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길에서 주운 돈

권영상 2013. 1. 12. 16:43

 

길에서 주운 돈

권영상

 

 

 

 

 

 

그 일이 있던 바로 그날 밤이었다.

일을 마치고 운동을 하러 아파트 뒤 느티나무길로 나갔다. 밤 11시. 늘 나가보면 나처럼 운동을 하러 나와 달리거나 가볍게 몸을 푸는 이들이 있었다. 근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아무도 없었다. 나는 혼자 느티나뭇길로 들어섰다. 이제 막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달리려 하는 내 발 앞에 종이돈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멈춤 섰다. 분명 지폐다. 천 원짜리. 사방을 슬쩍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이건 또 뭐야?”

그냥 줍기가 뭣해 그런 군소리를 하며 천 원을 주웠다. 다시 대여섯 발자국을 걸어나가는데 내 앞에 또 천 원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어디서 몰래카메라가 나의 양심을 찍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까보다 더 떨리는 마음으로 사방을 살폈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허리를 굽혀 천 원을 주웠다.

 

 내 가슴이 쾅쾅쾅 뛰었다. 황당했다. 생전 주워보지 못한 돈을 이런데서 이렇게 줍다니! 길에 떨어진 단추를 보거나, 너트를 보거나, 연필을 보긴 해도 돈을 주워보기는 처음이었다. 아무 노력없이 대여섯 발자국 거리에서 돈 이천 원을 줍다니. 마치 죄는 짓는 일 같았다. 근데 그걸로 그 죄스러움이 끝났다면 그만인데 그 악연은 계속 이어졌다. 서너 발자국을 더 가자 이번에 2천원이 떨어져 있었다, 반쯤 접힌 채로. 이제는 이 떨어진 돈이 걱정거리가 되었다. 주울까 말까 망설였다. 돈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것도 돈에게 면목없는 일 같았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돈 이천원을 집어 들고 말았다. 물론 그때까지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가 하는 짓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 같아 뛰면서도 내 몸이 뛰는 것 같지 않았다. 맑은 정신이기보다 뭔가에 홀린 듯한 찝찝함이 있었다. 겉으로는 욕심없이 살아야지, 하면서 이럴 때는 슬쩍 떨어진 물건에 욕심을 내는 나의 이중적 인격이 들통나는 것 같았다. 양심의 가책 때문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 넣은 돈 4천원을 꺼내어 주인이 찾아가라고 길 옆 어린 소나무 가지 사이에 끼어놓았다. 그러고는 운동도 그만 두고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주인 잃은 돈에 손을 댄 것만도 악연일까.

그날 밤부터 감기로 누워 앓기 시작했다. 감기라고 잘 걸리지 않는 내가 하루도 아니고 거의 한 달씩이나 기침에 시달리고 고열에 시달렸다.

‘그 돈 때문이었어.’

암만 생각해도 내가 갑작스레 감기에 걸릴 이유가 없었다.

가난한 엄마가 아기 분유를 사러가는 중에 잃어버린 돈일까. 어쩌면 힘든 아이가 라면 몇 봉지 사러가다가 그만 잃어버린 돈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자꾸 나를 괴롭혔다.

 

 

그 일이 있고 거의 한 해가 지난 오늘밤이다.

오늘도 밤 운동을 하러 늘 가던 느티나무길에 나갔다. 며칠 전에 온 눈 때문에 느티나뭇길이 빙판이다.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마당을 돌기로 했다. 아파트 마당엔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눈이 쳐져 있었다.

추운 날 아파트 마당엔 사람 하나 없었다. 오직 경비실 불빛과 보안등만이 춥게 켜져 있었다. 나는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두 번째 바퀴를 돌 때다. 뛰어가는 내 앞에 반쯤 접힌 지폐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만 원짜리였다.

 

‘악연이 되면 어쩌지.’

돈 4천원을 주운 뒤 한 달 동안 감기 몸살을 앓은 나는 애써 그 돈을 외면했다. 못 보았던 걸로 하고 뛰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돈을 보면 달라지는 모양이다. 세 바퀴를 돌면서부터다. 안 보려 하는 데도 내 눈이 자꾸  고요한 겨울밤 길 위에 떨어진 돈을 보고 있었다. 나는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얼른 이 돈을 치워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깊은 겨울밤에 마당에 나올 이가 있을 리 없었다.

 

 

여덟 바퀴를 힘들게 달리고 있을 때다. 정말이지 누군가 모자를 눌러쓰고 이제사 집으로 돌아오는 이가 있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그를 위해 아파트 마당을 벗어나 다른 데를 뛰었다. 거길 한참이나 뛰다가 돌아왔다. 그 돈이 이미 없어졌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그 만 원은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그때부터 내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돈을 보고 안 줍는 건 내게 온 복을 내치는 거나 마찬가지야. 내가 안 줍는다고 다른 누가 안 주을까. 돈을 주워 아무 거나 사 쓰고 말면 그만이지. 나는 점점 그 돈을 주울 쪽으로 나를 몰아가고 있었다.

‘컴퓨터 자판기를 거저로 준 친구와 술이나 먹지뭐.’ 그랬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화장실 전구가 나갔는데 전구를 갈아끼우자.' 그러다가 '담배나 사 피우지뭐.' 그러다가 '아이스크림이나 사?' 그랬다. 

아파트 마당을 도는 사이, 나는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벼라별 생각을 다 했다.

그렇게 마지막 열 바퀴를 돌아와 보아도, 만 원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돈이 내뿜는 유혹을 결국 물리치지 못했다. 끝내 나는 돈을 집어들었다. 벌레를 잡듯 돈의 끄트머리를 잡고 집에 돌아왔다.

 

 

“돈을 주웠어. 돈 주운 값을 치를 텐데.......”

나는 아내에게 돈을 들어 보였다.

“걱정마. 내일 성금 부치는 날이니 거기 부칠게.”

주운 돈 때문에 한 때 고생한 걸 아는 아내가 얼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나는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저금통에 그 횡재라면 횡재한 돈 만원을 넣었다. 그러고 나니 답답한 마음이 풀렸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몇 억씩이나 되는 복권 당첨금을 탈 생각을 다 할까. 나는 참 별 수 없는 소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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