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멧돼지 붙잡겠다고요?

권영상 2013. 11. 10. 09:27

 

멧돼지 붙잡겠다고요?

권영상

 

 

 

 

 

시계가 오후 2시쯤에 가 있다. 하던 일을 놓고 일어섰다. 서울에 올라가 살다온 일 주일 동안 논벌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어여 한 바퀴 돌고와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나는 신발을 갈아신고 등산용 스틱도 들었다.

집을 나서 벽장골 언덕에 올랐다. 가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논벌엔 그 좋던 벼들이 다 사라지고 없다. 벼를 거두워들인 뒷자리엔 탈곡한 볏짚을 포장한 하얀 원형 볏짚단만 여기저기 서 있다. 오직 남은 거라곤 근방의 푸른 김장밭뿐이다.

 

 

 

김장밭 사잇길로 들어설 때다.

“더이상 가지 말아요.”

목수 아저씨 최씨가 목수실인 비닐하우스에서 나와 손을 내젓는다.

나는 가던 발길을 멈추고 우선 인사부터 드렸다. 그분도 여기 토박이는 아니지만 나보더 먼저 정착한 이다. 목수 일만 하시는 게 아니라 농기계도 부리는 분이다. ‘목수 아저씨 최씨’라는 말은 여기 분들이 그렇게 부르는 호칭이다. 그렇지만 나는 한번도 그렇게 불러본 적은 없다.

 

 

 

“가면 안 돼요.”

그분 표정이 심상찮았다.

“왜지요?”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분을 바라봤다.

“멧돼지가 그쪽으로 달아났어요. 두 마리나.”

그분은 내가 가려는 벽장골 너머 고래골 논벌을 가리켰다.

방금 총을 든 포수 두 사람이 여기까지 차를 몰아와 세워놓고 멧돼지를 뒤쫓아 갔단다. 그러고 보니 장정 두 사람이 논벌로 난 논두렁을 걸어가는 게 보였다. 큰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가 여기 무밭을 밟아치다가 최씨 아저씨 비닐하우스를 뚫고 논벌로 달아났단다. 두 눈으로 생생히 봤는데 어금니가 삐져나온 놈의 행패가 이만저만이 아니더란다.

 

 

 

그게 사실인 듯 했다. 최씨 아저씨 비닐하우스에 구멍 두 개가 펑 뚫려있었다. 또 하나 그 말이 사실일 것 같은 증거가 있다. 내가 여길 지날 때면 늘 짖어대던 최씨 아저씨네 누렁개가 오늘은 제 집에 틀어박혀 꼼짝을 못하고 있다.

“그러지 말고 우리 붙잡으러 가죠?”

나는 농삼아 너스레를 떨었다.

“요즘 멧돼지들 사람 안 무서워해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최씨 아저씨가 정색을 했다. 하긴 도심에 나타난 멧돼지가 사람한테 덤벼들어 상처를 입힌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기는 하다.

“마침 저녁밥 짓기 전이라 잘 됐네요.”

나는 포수가 잡기 전에 우리가 먼저 쫓아가 멧돼지를 붙잡아 어깨에 메고 오자고 또 한 번 농을 했다.

“쫓아가서 멧돼지를 붙잡는다고요?”

최씨 아저씨 얼굴이 하얘졌다.

그러더니 턱 없는 소리 말라며 목수실인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망설여졌다.

고래골로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멧돼지가 달아났다면 벌써 고래골 밖으로 도망쳐 갔을 것 같았다. 총을 들고 사람이 뒤따라 오는데 들판을 서성거릴 멧돼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내 안위를 위해 가지 말라는 아저씨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는 것도 그랬다. 멧돼지가 500리 밖으로 달아났다 해도 그건 도리가 아닌 듯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돌아섰다.

그때였다.

논벌에서 꽈앙, 하는 총소리가 났다. 나는 뒤돌아섰다. 또 한발의 총소리가 들판을 울렸다. 논둑에 쪼그려 앉은 사람의 총구에서 일순 푸른 연기가 올랐다.

“어떻게 됐어요?”

비닐하우스 안에서 최씨 아저씨가 또 나왔다.

도랑둑에서 올라온 멧돼지가 논벌을 달려 건너편 숲으로 숨어들었다. 그 뒤를 포수 둘이 뒤쫓았다. 제 집에 틀어박혀 있던 누렁개도 총소리에 놀랐는지 나왔다. 우리 셋이는 나란히 언덕에 서서 논벌을 바라봤다.

“이제 꼼짝없이 잡혔구만.”

최씨 아저씨가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멧돼지가 숨어든 숲은 보기엔 숲이어도 큰도랑을 따라난 좁은 띠 같은 숲이다. 그 숲 뒤는 다 캐어버린 수천 평 고구마밭이다. 그러니 금방 노출될 거라는 말이다.

 

 

 

나는 그쯤에서 돌아섰다.

나온 김에 아랫말이나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었다.

아랫말을 한바퀴 돌아 집에 들어서려는데 골목길에 사람들이 모여섰다.

내가 다가가자, 우리 집 건너편 파란 지붕 할머니가 나를 붙잡는다.

“혼자 들길을 쏘다니지 말아유.”

얼굴에 나를 대하는 걱정이 가득하다.

“대체 뭔 힘이 있다고 멧돼지를 붙잡는대요! 세상에 그런 얼토당토 않는 얘길랑은 마서유.”

그러면서 나를 나무라신다.

 

 

 

내가 최씨 아저씨한테 한 말이 벌써 빙 돌았나 보다.

나는 웃으며 그냥 농담삼아 한 말이었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들 말에 의하면 좀 전에 포수가 멧돼지를 잡아 차에 싣고 갔단다. 어금니 허연 멧돼지를 직접 보았을 테니 무섭기는 무서웠겠다.

나는 알겠다고 인사를 드리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멧돼지 붙잡겠다고 달려들면 바로 갑니다.”

옆집 양형이 자기 집 대문간에 비스듬히 서서 어금니로 휙 긋는 시늉을 해 보인다.

농담삼아 한 말이었는데, 여기 사람들은 그런 말하는 내가 위태위태해 보이는 모양이다. 집안에 들어앉아 밥이나 해먹는 내가 멧돼지를 붙잡겠다니! 내가 이 분들의 걱정거리가 될까 또 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