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작별
권영상
책을 펴놓고 앉으려니 쿵쿵 천둥이 운다. 꾸물거리던 하늘에서 끝내 비가 내린다. 창밖으로 자꾸 눈이 간다. 전철에서 내려 집으로 올 때 슬쩍 건너다 본 우면산의 가을 때문이다. 한 50미리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니 어쩌면 이 비에 가을 단풍을 다 잃어버릴 것 같다. 빗소리가 거칠어진다. 몇 번이나 책을 접었다 폈다 하다가 벌떡 일
어섰다. 낙엽 지는 걸 두고 방안에 앉아 편안히 책을 읽는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비옷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산비탈에 선 나무들은 자신들 앞에 닥쳐온 이 비를 말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지난 날 햇빛좋은 오후에 보던 그런 격정의 빛깔이 아니었다. 삶의 커다란 고비를 넘어선 체념의 빛이다. 단지 그들은 누군가 자신을 흔들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제 그들은 한 생애 동안 머물렀던 자리를 기꺼이 벗어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비의 무게를 간신히 감당하는 나뭇가지 끝의 젖은 잎들을 쳐다보았다.
그곳의 위치는 매우 높았다.
그게 나뭇잎들의 현실이다. 사람이나 나뭇잎이나 현실은 언제나 위태롭고 가파른 곳에 있다. 살다가 한 번 떠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런 영원한 거리. 나뭇잎들은 바람 많은 곳을 살아 그런지 두려운 기색이라곤 없다. 다가올 작별을 당연한 몸짓으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봄날, 연둣빛 새순을 피워낸 이후, 잎들은 예고도 없이 휘몰아쳐 오는 바람과 오랜 날을 싸워온 경험이 있다. 그러니 살아온 나뭇가지에 연연하기보다 오히려 초연하다. 나무 우듬지가 일렁인다.
그 순간이다. 등성이를 넘어온 바람이 산기슭을 휘몰아쳤다.
아, 그때의 그 황홀한 작별이란!
그 황홀한 절명이란!
산기슭에 서 있던 사시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팥배나무, 오리나무, 산버들에 느티나무까지 그들의 잎은 마치 남태평양 해저의 화려한 어족처럼 자유로이 허공을 헤엄쳤다. 꽤 오랫동안 허공 중에서 작별 의식을 치른 후 그들은 고요히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그러고 보니 지지난 토요일부터 산을 물들이던 단풍의 빛깔은 결국 슬픈 작별의 신호였다. 무엇보다 이별을 재촉한 건 이 가을비였다. 한바탕 바람이 휩쓸고 간 끝뒤로 가지 끝에 매달렸던 잎들이 뭉턱뭉턱 사라졌다. 가지가 앙상하니 드러났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별이라 해도 작별은 역시 눈물겹다.
나는 눈물 많은 활엽수의 골짝을 건너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섰다. 오후 4시인데도 가을비 때문에 숲이 어둑신하다. 산굽이를 또 하나 넘었다. 더이상 산을 오르기보다 한 자리에 선 채 나무와 바람이 만드는 작별을 지켜보고 싶었다.
나를 따라 숲으로 들어온 바람이 일순 사라졌다. 한 바탕 호흡을 조절하는 건지 잠잠하다. 어딘가 숨어버렸다. 그때 저쪽 팥배나무 어린 가지 끝에서 살랑, 하며 나뭇잎 한 장이 떨어진다. 거기에 바람이 숨었다. 그 옆 느팃잎 두어 장이 또 떨어진다.
그 나무숲 어간에 바람이 몸을 감추고 있는 게 틀림없다. 손가락 끝으로 톡톡 나뭇잎을 따는 모양이다. 그렇게 한 동안을 침묵하던 바람이 무슨 일인지 빠른 걸음걸이로 숲을 빠져나간다. 비에 젖은 한 떼의 낙엽들이 눈보라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작별이란 격전을 치르는 것만큼 고통스럽다.
나는 반 시간을 그렇게 지켜보다가 점점 어두워오는 길을 따라 산을 내려왔다. 작별로 몸부림을 치는 숲의 아픔을 지켜보아주길 참 잘했다. 혼자 편안하자고 방안에서 책을 읽는 건 정말이지 부끄러운 일이다
(교차로신문 2009년 11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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