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왜 일상을 탁, 걷어치우지 못할까

권영상 2013. 7. 4. 17:54

 

 

 

왜 일상을 탁, 걷어치우지 못할까

권영상

 

 

 

 

모든 걸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갈까.

나는 가끔 이런 소리를 한다. 아무 의지도 없이, 시골에 내려가 살 아무 계획도 없이, 그냥 버릇처럼 ‘시골에 내려가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 매양 그 소리를 듣는 아내는 그게 또 괴로운 모양이다. 시골 타령 좀 그만 하라며 핀잔이다. 내가 생각해도 싱거운 사람이 나다. 일상을 탁 끊고 일어설 용기도 없으면서 푸념처럼 같은 말을 말로만 되뇌인다. 왜 말로만인가?


 

 

왜 일상을 탁, 걷어치우고 떠나지 못하는가. 탁, 걷어치우기 어렵다면 인터넷에 들어가 이주 농민에 관한 글이라도 찾아 읽지 못하는가? 왜 계산기를 내놓고 농촌으로 내려가면 얼마의 생활비가 들고 교육비는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를 계산조차 한 번 해보지 못하는가? 살 집은 폐가를 개조할 건지, 농가에 그냥 들어가 살 건지, 짓는다면 조립식으로 지을 건지, 벽돌이나 황토집으로 지을 건지, 아니면 지어놓은 집을 사서 살 건지 그것조차 좀 구체적으로 생각지 못하는가?

 

 

 

 

그저 버릇처럼 ‘시골에 내려가 살고 싶다’ 그런 말만 하지 말고 스프링 공책이라도 한 장 훅, 뜯어 살 집의 평면도라도 그려보면 안 될까. 마당 주변엔 무슨 나무를 심고, 우물은 어느 쪽에 두고, 염소우리는 어디에 배치하고, 개집은 어디에 둘 건지… 그쪽으로 한 걸음씩 나가려는 엄두는 내지 못하면서 말로만 시골 타령을 하는 건 나의 소심함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히 생각하면 소심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은 ‘먹고사는 일’에 대한 구속 때문이다. 맞다. 이 말이 가장 그럴 듯한 변명이고 핑계다. 한창 학비가 들어가는 아이의 교육비는 정말 어쩔 것인가. 뭘로 먹고 뭘로 옷 해 입으며 입에 풀칠은 당장 무엇으로 할 것인가. 무엇보다 시골 이주를 강력히 반대하는 아내는 어떻게 설득할 거며, 혹 아프기라도 한다면 병원진료문제는 또 어떻게 하나.

 

 


젊었을 때엔 소박한 행복을 위해 살겠다 해놓고, 이제 와 이런 저런 핑계로 나는 늘 나를 속인다. 솔직히 말해 이 나이까지 직장에 매여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다. 내가 이제 직장을 버린다 해도 부모로서, 남편으로서의 임무를 소홀히 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 받을 일도 없다. 이만큼 되도록 이삿짐을 싸 충분히 이사를 다녔고,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면 헌신했다. 세간을 싸들고 흙으로 돌아가 살만한 이념적 뒷받침도 되어있다면 되어있다.

 

 


헨리 소로우나 라다크 사람들의 행복도 안다면 안다. 먹고사는 것 이외의 느림의 아름다움에 대한 지식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최소한의 소유야말로 영혼을 살찌게 한다는 말도 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스스로 짓고 가꾸는 자족의 즐거움에 대해서도 충분히 안다.

그러면서 뭘 망설이는가. 그러면서도 탁, 일상을 걷어차고 일어서지 못하는 건 내 결단을 스스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덜 행복하면 어쩌나 하는.

나는 이 도시의 욕망투성이의 행복 아닌 행복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다. 매달 던져주는 급여에 길들여졌고, 무난한 일상에 길들여졌다.

 

 

 

그리고 또 하나.

작은 땅을 얻어 푸성귀를 심고, 감자와 옥수수를, 한 마리의 누렁개와 예닐곱 마리의 병아리와 두어 마리의 염소와 함께 사는 일이 ‘정말 행복일까?’ 그거다. 그걸 아직 나는 믿지 못하고 있다. 벌통을 놓고, 우물을 파 우물물로 밥을 짓고, 자두나무를 심어 자두를 따는 행복을 행복이라 믿기가 두렵다. 왜냐? 거기에 길들여지는데 필요한 숱한 시련과 살아온 날보다 짧게 남은 미래 때문이다.
나는 언제쯤이면 일상을 탁, 걷어치우고 일어나 내가 꿈꾸어온 행복을 성큼 만들어갈 수 있을까.

 

(교차로신문 2009년 1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