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인생이란 우연이 짜놓은 카페트와 같다

권영상 2013. 7. 11. 18:05

 

 

인생이란 우연이 짜놓은 카페트와 같다

권영상

 

 

 

얼마 전, 문학상 시상식장에서의 일이다.

이런저런 식순 뒤에 수상자의 소감을 들었다. 그 분은 대뜸,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단도직입적이라는 말이 옳겠다. 나의 그 분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그분의 소감이 그랬다.

그 분의 소감은 짧으나 단호했다. 나는 스무 살 중반에 내 인생을 설계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30대 초반에 대학 강단에 서기로 계획했다. 자식은 셋을 두고, 자식 셋을 낳을 때까지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10권의 저서를 낼 것이며 금융자산 5억을 만들 것. 40대 중반에 대학 처장을 하고, 자녀 셋 중 둘은 유명대학에 입학시킬 것, 오십 중반에 반드시 대학 총장을 할 것이며, 총장을 마치면 정치에 입문할 것.

그 분은 소감 말미에 지금 받는 이 문학상도 계획대로 네 번째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분의 소감을 들으며 혀를 내둘렀다. 혀를 내두른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들 대놓고 말하지 못했을 뿐 놀랐을 것이다. 놀랄 정도가 아니라 영혼이 아뜩한 기분이었다. 문학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 더욱 놀랐고, 계획대로 대학총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그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계획대로 살아왔다는 거였다. 인생의 스케줄을 빡빡하게 짜놓고 그대로 살아온 그 분의 삶이 두렵고 경이로웠다. 계획 없이 살아온 나로서는 더욱 그랬다. 또한 ‘인생의 계획은 젊었을 때 세운다’는 도덕교과서의 모범적인 인물을 만난 것에 반갑기도 했다.

말하지 않아 그렇지, 실은 그런 계획을 가지고 치밀하게 사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런 이들은 합리적으로 인생을 산다. 담배와 술은 물론, 이해타산에 닿지 않는 일이나 행동은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통제하거나 절제하며 산다. 그 절제가 얼마나 좋은 인생관에 바탕을 두고 있느냐가 문제이긴 하지만 삶에 철저한 편이다.

 

 


 

그런 모범적인 인생을 보면서도 ‘그런 인생?’ 하고 나는 대뜸 얕잡는다. 그럴 엄두조차 못낼 위인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우연의 점철이다. 그냥 내 앞에 놓인 이 시간에 충실한 게 전부였다.

소년 시절부터 나의 어머니는 17년간 입원을 하셨고, 나는 그 우연한 우환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다시는 학업을 이을 경제력이 못 되었는데도 내게 우연이라는 행운이 찾아왔다. 5촌 종질이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그분의 종용으로 마지못해 아버지는 나를 그 학교에 입학 시키셨다. 고등학교를 마치자, 내가 사는 동네에 학비가 싼 국립대학이 섰던 것도 우연이라면 우연이었다.

 

 


우연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당시 우리 학과의 젊은 국어교수는 문학전문지에 시 추천을 받고 있었는데, 나도 그 대열에 끼게 되어 우연히 시를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의 길고긴 장기 입원이 우연찮게도 내 문학의 깊은 토양이 될 줄을 나는 몰랐다. 더욱 우연한 것은 털털한 내가 꼼꼼한 성격의 아내를 만났다는 거다. 우연이라면 이게 우연이 아니고 뭔가.

내 인생은 9할이 우연이다.

그러했기에 지금 내 모양이 이 정도겠지만 그래도 내 인생은 아름답다. 나는 요즘도 딸아이에게 말한다. 계획적인 인생에서 얻는 필연적 행복도 있지만 실은 그것도 우연일 뿐이다. 그 어떤 설계도 ‘17년간의 장기 입원’을 이겨낼 계획은 없다.

 

 

 

인생은 인간의 것이나 인간의 힘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지금 이 인생에서 우연을 느껴라. 인생이란 연속되는, 우연이 짜놓은 카페트와 같다. 얼씨구, 그런 말을 들려준다. 내 말 뜻을 알아들을 나이의 딸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지금 창밖의 예쁜 멧새 소리를 듣게 되리라는 걸 나는 1분 전까지도 몰랐다. 오직 지금이 향기로울 뿐이다.

 

(교차로신문 2010년 3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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