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치기
권영상
봄이 되면 자연히 할 일이 많다. 감자밭에 거름을 내어 감자를 심어야 하고, 볍씨를 꺼내 안마당 독에다 볍씨를 담그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푸릇푸릇한 보리골을 매어주어야 한다. 사과나무·복숭아나무·배나무·자두나무 과수의 가지를 쳐주어야 하고, 논 가득히 물을 받아 깨어진 논둑을 손보아야 한다.
그 많은 일 중에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우물치기다. 산간에서 혼자 아침 저녁으로 떠 먹는 샘물은 아무 때고 물바가지로 샘을 치면 된다. 손바닥만한 것이니까 샘안에 들어온 낙엽이나 거머리쯤 치우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우물은 좀 다르다.
시골, 우리가 먹는 우물엔 여섯 집이 기대어 살았다. 그런데도 우물이 적잖이 컸다. 돌로 탄탄하게 쌓아올리고 거죽엔 시멘트를 입혔다. 양쪽엔 물동이를 얹기 좋게 넓적한 턱을 만들어 놓았다.
아버지에게 듣기론 대한제국 때부터 있어온 우물이라 했다. 우물 밖은 너럭바위로 둘레를 평평하게 만들었다. 거기에선 주로 빨래가 이루어졌다. 아무리 빨랫감이 많아도 너럭바위는 모자라지 않았다. 애들 놀이터로도 좋았고, 물 한 두레박을 마시며 온갖 수다를 떨기에도 좋았다. 너럭바위 사이로 흘러내린 물은 아랫쪽에 만들어둔 미나리밭에 모여들었다. 미나리밭은 넓었는데 그 모서리에 늙수구레한 미루나무 한 그루가 가끔은 텅 빈 우물을 지켰다.
긴 보리밭 들길에서 우리가 사는 마을을 보면 분홍 살구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우물갓집 살구나무다. 키가 크고, 거기에 걸맞게 꽃이 좋다. 살구꽃 한창 벙글 때 보면 우물갓집은 꽃그늘에 묻혀 훨훨 타오르는 것 같았다. 집집마다 울 곁에는 복숭아나무가 있다. 사철나무, 모과나무, 측백나무, 고욤나무, 가중나무, 대추나무에 감나무들이 즐비하다. 내가 이들은 일일이 나열하는 건 이들이 모두 그 우물에 뿌리를 대어 산다는 뜻이다. 한 집에 한두 마리씩 굵은 소가 있었으니 우물물에 의지해 살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러니 암만 바빠도 ‘우물 칩시다.’는 말이 떨어지면 거역할 수 없다. 우물을 치러 나올 때는 처음엔 굵은 처녀들이 나온다. 줄이 튼튼한 두레박을 하나씩 들고 나와 일시에 물을 퍼낸다. 느릿느릿 퍼올리면 뒤미처 나오는 우물샘을 감당할 수 없다.
대여섯이 둘러서서 철철철 넘치도록 한꺼번에 두레박질을 한다. 희고 맑은 물을 너럭바위 위에 쏟아내면 물은 미나리 밭으로 수북히 흘러들었다.
그 일을 이십여 분 동안 하면 우물 바닥이 보인다. 그때쯤이면 장정 하나가 밧줄을 타고 6-7미터 우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어두컴컴한 우물 바닥에 내려가 낙엽이며, 애들이 던져넣은 막대기, 머릿핀, 깨어진 사발, 숟가락, 손거울이며 끈 떨어진 두레박을 건져 올린다. 그러고는 우물 바닥의 개흙이며 우물벽에 붙은 이끼들을 말끔히 걷어 두레박으로 올리고는 막힌 샘물구멍을 뚫는다.
그렇게 하느라 생긴 흙탕물을 두레박으로 다시 퍼 올린 뒤, 장정은 줄을 타고 올라온다. 그게 시간으로 치면 한나절 걸리는 일이지만 그 한나절 노고가 있어 남은 한 해 동안 좋은 물을 먹을 수 있다. 이만한 일 한 가지에도 이웃간의 울력이 필요하다.
우물물이 좋으면 그 우물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혈색이 좋다. 의복이 깨깟하고, 마음이 생기있고 맑고 풍족하다. 꿈이 향기롭다. 고향에 가면 우물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너럭바위들도 그대로 있다. 상수도가 들어온 지 수십 년이 되었는데도 오히려 지붕을 얹어 먼지나 비가 들지 않게 해 놓았다. 우물이 거기 모여 사는 이들에게 풍요를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는 민가에 전해 내려오는 이런 풍습을 믿는 이들이 별로 없다. 그런 탓인지 우물도 다 사라졌다.
(교차로신문 2010년 3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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