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집 사이에 담장이 없다
권영상
양형이 사는 집과 우리 집 사이엔 담장이 없다. 양형이 우리 집에 올 때면 경계선 하나만 넘으면 된다. 나 또한 양형집에 볼일이 있을 때면 ‘양형, 안에 계신가요?’하며 그 경계선을 넘어 양형네 마당에 든다.
경계선이라는 게 시멘트로 만들어놓은 배수구다. 그러니까 배수구를 사이에 두고 양형집이 있고, 그 이쪽에 우리 집이 있다.
담장이 없어 서로 오가기는 좋다. 그러나 양형네 부엌 창문이 너무 빤히 보이고, 그 집 거실에서 주고받는 높은 목소리가 다 들린다. 양형네와 우리 집 사이에 텃밭이 있는 데 거기에 나갈 때면 그 집 창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텃밭이라면 그냥 방안에서 입던 옷을 입고 쭈르르 나가고 쭈르르 들어오고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 나갈 때마다 옷을 바꾸어 입는 일이 번거롭다.
“담장을 해야 될 것 같아.”
언젠가 안성에 내려온 아내도 그 상황을 마뜩찮아 했다.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나는 망설였다.
내가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한 것은 아직 시골생활에 적응을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가끔 토요일 한번 내려온다. 그에 반해 나는 한 달에 보름을 여기서 혼자 머문다. 처음 혼자 내려왔을 때엔 방안에 불을 다 켜놓고 잠을 잤다. 집 가까운 길가에 보안등이 켜져 있긴 해도 나는 캄캄한 밤이 무섭다.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집은 저 혼자 깜짝깜짝 놀랄 소리를 낸다. 아무도 없는 안방이 쿵, 울거나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딱, 소리를 낸다. 이유도 없이 화장실 창문이 덜컹, 한다. 그때마다 몸이 바짝 긴장을 한다. 어쩌다 간신히 잠에 들었다 해도 긴장을 해 그런지 새벽 한두 시쯤이면 눈이 뜨인다.
인적 없는 설악산 백담계곡이나 천불동 계곡을 이슥한 야밤에도 혼자 걸어오르거나 걸어내린 적이 내게는 있다. 만신이 득실댄다는 산중의 밤도 그리 무섭지 않다. 그런데 집안에서만은 다르다. 눈을 감으면 무섬증에 시달린다.
무서워 몸이 옴츠러들면 용기를 내어 집바깥에 나가본다. 마당에 나와 괜히 헛기침을 해 보고, 별을 향해 팔을 휘둘러도 본다. 그러다가 옆집 양형네 부엌 창문에 켜져있는 빨간 불을 볼 때면 내 무섬증이 괜한 것임을 알고 금방 안심한다.
내 형편이 그렇고 보니 담장을 쌓으라는 아내의 말에 망설일 수 밖에 없다. 집과 집 사이가 열려있어 그런 점에서는 좋다. 한데 너무 펀하다는 게 문제다. 내 동선이 다 노출된다.
나는 꽉 막힌 담장보다 어느 정도 시야가 열려있는 나무 울타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키 작은 황금측백나무나 늦은 봄꽃이 좋은 조팝나무, 단풍 좋은 화살나무 울타리를 생각하다가 요즘 결정한 것이 있다. 남천이다. 사철 푸르면서도 열매가 붉고 이국적이다.
내년 4월이 오면 양형과 우리집 사이에 담장 삼아 남천을 심을 작정이다.
그런데 요 이 주일쯤 전이다.
우리 집으로 건너오는 양형네 끝마당에 개집 두 개가 놓이더니 이내 흰둥이 두 마리가 매어져 있었다. 새끼 강아지보다는 큰 중개였다. 내 방 책상에서 의자를 뒤로 빼면 창을 통해 바로 건너다 보이는 자리이다. 가끔 내다보면 얼굴과 눈이 꼭 닮은 쌍둥이 같은 흰둥이가 엎드린 채 나를 본다. 또 어떨 때는 나와 눈길이 마주치면 으르렁대거나 짖어댄다. 내게 덤벼들 듯이 껑충거리며 짖기도 한다. 어쩌다 텃밭에 나갈 때면 제 주인이 들으란듯 더 큰소리로 짖어댄다. 눈을 맞추면 더 험한 꼴을 볼 것 같아 모르는 척 한다. 그래도 상추밭에 가 앉은 내 등에다 대고 여전히 으르렁거린다.
“성가시게 개집은 왜 거기다 놓고 그래.”
개가 짖으면 나는 말은 못하고 주먹만 들어 개를 을러메곤 했다.
그러긴 하지만 개란 또 얼마나 영리한 짐승인가. 나와 친숙해지는 눈빛이 하루가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 커텐을 열면 흰둥이 두 마리가 반기듯 나를 본다. 잘 잤냐? 하고 물으면 까만 눈으로 응, 하듯 나를 빤히 본다. 안 추웠어? 밤에 별도 보고? 북두칠성도 보고? 무섭진 않았어? 그러며 자꾸 물으면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어 준다.
전 같으면 아침에 다락방에 올라가 바깥 풍경을 내다보거나, 일을 하다가도 쉴 참이면 차를 한잔 마시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의자를 뒤로 빼어 창문 바깥을 내다본다. 내가 그리로 소리없이 눈길을 보내면 흰둥이들은 금방 낌새를 채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뭐하냐?”
내가 입모양만으로 물어본다.
“안 들려요.”
흰둥이가 눈을 크게 떠 보이며 그러는 것 같다.
“뭘 보고 있냐구?”
나는 그제야 소리를 내어 묻는다.
그러면 흰둥이는 은반지처럼 동그랗게 말아올린 꽁지를 하고 낑낑댄다. 내 물음에 제대로된 응대를 해주지 못하는 자신이 미안한 모양이다.
흰둥이는 내 눈을 피해 배추밭 아랫길을 향해 컹컹컹 짖는다. 거기 검정개 한 마리가 굼실굼실 지나간다. 양형 옆집 대추나무집 새끼낳은 개다.
“안에 계신가요?”
소주 두 병을 들고 오늘 낮에 양형이 왔다갔다.
“꿔간 술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양형이 내 손에 들고온 소줏병을 건네며 “개가 저기 있으니 심심하지 않지요?” 하고 묻는다.
“요즘 사귀는 중입니다.”
나는 순간 그렇게 대답했다.
“저 놈들 저기다 왜 두었는지 아세요?”
양형이 빙글빙글 웃으며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대신 “글쎄요”하며 양형을 쳐다봤다.
“선생님이 하도 무섭다 무섭다 하기에 저놈들더러 동무해 드리라고 조기 놓아드렸지요.”
뜻밖에도 양형이 그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여름, 우리 집에 온 양형과 첫인사삼아 술을 한잔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무섬증이 많아 밤에 잠자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했었다. 그 말을 양형이 여태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사실인가요?”
"그렇잖으면 뭣하러 저기 길목에 개를 두 마리씩이나 두겠어요. 하여튼 그쯤 아시고 밤을 잘 보내세요.”
그러고는 양형이 돌아갔다.
개집을 왜 거기다 놓았냐며 불만을 가졌던 내가 미안해졌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적지만 양형에게는 그런 배려심이 있었다.
그러고 나니 또 고민이 생겼다. 양형집과 우리 집 사이에 남천 울타리를 굳이 만들어야 할 건지 말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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