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정월 대보름 망월이여!

권영상 2013. 7. 9. 17:47

 

정월 대보름 망월이여!

권영상

 

 

 

 

달력을 보니 다가오는 28일이 정월 대보름이다. 정월 초하루는 한 해의 첫날이다. 그러나 실제 한 해의 시작은 보름날 부터다. 나의 경험으로는 그랬다. 정월 대보름날은 새벽부터 여느 날과 다르다. 농사꾼이면 새벽 일찍 일어나 논밭에 거름 한 짐을 낸다. 이날 게으르면 일 년 내내 게으르고, 이날 부지런하면 일 년 내내 부지런하다는 속설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날은 누구나 긴장해야 했다.

긴장은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된다. 한 이불 속에서 함께 자는 식구 중 누구라도 눈 뜬 기미를 느끼면 얼른 그의 이름을 불러 ‘내 더위’를 판다.

“내 더위 사려!”

여름에 겪게 될 더위를 이날 아침에 팔아 두어야 한다. 그러기에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나도 모르게 대답하게 되고, 대답을 하면 그 순간 남의 더위를 덤터기 써야 한다.

이 더위는 한 사람에게만 팔아도 된다. 하지만 짓궂은 아이들은 그게 또 성이 안 찬다. 이른 아침 길거리로 나가 이웃 친구며, 친구의 어린 동생이며, 심지어 친구 어머니한테도 판다. 무슨 긴밀한 이야기라도 있는 것처럼 슬며시 다가가 이름을 부른다. 대답이 돌아오면, 그 즉시 닥쳐올 한 여름의 더위를 판다. 정신을 올바로 차려야 하는 아침이 바로 대보름날 아침이다.

 

 


 

 

이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지방을 나설 때는 맨발로 나서서는 안 된다. 옷매무새는 깨끗하고 단정해야 한다. 말씨는 발라야 하고, 남에게 군말 듣는 성가신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날의 행동이 올바르지 않으면 일 년 내내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날리기도 그렇다. 이날까지만 날리고 날리던 연은 끊어 바람에 멀리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 그리고 신춘을 준비해야 한다.

 

 

저녁을 먹으면 달을 맞기 위해 쥐불놀이를 시작한다. 내 고향 강릉은 바다가 가깝다. 웬만한 언덕에 오르면 바다에서 솟는 대보름달을 빤히 볼 수 있다. 그래선지 ‘월대산’이니, ‘산대월리’니, ‘월호평’이니 하는 지명들이 있다. 모두 ‘달을 기다린다’거나 ‘달을 부른다’는 지명이다.

달이 뜰 시각이 되면 아이든 어른이든 하던 일을 놓고 마음을 가즈런히 하여 달을 맞으러 언덕이나 산을 오른다. 아름다운 일 중에 또 이만한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마음에 소원 하나씩을 품고 한 걸음 한 걸음 언덕길을 밟아 오르던 그 행렬이 바로 농경문화의 아름다움이다.

추운 밤, 달 오르기 전의 컴컴한 밤길을 걷는 그런 여유로움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도 어렵다. 미리 오른 사내아이들은 달을 맞느라 쥐불을 돌린다. 언덕에서 들판에서 달처럼 둥글게 그려내는 쥐불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 시각,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달이 떠오르는 월출지로 향한다. 달은 꽃빛처럼 제가 떠오를 하늘을 서서히 물들인다. 마침내 기다리던 정월 보름달이 얼굴을 보이면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친다.

“대보름날 망월이여!”

“망월이여!”

“망월이여!”

그 우렁한 목청은 간절한 마음속의 기원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것으로 이 산 저 산, 이 언덕 저 언덕에서 메아리처럼 깊게 울린다. 보름달은 터질 듯 크고, 술 취한 듯 붉고, 장정의 얼굴처럼 기운차다. 그리고 그 월인은 종교처럼 아름답다.

 

 


세상의 모든 목숨 있는 것들은 그 시각 넋을 잃고 달을 바라본다.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달이다. 그러기에 그 달을 향해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은 공부 잘 하기를, 과년한 처녀들은 시집가기를, 어른들은 풍년과 장수를 빌었다. 한 해는 매년 이렇게 장엄하게 시작되었다. 그 시작점에 정월 대보름이 있다.

 

(교차로신문 2010년 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