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다

권영상 2014. 11. 10. 13:11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다 

권영상

 

 

 

 

일요일 아침 전화가 왔다. 글 쓰는 동인 중의 한 분이 뜬금없이 ‘하늘 공원’에 억새를 보러 가잖다. 그분의 청도 고맙고 또 가을바람을 쐬고도 싶었다. 나는 우선 디지털 카메라의 배터리부터 충전했다. 카메라는 책상 서랍 속에 있었다. 지난 여름 앙코르와트에 다녀온 뒤 한 번도 꺼내보지 않고 넣어둔 카메라다. 앙코르와트에 갈 때도 나는 디지털카메라를 제일 먼저 챙겼다.

 

 


90년대 후반부터다. 나들이를 할 때면 디지털카메라를 챙겼다. 그 이전에는 주로 아날로그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아날로그카메라엔 필름이 뒤따른다. 장기간 여행일 경우엔 필름 값만도 졸연치 않다. 그러니 사진도 함부로 찍지 못했다. 머릿속에 구도를 그려본 뒤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라도 마음에 드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도 앨범에 정리해 놓고 보면 또 괜찮았다. 앨범은 장맛비가 지루하게 내리는 일요일이나 눈 내리는 겨울쯤에 보면 좋다. 혼자서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거나, 가족과 머리를 맞대고 보아도 좋다.

 

 


그런데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나가면서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캄보디아에 도착했을 때다. 나는 습관대로 부담 없이 사진을 찍어나갔다. 앙코르와트로 들어가는 해자를 건널 때는 흥분했다. 유적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 유적의 분위기에 젖기보다 셔터를 눌러대기에 바빴다. 그때쯤이었다. 안내자가 우리들에게 동행하는 현지인 카메라맨을 소개했다.


 

 

“사진 찍고 싶으신 분 있으면 이 분한테 부탁하세요. 오후에 인화한 사진 드릴 겁니다.”
한 장에 사진 값 일 달러를 받는다고 했다. 카메라를 제 손에 들고 있는데 뭣 하러 내 얼굴을 남에게 맡기느냐며 나는 뒤로 물러섰다.

“우린 신청하겠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제일 먼저 신청한 사람이 있었다. 30대 젊은 부부였다. 그들은 우리 팀 중에서 제일 좋아 보이는, 망원렌즈가 달린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이렇게 사진 많이 찍어가도 집에 가면 한 번도 안 보게 됩니다.”
그가 그랬다. 그 말이 참 옳았다. 결국 나도 신청했다. 신청을 하고 생각하니 내 손으로 찍는 이 촬영 행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비용을 주고 사진 몇 장 받아가면 될 일을 보지도 않을 사진을 왜 습관처럼 찍는가. 무엇보다도 내가 앙코르와트 유적을 보러온 게 아니라 일삼아 사진을 찍으러 온 것 같아 한심스러웠다.


 

 

귀국하면 그때부터 일상은 또 바빠지고, 디지털카메라는 서랍 속에 들어가 다음 여행 때까지 휴면할 게 뻔하다. 여행에 대한 이미지와 추억도 그렇게 디지털카메라 속에 갇힌 채 잊혀지고 만다. 일 달러씩 주고 받아온 사진만이 바쁜 일상을 얼마간 버티다 그마저 사라진다. 언제부턴지 디지털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여행도 그렇게 일회용 나들이가 되고 말았다.
카메라를 들고 아파트 마당을 나서다가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디지털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사진을 찍는데 정신을 파는 대신 온몸으로 가을억새의 분위기에 젖어볼 생각이다.

 

(교차로신문 2013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