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기에 충분한 풍경
권영상
김장을 담갔다.
김장을 담그자고 서두른 사람은 아내가 아니고 나였다. 주말농장에 심어놓은 배추 12포기와 장성하게 큰 무가 추위에 얼까봐 그게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직장에 나가는 아내의 손을 무턱대고 빼앗기도 뭣했다. 그러던 차에 고향에서 대파 두 단과 고춧가루가 왔다. 이제부턴 또 아내가 서둘렀다.
나는 밭에 가 배추와 무, 갓을 뽑아다 욕조에 넣고 말끔히 씻었다. 그것은 내가 벌써 4년을 해온 일이다. 4년 전만 해도 김치는 이런 저런 데서 얻어먹었다. 그러던 것을 주말농장을 얻어 농약이며 비료를 하지 않고 배추를 키우자 아내 마음이 바뀌었다.
그러나 아내는 김장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이웃 분들의 손을 빌렸는데 그때에 어깨 너머로 배운 눈썰미를 가지고 아내는 지난 해부터 김장을 시작했다.
근데 올해는 배추를 어떻게 절였는지 그만 배추맛이 너무 짰다. 절임시간이 길었던 모양이다. 아내의 당황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몇 번이나 배춧속을 뜯어 이리저리 맛을 보고 또 보고 했다. 김장은 나이 먹은 아내에게도 긴장되는 일 이다.
예전에 김장이 한 번 잘못되면 아버지는 김치를 드실 때마다 올 김치는 어째… 하셨다. 어머니는 그 소리가 부담이 되었다. 당시 우리집 식구는 모두 열둘이었다. 그들의 입맛을 두루 생각해야 하는 어머니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야 지금 세 식구밖에 안 되지만 그런 과거 문화를 아낸들 모를 리 없다.
아내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 안에 알맞게 썬 갓과 무채와 파와 갓찧은 마늘을 넣고 그 위에 고춧가루를 뿌렸다. 그때에 아내의 손은 분명 떨리고 있었다. 그것들을 버무리는 도중에 생선젓갈을 넣을 때는 더욱 그러하였다. 말할 수 없는 진지함으로 양념을 찍어 또 맛을 봤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그런 모습의 아내가 정말 아내답게 보였다. 젓갈병의 목을 잡고 양념과 절인 배추가 이 젓갈과 만들어낼 맛을 가늠하는 아내의 상상력을 나는 보았다.
맛은 그런 상상력의 산물이다. 김장의 모든 소재들이 손에 의해 서로 섞이고, 그것이 숙성되는 시간과 닥칠 겨울의 기온 등을 감안해서 이루어지는 상상력의 소산이다.
맛을 만드는 행위는 더없이 착하다.
그것은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자신과 가족 구성원의 서로 다른 입맛을 조정하고 조절하면서도 균형 잡히게 하는 일이다. 거실로 한낮의 겨울 햇살이 환하게 듬뿍 들어선다. 양념빛깔이 붉고 깊다. 아내는 잘 버무린 양념으로 배춧잎 사이사이에 속을 넣는다.
나는 거실에 가득한 햇살과 아내의 고귀한 노동을 위하여 라디오를 켰다. 피아노 위에 놓아둔 목제 라디오가 한 차례 소음을 내놓는다. 이윽고 한 때 사랑 받았던 흘러간 노래와 사회자의 수다가 쏟아져 나온다. 라디오와 김장, 둘 다 아날로그적인 것들이다. 너무도 잘 어울린다. 아내도 싫어하지 않는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한 김장이 오후 1시가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나는 아침에 해놓은 밥을 데우고 삶은 돼지고기를 먹기 좋도록 썰었다. 아내는 양념한 배춧속을 가져왔다. 거실에 벌여놓은 것들을 그대로 둔 채 식탁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생각할수록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아내와 함께 같은 일을, 손을 맞추어 함께 한다는 일 자체도 아름답거니와 잠시 하던 일을 그대로 두고 밥을 먹는 일도 행복하기에 충분한 풍경이다.
나중에도 직장을 그만 둔다면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내와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 본다거나 같은 일에 손을 맞추어 몰두해보고 싶다. 또한 값진 쌀로 지은 밥을 먹는 행복감을 누려보고 싶다. 김치 4통과 무김치 1통, 이 정도면 겨울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겠다
(교차로신문 2009년 12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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