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변할 줄 알았는데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권영상 2014. 11. 10. 13:02

변할 줄 알았는데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권영상

 

 

 

 

일과처럼 아침에 메일함을 열었다. 오랫동안 안 보이던 제자한테서 편지가 왔다. 나이 20대 후반의 그녀의 편지에 슬프디 슬픈 소식이 담겨있다. 그이는 내가 심사한 모 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분으로 그때 그 고마움을 못 잊어 가끔 메일로 소식을 전해오는 이다.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미혼의 여류이다.

 

 


하필이면 이런 우울한 이야기를 선생님께 해드려도 되나 모르겠다. 어떻든 내 슬픈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다. 또 왜 그토록 오랜 날 동안 편지를 드리지 못했는지 그 연유를 알려드리기 위해서도 이 이야기는 꼭 해야겠다.


그러면서 그 우울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간 몸이 안 좋으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다. 나는 그 말에 놀랐다. 큰 딸이 이제 20대 후반이면 아버지는 아직 한창 젊은 나이일 테다. 무엇보다 먼저 그분의 죽음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선생님, 근데 너무 놀라워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변한 게 하나도 없어서 그래서 더 슬퍼요. 해도 뜨지 말고 달도 뜨지 말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나는 그 편지를 읽으면서 아버지를 잃은 그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서른 중반에 아버지를 잃었다.
나는 그 무렵 겨우 한 살짜리 딸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 밑에서 30여 년을 아버지와 살았지만 아버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나이였다. 그럴 때에 아버지를 잃었으니 더욱 아버지의 죽음에 통한을 느꼈다.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흙에 매달려 이름 없이 사셨다. 거기다가 수십 년간 어머니의 병석을 지루하도록 지키셔야 했다. 지어미의 병수발을 드시다가 어느 외로운 고비에서 아버지는 그만 세상을 뜨시고 말았다. 그러니 그분의 생애야말로 고된 노동과 고된 우환에 짓눌려 하루도 편할 날 없이 사신 고난의 세월이었다. 그 아버지를 모르는 내가 아버지가 된 일에 눈물겨워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20대 큰딸의 절망감은 또 얼마나 클까. 그의 말대로 아버지의 부재 이후의 세상엔 해도 뜨지 말고 달도 뜨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의 존재감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해와 달은커녕 자신들의 일상에서조차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을 더욱 애달프게 한다. 아버지란 기껏 이런 존재인가.

 

 


아버지란 늘 자식들의 바깥을 돈다. 같은 부모면서도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거리를 좁힐 수 없는 먼 존재다. 그러니 자식에게 있어 아버지란 얼마나 난해한 시와 같은 대상인가. 하물며 딸이 느끼는 거리감은 더욱 아득하지 않을까.

나이 스물. 미처 아버지를 이해해 보기도 전에 아버지의 부재와 맞부딪힐 때의 망연함. 어쩌면 그것 때문에 그는 아버지 사후의 변하지 않는 세상이 슬펐는지 모른다. 사람 사는 세상의 일이란 모두 무상하다.

 

(교차로신문 2013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