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을 걷는 잔재미
권영상
지금은 퇴직한 학교지만 내가 다니던 학교는 서울역이 가까운 언덕 위에 있었다. 퇴근을 하자면 공덕동 네거리에서 넘어오는 버스를 타고 남대문시장에서 내려 전철을 타면 된다. 고가도로 통행이 자유로울 땐 학교 앞에서 남대문 시장까지 단 한 정거장 거리였다.
그런데도 퇴근을 할 때면 그 길을 버리고 골목길을 택했다. 교문 곁에 난 골목길을 걸어내려 서울역으로 갔다. 길이 불편했다. 무엇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여름날 땡볕이 내리쬐거나 가을장마가 오래 지속될 때는 골목길이 싫을 만도 한데 나는 내게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그 길을 걸어 내렸다.
천성적으로 곧고 빤한 큰길이 싫었다. 큰길은 단조로워 길 걷는 맛이 없다. 사람에 따라 좁은 골목길보다 펀한 큰길을 애호하는 이도 있겠지만 큰길은 길이 펀하다는 것 외에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한다. 큰길에는 대의가 있을 수 있지만 골목길엔 대의에서 맛볼 수 없는 사소하고 정겨운 재미가 있다. 나는 그런 길의 비밀을 좀 일찍 알아버린 듯 했다.
교문을 나오면 바로 큰길 옆에 골목길로 꺾어드는 길이 있다. 처음부터 가파르다. 시멘트 계단 길을 걸어 내릴 때 내 눈에 먼저 띄는 것이 있다. 비탈에 가득 들어선 단층집들의 옥상이다. 옥상 빨랫줄에 하얀 무명 빨래들. 솜이불의 속청 같은, 아니면 아기 기저귀 같은 그 희고 윤기 있는 빨래가 바람이 흔들리는 걸 보면 고향집 같이 마음이 탁 놓인다. 힘들었던 나의 하루가 날아오를 듯 가벼워진다. 오후의 햇살과 어울려, 푸른 하늘과 어울려, 때로 흰 구름과 어울려 노는 마른 빨래의 모습이 좋다.
옥상 위엔 더러더러 고지박이 크고, 수세미가 크고, 호박이 크고, 여주가 익는다. 나팔꽃 순을 올려 옥상을 온통 보라색 꽃덩굴로 만든 집도 있다. 보통은 화분에 고추를 심거나 스티로폼 상자에 상추 가지 옥수수를 심거나 보리도 심는다. 바람이 슬렁슬렁 불 때의 푸른 보리 물결이 좋다. 대숲 곁에서 듣던 댓잎 수런거림을 옥수숫잎에서 듣는 일이 좋다. 옥상을 이렇게 만들 줄 아는 집주인을 만나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길갓집 머리 위 옥상에서 나는 소리라면 딸깍, 장독 뚜껑 여닫는 소리다. 아침이면 맑은 볕에 장독 뚜껑을 열어두었다가 저녁 이슬 내리기 전에 닫으시던 어머니의 손길을 그 소리에서 느낄 때가 좋다.
골목을 돌면 반지하 봉제공장 앞에 승용차가 서 있다. 사람 두엇이 간신히 지나가는 골목길에 어떻게 승용차가 들어왔는지 바짝 옹크리고 있다. 재미있는 건 그 승용차 앞 유리에 붙여놓은 큼직한 노트 한 장이다.
“3일만 있다가 갈게요. 미안함니다. 차 주인백.”
그런 글씨를 보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단 한 시간, 아니 몇 분만 길을 막아도 견디지 못하고 차를 세워놓은 이와 실랑이를 하고 말다툼을 하는 게 큰길가 평지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골목 사람들은 그들과 딴판이다. 이 좁은 골목길에 하루도 아니고 사흘씩이나 서 있겠다는 데도 아무 싸움이 없다.
골목길을 또 한 번 꺾어 돌면 옴푹 들어간 자리에 화분들이 나와 있다. 아름드리 고무그릇에 심어진 칸나다. 골목바람을 맞아 뒤척뒤척 잎을 뒤척이는 푸르고 큰 잎도 좋거니와 가을까지 쉬지 않고 피는 고 앙증맞은 다홍꽃빛이 좋다. 그 곁엔 라일락이 화분 속에 기대어 나이를 먹고 있고, 또 가지가 잔뜩 벌어진 분꽃이 있다. 이슬이 내리는 저녁 무렵 이 골목길을 지날 때면 수백 송이 분꽃 향에 취하여 꽃속에 코를 들이민다.
“선생님 퇴근하시네!”
골목 윗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모여 담소를 하시던 할머니들이 아는 체를 해주신다. 매일 걸어 오르내리는 나를 모르실리 없다.
“국어 선생님.”
내가 가르치는 과목까지 다 아신다.
“네. 그렇습니다. 분꽃 향기가 좋아서…….”
그렇게 인사를 드리며 굽이굽이 골목길을 걸어 내려오는 일이 도무지 심심하지 않다.
골목길을 거의 다 내려올 때쯤이면 길갓집 봉제공장은 바쁘다. 공장 전등불 아래에서 미싱을 돌리는 손이 빨라진다. 테이프리코더에서 박자가 빠른 노래가 쿵작쿵작 골목으로 쏟아져 나온다. 오늘 마감해야할 일감이 많이 남았거나, 얼른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맞아야할 일이 직공인 엄마들에게 있다. 서두는 그분들과 달리 달달달달 돌아가는 저녁 무렵의 미싱소리가 좋다. 봉제공장 앞길에서 혼자 돌멩이 장난을 하는 아이는 엄마를 바래러 온 게 틀림없다. 노란 학원 가방이 봉제공장 앞 계단에 놓여있다.
“권영상 선생니임!”
서둘러 길을 빠져나가는 내 등 뒤에서 누가 소리쳐 나를 부른다.
돌아다보니 저녁노을이 붉게 피는 길갓집 옥상 위에 한 녀석이 서 있다. 화분에 물을 주는 모양이다. 물조리개를 들어 올려 보이며 꾸벅 인사를 한다.
“오냐! 잘 있어라.”
나는 서울역이 보이는 국립극장 골목을 향한다.
길을 가다가 멈추어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다본다. 길은 집들 사이로 숨어버리고 해거름에 마을이 조용하다.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골목길은 저 언덕 집들 사이사이 숱하게 이어지고 얽혀 있다. 저 길을 다 걸어보고 싶어 퇴근이 이른 날에는 일부러 아직 가보지 못한 골목길을 멀리 돌아내려온다.
대의를 품으려면 큰길을 걸으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나는 내 인생의 30년을 골목길 걷는 재미로 살아왔다. 그래서 빤히 가면 금방 다다를 수 있는 승진의 길도 일찍 포기했다. 그보다는 사소한 나만의 행복을 더 소중히 여겼다. 그러니까 그 긴 세월동안 나는 인생의 잔재미에 빠져 산 셈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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