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들
권영상
여름날의 밤은 금방 이슥해진다. 낮이 긴 대신 해가 지면 서둘러 땅거미가 진다.
저녁 수저를 놓고 돌아설 때다. 아니 텔레비전을 막 켜려 할 때다. 열린 창으로 어둠과 함께 리코더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초등학교 4,5학년쯤 되는 아이의 좀은 서툰 듯한 '섬집 아기' 노래다.
텔레비전을 켜려던 손을 멈춘다. 고즈넉히 귀를 기울인다. 어스름녘, 옆집에서 또는 빈 아파트 마당에서 들려오는 리코더 소리가 때로는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아이는 지금 여름방학 숙제로 ‘섬집 아기’를 연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에게도 어린 시절의 그런 방학 숙제가 있었다.
그 대수롭지 않은 리코더 소리가 우리를 20년 아니, 30년 전으로 이끌고 간다. 풀벌레 우는 밤의 마을 앞 방죽이거나, 들깨가 한창 크는 밭둑길이거나, 달 뜨는 동산 위에 한참이나 서 있게 해준다.
마음을 고요하게 해주는 건 리코더 소리만이 아니다. 서툰 피아노 소리도 그렇다. ‘꽃밭에는 꽃들이…….’라든가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같은 동요 한 소절을 들을 때면 왠지 몸과 마음이 아련해진다. 세련된 손길로 치는 고난도의 피아노보다 음도 틀리고 틀린 소절을 자꾸 반복해 치는 피아노 소리일수록 좋다. 반복하다 뚝 그치면 더욱 좋다. 어두운 밤, 화두처럼 그렇게 한 소절을 던져놓고 말면 우리 귀는 자꾸 그 다음을 기다린다. 더는 들려오지 않는 아쉬움이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우리를 고요하게 하는 것은 세련된 것보다 오히려 불규칙하거나, 때로는 서툰, 좀은 미숙한 데서 나오는 게 아닌가 한다. 산언덕에서, 또는 서해의 고도에서 마주하는 일몰의 고요함도 좋다. 일몰은 황홀하기도 하지만 세상 생명 가진 것들의 숨소리를 침묵하게 하는 힘도 있다.
암만 사납고 욕심많은 짐승도 일몰을 보면 욕심을 거두고 조용히 그들의 집을 향한다. 저녁 골목길을 걷다가 무심코 듣는 주기도문 외는 소리나 저녁 예불 소리도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초등학생의 또랑또랑한 글 읽는 소리도 지나가는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엄마! 나, 먼저 밥 먹어도 돼! 엄마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드는 숟가락 달각대는 소리도 골목 불빛과 함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다.
내 고향은 호숫가에 있다.
일몰이 오면 바람에 흔들리던 갈대도 숨을 죽인다. 그 무렵이면 부들이나 갈숲에 숨어 조잘대던 물새들도 저희들 둥지로 돌아가 다가올 밤을 맞는다.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갈 때 듣는 호숫물에 잉어 뛰는 소리가 참 좋다. 펄쩍 뛰어오른 잉어는 노을을 받아 마치 금어처럼 번쩍이다 철벙, 물속으로 사라진다. 그럴 때에 철벙, 하는 소리와 함께 번져나가는 어둠의 정적이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내일 봐, 안녕! 그러며 한마디씩 주고받는 작별인사도 여름밤을 더욱 고요하게 한다.
한밤중 우연히 잠에서 깼을 때 듣는 먼 마을의 개 짖는 소리도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신작로를 달려가는 자동차의 성난 바퀴소리도, 먼 바다에서 울려오는 해조음도 그렇다. 이슥한 여름밤에 듣는 개구리소리도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저녁쯤에 우는 울음은 억세고, 거칠고, 우렁차서 시끄럽지만 이슥한 밤에 듣는 개구리 소리는 다르다. 아득한 세상으로 가라앉는 듯 하여 자칫 또 다른 세상에 혼자 놓여 있는 듯 하다.
우리는 가끔 북적대며 사는 삶에서 오히려 고요를 느낀다.
한 순간의 고요는 황야에서 만나는 샘물과 같다.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면 마음은 흙탕물처럼 혼탁해진다. 혼탁한 마음 안에 어떻게 맑은 영혼이 살고, 향기로운 꿈이 피어나겠는가.
(교차로신문 2009년 8월 27일자)
'오동나무 연재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두 팔에 안긴 아기의 무게 (0) | 2013.06.30 |
---|---|
마당을 하나 가지고 싶다 (0) | 2013.06.27 |
외상술 (0) | 2013.06.25 |
잔인한 그 여름의 경주여행 (0) | 2013.06.25 |
어린 시절, 그 아련한 감자서리 (0) | 2013.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