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내 두 팔에 안긴 아기의 무게

권영상 2013. 6. 30. 19:51

 

 

내 두 팔에 안긴 아기의 무게

권영상

 

 

 

누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저번 낳은 손주가 벌써 돌이란다. 시간이 나거든 잠깐 들르라며 끊었다. 아기 이야기는 전화로 몇 번 들었다. 그 아기 돌이 돌아온 모양이다. 암만 바쁘다 해도 들러야 할 일이다. 그 아기가 태어날 때를 맞추어 바람은 적당히 불어주었을 테고, 햇빛도 또 적당히 비추어 주었을 테고, 별들도 반짝여 주었을 테다. 생각해 보면 이 땅에 태어나는 사람들치고 별들의 반짝임을 받으며 태어나지 않은 이가 없다.

 

 

 

그들한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도 대뜸 대답했다, 가고말고! 하고.

내가 도착했을 때, 아기는 벌써 돌상에 놓여 있는 여러 가지들, 이를테면 청진기, 책, 부채, 연필, 마이크로폰, 자, 미술붓, 홍당무, 사과 앞에서 막 무언가를 집으려는 참이었다. 집으려 한다기 보다 그것들을 신기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방안에 들여놓으려던 발을 얼른 거두고 섰다.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아기에게는, 또는 그 어미와 아비에게는 얼마나 막중한 순간이겠는가.

모두의 눈이 아기의 손에 가 머물렀다. 집어 봐. 좋은 거 집어봐. 누님이 그러는 말끝으로 아기는 연필을 집어 들었다.

 

 


 

“아이구, 공부 잘하려나 보네!”

누님이 대뜸 아기가 한 일을, 아니 아기의 앞일을 추어주었다. 돌잔치의 주요행사는 그렇게 끝났다. 그제야 나는 발을 떼고 안으로 들어섰다. 나도 아기의 앞날을 축하해 주며 아기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아기는 처음 만나는 내게 낯가림도 없이 방긋 웃더니 제 두 손을 뻗으며 내게 납죽 안겼다. 나는 두 팔로 아기를 안아올렸다.

아, 이렇게나 소중한 생명의 무게.

그 작고 예쁜 아기의 무게가 내 팔 안에 고요히 느껴졌다. 아기가 내 품에 제 얼굴을 묻었다. 나는 아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내 심장을 껴안듯 아기를 꼭 안았다. 아기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고개를 떼더니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나도 모르게 아기의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

아기야, 행복 하려무나.

그 순간 내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아기를 내려놓았다.

내 입술에 아기의 연한 살결의 감촉이 아련히 남아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로부터 내 말은 돌연 연색해졌고, 내 거칠고 성급하기만 하던 성정이 나도 모르게 찬찬해졌다.

돌 음식을 다 먹고 누님의 집을 나설 때까지 내 숨소리는 부드러웠고, 내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졌다. 아기야, 젖 잘 먹고 건강해라, 하고 돌아설 때의 내 발걸음 역시 분명히 자분자분했다. 내가 아기 곁에 있는 순간만큼은 거짓말처럼 그랬다.


 

 

누님 집에서 나와 골목길을 막 돌아서자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성급한 나로 되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물 한 컵을 들고 내 책상 맡에 앉을 때였다. 내게 안겼던 아기의 무게가 내 두 팔에 다시 느껴졌다. 그것은 정말 신비한 일이었다. 나는 그 무게를 다시 느끼기 위해 몇 번이나 내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했다. 요만한, 대체 그 느낌을 형용할 수 없는 무게.

그 가늠할 수 없는 아기의 무게 속엔 뭐가 담겨 있을까.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쓰이는 눈물과 웃음과 꿈이 아닐까. 아기는 그걸로 이 세상 험한 강을 건너는 동안 키울 것은 더 키우고 간직할 것은 간직하며 살아갈 테다. 누님의 삶이 욕심 없는 삶이었으니 누님의 손주인 아기 또한 세상 욕심에서 벗어나 깨끗이 살길 빌어본다. 기실,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이 주신 대로 목숨을 사는 일 또한 얼마나 행복한가.

 

(교차로신문 2009년 9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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