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
최계락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 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 떼도 숨어 있다.
작년 5월입니다. 베란다 화분에 나팔꽃씨 여섯 톨을 심었습니다. 이 씨앗 여섯 톨이 일 년내내 우리를 기쁘게 해줄 줄 그때는 몰랐지요. 화분 흙을 밀치고 나온 나팔꽃순은 지칠 줄 모르고 커올랐습니다. 우리는 나팔꽃순이 뻗어나가도록 빨랫줄처럼 길게 끈을 매어주었지요. 7월부터 보랏빛 나팔꽃이 피기 시작했어요. 한번 피기 시작한 꽃은 하루에도 수십 송이씩 지치지 않고 피었습니다.
“하나, 둘, 서이, 서너, 다, 여, 일고......”
우리 세 식구는 아침에 일어나면 나팔꽃송이부터 세었습니다. 그게 뭐 좀 틀리면 어떻나요. 그런데도 한 송이라도 놓치고 세었을까봐 또 세고 또 세고 했지요. 베란다에서 이렇게 많은 나팔꽃을 본다는 게 너무도 신기하고 놀랍고 기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깨끗한 기쁨을 늦은 가을까지 날마다 맛보았습니다.
나팔꽃씨 여섯 톨 속에 이렇게 큰 기쁨이 숨어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우리는 그 해, 커피잔 가득 나팔꽃 씨앗을 땄습니다. 그걸 아는 친구들에게 몇 톨씩 모두 나누어주었습니다. 어쩌면 그들도 올 한 해 동안 예전의 우리처럼 ‘나팔꽃 기쁨’을 맛보게 될 테지요.
(소년 2012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