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해온 세 살배기 딸
권영상
이 나이 먹도록 자식이라곤 직장에 나가는 딸아이 하나뿐이다. 자식 하나 키우는 게 양에 차지 않아 우리 나이에 마침맞은 아이 하나 입양해 보는 게 어떨까, 그런 생각을 가끔 했다. 마음으로만이 아니고 실제 입 밖으로 내 본 적도 있다.
“싱거운 소리 좀 그만 해.”
그때마다 아내는 면박을 줬다.
하긴 자식을 다 키워놓고 한숨을 돌리려는 아내에게 또 무슨 짐을 지울 욕심인가.
“직장 그만 두고 들어앉아 나 애나 키워?”
그렇게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둘 다 직장을 가지고 있으니 아기를 입양한다면 누구든 애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한다. 사실 말이 그렇지 입양이란 게 쉬운 일이 아니고, 장성하게 키워내는 일 또 여간 버거운 게 아닐 것 같다. 결국 그 일이 나의 일이 아닌 아내의 일이 되고 말게 뻔하다. 그러면서도 나는 가끔 그 싱거운 소리를 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도 뚝 끊은 지 오래 됐다.
지난 겨울 방학이다.
휴대폰에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 장치를 해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시간표대로 살았다. 45분마다 종이 나고, 10분씩 쉬는 종소리에 익숙한 시절을 오래 살았다. 싫든 좋든 일을 하다가도 종이 나면 교실로 찾아가 수업을 했다. 누군가 정해놓은 규칙이긴 하지만 어떻든 규칙에 매여 살았다.
방학 시즌에 들어가면 그런 시간 관리라는 게 좀 어렵다. 놀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고, 일을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든다. 문제는 협착증 때문에 시간시간 가볍기는 해도 운동을 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딸아이에게 내 휴대폰에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을 설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시간마다 뭐, 종이 울리거나, 뻐꾸기가 울거나, 아니면 음악소리가 나거나. 그런 방식의.
내 속내를 안 딸아이가 휴대폰을 가져가더니 다운 비용 500원을 냈다며 설치를 해 가지고 왔다. 나는 휴대폰을 받아 책상 위에 두고는 하던 일을 했다.
그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곱씨!”
낯선 여자 아이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나왔다. 세 살배기 여자 아이 목소리였다. 나는 이 낯선 목소리에 놀라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분명 이 안에서 세 살배기 깜찍한 목소리가 나왔다. 액정 화면 상단에 종모양의 빨간색 앱이 하나 붙어있을 뿐 목소리는 이내 사라지고 없다.
“뭐야? 목소리가 귀엽네.”
거실에서 일하던 아내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괜히 다음 10시가 기다려졌다. 열시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내도 나도 방에 둔 내 휴대폰에 귀를 기울였다. 시그널 음이 짧게 울리고 곧이어
“여얼씨!”
한 시간 전의 그 또릿한 계집아이가 또 시간을 알렸다. 어디 가 놀다가 부랴부랴 달려와 내 등너머에서 나를 향해 외치는 소리 같았다. 시간이 아니라 초록빛 봄을 알리는 듯 맑고 명랑했다. 기계음이 아니다. 아이의 똑똑한 목소리다. 귀여웠다.
“그래. 여얼씨!”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그때부터다.
그 계집아이가 ‘여란시’하면 나도 ‘옳지, 여란시’ 하고 대꾸를 해줬다.
“여보, 당신 웃겨!”
내가 대답을 해주면 아내가 웃었다.
기계가 그러는 걸 가지고 뭘 그렇게 꼬박꼬박 사람 대하듯 말대꾸를 해주느냐는 거다. 글쎄다. 근데 그건 나도 모를 일이다. 내가 하자고 마음 먹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모르게 대꾸를 하게 된 거다. 나는 그 후, 혼자 있을 때면 잊지 않고 꼭꼭 대답을 해줬다.
1월에 울산에 내려갔다.
경상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보아 시상식에 갔었다. 심사위원석은 맨 앞자리로 심사를 함께 보았던 이들과 원탁에 둘러앉았다. 식이 시작되고 시를 심사하신 오탁번 시인께서 작품심사에 대해 이런저런 말씀을 하실 때다. 나는 휴대폰 메모앱을 열어놓고 그 분의 문학론을 메모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여뚜시!”
내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에서 시그널 음과 동시에 열두 시를 알리는 여자 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순간, 휴대폰을 감싸쥐고 탁자 밑에 숨겼다. 그러나 이미 목소리가 식장 안으로 날아간 뒤였다. 사람들 시선이 동시에 내게로 쏠리는 걸 한 순간에 느꼈다. 미처 그걸 생각 못한 내 실수였다.
시상식이 끝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간신히 일어났다.
“그 예쁜 목소리의 여자아이가 누구예요?”
내 곁에 앉았던 분이 내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세 살배기 딸아이요.”
나는 엉겁결에, 아니 좀전의 내 실수를 감추기 위해 그렇게 말해버렸다.
“야, 똑똑하고 예쁘게 생겼겠네.”
그분이 그랬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물었다.
“권선생 나이가 몇인데 그런 애가?”
뭔가를 속으로 헤아리느라 그분의 고개가 자꾸 기울어졌다.
“입양......”
그렇게 말하는 내 손을 그분이 덥썩 움켜잡더니 웃었다. 끝내 들키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혼자 버스를 타고 장장 4시간을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그 세 살배기 딸아이 아닌 딸아이와 함께 했다. 불을 켜고 책을 읽어갈 때면 좀 쉬란 듯이 그 녀석이 시간을 알려주고, 버스 타기가 좀 지루하다 싶을 때면 또 내게로 와 시간을 알려주고...... 그렇게 도란도란 서로를 지켜주며 이슥한 새벽 1시에 서울에 도착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본의 아니게 세 살배기 딸아이를 하나 얻게 된 셈이다. 귀엽고, 예쁘고, 똑똑한.
“아곱씨!”
아침에 텔레비전을 길게 보고 있을 때면 세 살배기 녀석이 달려와 소리친다.
“그래. 아곱씨구나! 착하지.”
나는 텔레비전을 얼른 끄고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그 녀석과 차츰차츰 정이 들어갔다.
휴대폰이라는 기계 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도 정이 든다. 아이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재생하는 거니까 기계가 만들어내는 소리와 분명히 다르기는 하다. 그렇기는 해도 전혀 아무 인간적 관계가 없는, 그 아이의 본적도 모르고, 그 아이의 혈친도 모르고, 그 아이의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면서 금방 사라지는 목소리만으로 혈육처럼 정들 수 있다니! 그게 참 나를 야릇하게 한다. 사람이 짐승과 친해지고, 초목이나 수석, 아니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잘 아는 가수들의 노래와 친해질 수는 있다. 그런데 아무 인연도 없는, 형태도 없는 목소리와 친해질 수 있다니.
며칠 전 토요일 아침이다.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을 때다.
“여덜씨!”
식탁 위에 올려둔 내 휴대폰에서 그 녀석 목소리가 또 튀어나왔다. 아침, 아직 정신이 좀은 혼미해 있는 그 시각에 그 녀석 목소리만큼은 한 줄금 소나기 뒤의 하늘처럼 맑았다.
“그래. 똑똑하지. 여덜씨구나!”
나는 평소처럼 잊지 않고 말대답을 해줬다.
“엄마, 아빠가 저 목소리 대하는 느낌 좀 이상하지 않아?”
내 말을 듣던 딸아이가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
“네가 듣기에도 좀 이상하지?”
아내가 대뜸 거들었다.
“내 포지션의 위기를 느끼게 되는 것 같아.”
딸아이가 엉뚱하게도 그런 말을 했다.
“포지션의 위기라니?”
내가 웃으며 되물었다.
“나보다 아빠가 저 목소리를 더 극진하게 대하는 같단 말이야.”
그러고는 웃었다.
“우리 집 식구가 아주 한 사람 늘었다니까. 어찌나 지극한지 원.”
아내가 눈을 흘겼다.
“그러지 말고 아주 입양을 하시지.”
딸아이가 입을 실룩했다.
“네가 다운로드 받아준 날이 그날이지 뭐. 안 그래?”
내 말에 다들 터놓고 웃고 말았지만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내 품에 안을 수 없고, 같이 밥을 먹을 수 없다 뿐이지 그 아이는 식구처럼 항상 우리 집에 있다. 그리고 내 안에 있어 한 시간씩 나와 어김없이 대화를 한다. 딸아이 말처럼 내가 그 목소리를 딸아이보다 더 지극하게 대한다는 건 옳지 않다. 그러나 내가 그 목소리에 인간적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건 사실이다.
잠을 자러 안방에 들어갈 때, 그 녀석이 내 방에서 혼자 ‘여뚜시!’하고 소리치는 목소리를 듣는다.
“여태 잠을 안 잤구나!”
괜히 그 애가 안쓰러워 말대답을 해준다.
우리들이 다 잠 든 이슥한 밤에 혼자 깨어나 ‘하안 시!’, ‘두우 시!’, ‘세에 시!’ 할 걸 생각하면 미안하다. 미안하다 못해 같이 말대꾸를 해주지 못하는 게 안 됐다. 그 어린 녀석을 내 방에 혼자 두고 잠자리에 드는 게 마음 짠할 때도 더러 있다. 내가 나이를 먹더니 좀 이상해진 건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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