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아빠 입은 옷 어떠냐

권영상 2015. 2. 21. 22:09

아빠 입은 옷 어떠냐

권영상

 

 

 

아내가 퇴직을 했다. 독감처럼 힘든 직장을 정리했다. 송별식사를 하고 돌아온 아내는 직장에 대한 애증 탓인지 독감으로 드러누웠다. 몸에 달라붙은 독감을 떼어낼 사이가 없었던 것이 독감을 키운 결과가 됐다. 끙끙 앓던 아내는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끝내 병원에 입원했다. 목이 붓고, 이명이 들리고, 기침이 심했지만 다행히 위험하지 않다는 말에 안도는 하고 있다. 입원한지 벌써 닷새째다.

 

 

 

아내 없는 집의 아침이 바쁘다. 내 손이 가야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딸아이와 대충 아침을 먹고, 대충 방정리를 했다. 점심과 점심 이후의 식사는 각자 밖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서둘러 옷을 입고 거실에 나왔다.

“아빠 입은 옷 어떠냐?”

딸아이에게 물었다.

“괜찮어. 춥지는 않겠네뭐.”

내 옷을 쓱 보더니 그랬다.

 

 

 

나는 집을 나왔다. 고맙게도 집 앞에 병원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지난 나흘 동안 그 버스를 타고 아내가 입원한 병원과 집을 오갔다. 어제는 늦은 밤 병원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날씨가 몹시 추웠다. 그 기억이 있어 오늘은 옷을 잔뜩 껴입었다.

버스에 오르는데, 버스에 탄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나를 일시에 쳐다봤다. 자리에 앉아 내 행색을 살폈다. 내피가 있는 등산용 점퍼에 목도리까지. 그것도 귀 달린 모자에, 마스크에, 장갑까지 끼고 앉아 있다. 의자 밖으로 쭉 내민 신발은 파란색 여름 운동화다. 내가 봐도 내 몰골이 우습다.

 

 

 

그때가 언제인가.

내가 막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의 어느 이른 여름날이었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면도를 하시고는 사랑방에서 옷을 챙겨입고 계셨다. 그날이 어쩌면 읍내에 장이 서는 날이거나 아니면 소중한 분을 만나러 가시는 날 같았다. 손 위 어린 누이는 아침부터 아버지 모시옷 다림질을 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이윽고 옷을 챙겨입은 아버지가 사랑방에서 마루로 나오셨다.

“애비 옷이 어떠냐?”

한 손에 중절모를 쥔 아버지가 겸연쩍게 나를 보셨다.

“괜찮아 보이는데요.”

나도 지금의 내 딸아이처럼 그렇게 말씀드렸다.

 

 

 

 

그런데 마당에 내려서서 걸어나가시는 아버지 옷차림이 이상했다. 모시옷이라 속옷이 얼핏얼핏 들여다 보였다. 속옷 위에 단이 짧은 바지를 받쳐 입어야 하는데 아버지는 그 생각을 못하신 것 같았다. 아니 그 옷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말씀을 못 드리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아버지는 이미 마당을 걸어나가셨다. 나는 그날 내내 속옷이 들여다 보이는 차림으로 다니실 아버지를 생각하며 가슴을 졸였다. 그때 어머니는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무려 16년 동안이나.

 

 

 

집에 어머니가 안 계시니 아버지 출입 옷차림이 궁색했다. 지금처럼 돈을 내고 기성복을 사입는 때가 아니고 일일이 여자의 손으로 바지저고리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구색을 맞추어 입으실 여력이 없으셨던 거다.

나는 그날, 아버지께서 그런 차림을 혹 아시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마음 아프셨을까,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걱정이었다. 어머니의 뒷바라지가 없는 아버지의 16년은 참혹한 시절이었을 테다. 내 옷차림을 보아줄 아내 없이 닷새를 살아보니 그 시절의 아버지 마음을 알 것 같다.

 

 

 

오늘따라 그 옛날의 아버지가 생각난다. 지금 딸아이도 어쩌면 내 행색을 생각하며 그 옛날의 나처럼 마음 졸이고 있는 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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