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갑
권영상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녀석이 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교복도 없고, 머리도 긴 고등학생이다. 작년 우리 반 동민이다. 나를 보고 동민이가 꾸벅 인사를 한다. 부끄러운 모양이다. 계면쩍게 인사를 하고 몸을 비틀더니 포장지에 싼 것을 선물이라며 내놓았다. 그걸 받아들고 보니, 지난 일이 떠올랐다.
동민이는 3학년 첫날부터 결석을 했다. 나는 담임이면서도 그의 얼굴을 모른 채 한 달을 지냈다. 집으로 전화를 하면 받는 사람이 통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다. 저쪽에서 뜻밖에 누가 전화를 받았다. 이제 한창 잠에 빠진, 나이를 분간할 수 없는 여자였다.
"동민이 담임입니다. 누구시죠?"
나는 혹시 동민이 할머니 잠을 깨웠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어, 저어 동민이 엄맙니다. 조좀전에 퇴근해 가지고."
그러고 보니 동민이 엄마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후 5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7시에 퇴근을 하신단다. 지금이 오전 8시니 한창 막 주무시는 엄마의 잠을 깨운 셈이다.
"아유, 미안합니다."
나는 간단히 동민이에 대해 말씀드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니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라도 간신히 통화가 된 다음 날, 거짓말처럼 동민이가 학교에 나왔다. 시큼하고 땀에 전 냄새가 그의 옷에서 났다. 학교에 안 나오는 날엔 이웃 학교 아이들과 밤새도록 걸거리를 배회하거나 주택가 골목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학생이 경험해선 안 되는 것들에 손을 댔다. 담배와 술과 부탄가스. 나는 그를 다독여주며 놀더라도 학교에 나오라고 했다. 그도 그러겠다고 했다. 약속은 그렇게 쉽게 했지만 번번히 빗나갔다.
그러던 또 어느 날, 동민이가 오랜만에 또 학교에 나왔다. 그와 오랜 면담을 마친 뒤 나는 그와의 약속을 견고하게 할 방도를 찾아냈다. 그를 교탁 앞에 불러내어 분필로 그어놓은 금 위에 서게 했다.
“친구들이 셋을 셀 동안 학교에 다니겠으면 금 오른 쪽에, 싫으면 왼쪽에 서렴.”
친구들 앞이니까 당연히 오른 쪽에 설 것이고, 그러면 약속은 어떻든 지켜질 것이라고 믿었다. 길거리보다는 그래도 안전한 게 교실이 아닌가.
나는 아이들에게 수를 세라고 했다. 아이들은 그가 학교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입을 맞추어 하나! 둘! 셋! 했다. 그와 동시에 동민이의 몸이 움직였다. 그가 움직인 방향을 보며 우리는 놀랐다. 그는 오른쪽이 아닌, 왼쪽을 택했다. 금 왼쪽에 가 선 동민이가 나를 쳐다봤다.
“그렇다면 돌아가렴.”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민이는 가방을 찾아들고 교실을 홱 나갔다. 그가 나가는 걸 보고서야 나는 내가 한 방식이 그를 못마땅하게 했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그를 묶어놓으려는 방법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거나 그를 언짢게 한 듯 했다. 새 학년이 시작된지 서너 달 동안 그의 얼굴을 볼 날이 서너 번 정도였으니 나로서도 답답했다. 어떻든 그를 붙잡아 두려한 내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다.
교실을 나간 그는 언제나 그렇듯 또 여러 날을 오지 않았다. 2학기가 시작되었지만 그 버릇은 여전하였다. 엄마는 바빠 도저히 학교에 나올 틈이 없었다. 고입 원서를 쓸 때쯤 해서 원서를 쓴다는 소문을 듣고 동민이가 돌아왔다. 동민이도 형편없는 점수와 수없이 많은 무단결석 일수가 적힌 고입원서를 실업계 고등학교에 냈다. 성적이 워낙 낮아 예상했던 대로 결국 떨어졌다. 후기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안 하는한 이제 동민이가 갈곳은 없었다. 다급해진 동민이는 직접 원서를 들고 지원자가 미달인 실업계 고등학교를 찾아다녔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무단결석이 많은 그를 받아줄 학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결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늦깎이 공부를 하는 야간 학교에 들어갔다. 그때에야 그는 자신의 지난 행적을 뉘우치고 눈물을 흘렸다.
“제법 의젓해졌구나. 어쩐 일로 이렇게 찾아왔니?”
내 말에 그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저번 1학기 시험에서 5등 안에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 말을 하러 나를 찾아온 거였다. 낮은 성적 때문에 고교 입시에서 겪었던 수모를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전교에서 5등 안에 들었다니 내가 더 반가웠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는 허리를 숙여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그러는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그가 돌아갔다.
나는 그가 놓고간 선물의 포장을 벗겼다. 놀랍게도 담배 한 갑이 나왔다. 동민이는 내가 담배를 피운다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동민이 고맙구나, 하는 생각이 내 가슴을 흔들었다. 그러면서 또 한편 놀란 건 학생 신분으로 어디서 담배를 구했을까, 그 걱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좋게 생각했다. 중요한 건 그가 마음을 잡았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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