근데 엊저녁에 아내의 머리맡에 꽂아둔 프리지아가 없어졌다. 꽃병도.
“호흡기 환자에게 꽃은 안 된다며 가져갔어.”
아내 말을 듣는 순간, 병원이 아내의 봄을 빼앗아간 느낌이 들었다. 꽃을 보면 아내도 봄을 기다릴 테고, 거기에 맞추어 얼른 일어나야겠다는 마음도 들 텐데.......병원은 그런 봄 따위엔 관심이 없고, 주로 비용을 많이 들여서 얻어내는 데이터에만 관심이 있는 듯 했다.
오후에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 집 가까이 올수록 봄을 기다리고 있는 그 서대리 커피집이 생각났다. 한번 들러보고 싶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내 걸음이 그 커피집을 향했다. 하나 있는 창문이 닫혀있다. 창문 위에 ‘커피 한잔 생각 하나’라는 푸른색 물감 글씨가 나를 맞는다.
“여보세요?”
나는 허리를 잔뜩 숙여 봄을 불러내듯 주인을 불렀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1500원이다. 이윽고 불 켜진 창문 안에서 커피 한 잔이 나왔다. 나는 두 손으로 봄을 받쳐들 듯 커피를 받아들고 나무 의자에 앉았다.
커피에서 봄이 모락모락 핀다.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
우표 한 장 부쳐서 강남으로 보내면
작년에 간 제비가 푸른 편지 보고서.....
커피 잔 속의 봄을 마시며 이 도시를 떠나간 봄을 떠올렸다.
그런데 봄은 먼데가 아닌 가까이 있었다. 바로 저 조고마한 창문 안에 있었다. 불 켜진 창 안에 있는 그 서대리란 분이 봄이었다. 그이가 그 작은 방에서 봄을 제조하고 있었다. 봄은 번듯한 프렌차이즈 커피점이 아닌 비좁고 컴컴한 방안에 있을 때 더욱 간절히 그리워진다. 그런 마음으로 만들어낸 커피에 봄이 묻어있을 수 밖에. 내가 커피를 주문하려고 고개를 잔뜩 숙여 창문 안을 들여다 볼 때 그 안에서 내다보던 반짝이던 눈빛, 어쩌면 그게 그분의 봄이었다.
봄을 마시고, 그 길모퉁이 커피집에서 일어났다.
“문 여는 시간 07:49 -18:06”
내 눈에 이 시간이 봄을 만드는 시간으로 읽혀졌다.
나는 봄을 읊조리며 그 집 앞을 나왔다.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
길모퉁이 커피집 봄이 벌써 내 입에 감염된 모양이다. 그냥 술술술 흘러나온다.
아내가 얼른 퇴원하면 여기 길모퉁이 커피집에 다시 와 봄 한 잔을 마시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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