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은 개인주의를 지향한다
권영상
“여보, 전화!”
저녁을 먹고 베란다에 나가 알로에 화분에 물을 주고 있을 때다. 아내가 나를 부른다. 물을 주는 중이라 금방 돌아설 수 없다.
“전화라니까! 신림동 고모!”
아내가 독촉이다.
“알았어. 잠깐만!”
나는 물바가지 물을 다 주고 달려가 전화기 곁에 내려둔 수화기를 든다. 누님이다. 통화를 마치고 다시 베란다로 나가려는데 아내가 부른다.
“뭐라셔?”
“어. 외사촌 형이 사위를 본다네.”
“그리고?”
뭐가 또 궁금한 모양이다.
“서희, 제주도 남자와 신림동서 한번 만났대.”
“불러서?”
“아니, 제가 찾아왔다나 봐.”
“이제 뭔 서광이 비치려나 보네.”
“글쎄.”
나는 그러며 베란다로 나가 난화분에도 물을 주고, 행운목에도 주고, 또 주말농장에서 옮겨온 상추며 쑥갓에도 물을 줬다. 아침 해 뜰 무렵에 주는 게 좋다는데 아침 출근이 이르다 보니 대체로 저녁에야 준다.
서희 결혼이 너무 늦었다. 직장에 다니느라 혼기를 놓쳤다. 언제 누님이 제주도에 아는 남자가 있다는 말을 했었다. 아내는 그게 궁금했었나 보다.
2,3십년 전만해도 전화기는 외부와의 소통의 절대적인 수단이었다. 밥을 먹다가도 식구들한테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아 바꾸어 주었다.
“아무개야, 네 남자친구한테서 전화 왔다.”라고 하거나 “여보, 김부장!” 하며 불렀다. “에미야, 전화 받아라, 아무개 엄마다.” 그러기도 했다. 아이들이 먼저 받으면 마당에 나가 있는 아빠를 힘껏 불렀다. “아빠, 전화 왔어요!” 하고. 총각 시절 예닐곱 명의 하숙생을 둔 하숙집에 살 때가 있었다. 그 집 주인아주머니는 하숙생들에게 전화가 오면 거실문을 열고 하숙방을 향해 소리쳤다.
“김선생! 전화 왔어. 제천 그 아가씨 같아.”
하숙집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그 하숙집에 한두 달만 살아보면 하숙생들끼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대충 알게 된다. 홀어머니를 고향에 두신 분인지, 아버지가 광부인지, 맏이인지, 지체인지, 제사를 엄중하게 지내는 집안 사람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어떤 아가씨랑 연애를 하는지......
이런 일은 하숙집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내 어린 시절 옛 고향엔 전화기 있는 집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무슨 급한 일이 있으면 근방에 있는 괜찮게 사는 집의 전화를 이용했다. 그런데 이런 이들도 있었다. 동회와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도 급한 일이 있으면 동회 전화를 급한대로 이용하는 모양이었다.집에 있다 보면 생뚱맞게도 동회에서 들려오는 스피커 소리를 듣는다.
“아아, 대추나무집 김선구씨, 전화 왔습니다. 당숙께서 급한 일로 병원에 입원하셨답니다. 혹 김선구씨 소재를 아시는 분은 전화 왔다고 좀 알려주세요.”
열대여섯 살 먹은 나까지도 대추나무집 아저씨한테 전화가 걸려온 걸 다 안다. 거기다가 그 집 당숙에게 위중한 일이 생긴 것도 저절로 알게 된다. 그러니까 어린 나부터 나이 많이 자신 어른들까지 온 마을 사람들이 마을 일을 속속들이 다 알게 되는 셈이다. 그런 까닭에 혹 길에서 힘든 일을 당한 분을 만나게 되면 사정의 선후를 듣고 위로도 하고, 또 위로도 받아가며 살았다.
당시의 전화기는 공동체를 지향했다.
전화기 한 대로 식구들 중 누가 어떤 일로 고민하고, 어떤 친구들과 어울려 어떤 희망찬 일을 계획하는지 대략은 알았다. 하숙집도 낯선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 공동체다. 그 공동체도 전화기를 통해 사생활을 어지간히 드러내며 살았다. 조심조심 전화를 받는다 해도, 또 그걸 엿듣지 않는다 해도 한두 마디 말만으로도 공동체의 속사정을 감잡아냈다. 그래서 난데없이 축하주를 빼앗아 먹기도 하지만 위로주도 사주며 서로 감싸며 살았다. 그게 지난 날이었다. 지난 날은 사고의 지향점이 공동체에 가 있었다. 지금 우리가 부러워하는 라다크나 물질보다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아미쉬는 갈 곳 잃은 인류가 눈여겨보는 대표적인 공동체 마을이다.
전화기의 역할은 그 말고도 또 있다.
싫든 좋은 가정의 중심에 있는 전화기를 이용하면 화를 낼 일도 참아야 한다. 남자 친구 전화를 엄마가 받아주기를 바라는한 엄마와 냉랭한 관계로 지낼 수 없다. 하숙집 전화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으니 하숙집 주인과 도타운 관계를 가져야 하고, 동회 전화를 써야 하니 그들이 혹 못마땅하게 보여도 참아내야 한다. 그래서 싸울 일도 웬만한 일은 참는다. 참는다고 그냥 꾹꾹 눌러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직설적이 아닌 은근하게 우회적인 방식으로 참은 화를 풀려면 풀었다. 그러기에 그 시절 일상 언어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메타포나, 알레고리가 발달해 있었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속담은 대표적인 알레고리 문학언어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가정에 한 대씩 있던 가정 전화기마저 사라진 집이 많다. 전화기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휴대폰이다. 저마다 휴대폰을 쓰니까 전화기를 둔다는 건 비경제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집안의 중심에 전화기가 없다. 그런 집은 마치 오아시스가 사라진 것처럼 삭막할 것 같다. 있어야할 자리에 아버지가 없어진 것 같고, 있어야할 자리에 퇴계 이황이나 세종대왕이 사라진 지폐 같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각자 자신의 방에서 문을 닫고 어디론가 외부로 전화를 하고, 문자를 끊임없이 날린다. 한 가족이어도 서로 어디를 향해 그렇게 쉬지 않고 통신을 하는지 모른다. 몸은 집에 있지만 가족 구성원들의 생각의 방향은 가족이 아니라 외부를 향하고 있다.
울산에 볼일이 있어 엊그제 다녀온 적이 있다. 거기 문학을 하시는 선배 한 분이 자신의 집 이야기를 하셨다. 얼마전에 시집 간 딸이 제 남편과 아이 둘을 데리고 집에 왔단다. 와서는 오순도순 사는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오자마자 제 각각 휴대폰을 들고 뿔뿔히 흩어져 문자를 하고 게임만 하더란다. 밥 먹을 때에도 식탁에 휴대폰을 얹어놓고 문자를 날리고, 휴대폰 속의 누군가와 키득거리고, 중얼거리고, 거기서 꺼낸 노래를 듣고.....
어쩌면 웃자고 좀 과장해서 하신 말씀 같았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 앉은 이들 모두 그 말에 동조했다. 좀 덜 심각할 뿐이지 그런 경험담 한 마디씩을 다 했다. 어쩌면 가족공동체가 휴대폰 때문에 허물어질 위기에 와 있는지 모른다. 저마다 엄청난 통화료를 내며 휴대폰을 쓰지만 가족구성원들은 가족들의 고민이 무언지, 무얼 원하는지 정작 알지 못한다. 가족 구성원들은 가족과 대화하는 게 아니라 점점 휴대폰과 대화한다. 아무도 엿듣지 않는 자신의 방에서 또는 외부에서 휴대폰과 통화하며 산다.
전화기가 공동체를 지향한다면 휴대폰은 개인주의를 지향한다.
전화기는, 벨이 울리면 누구든 전화를 받아 발신자가 원하는 이에게 수화기를 건네주는 예법이 있다. 그런데 휴대폰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소리쳐도 주인이 아닌 이가 받는 건 예의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아내의 휴대폰이 운다고 남편이 열어 대신 받는 건 대단한 결례다. 내 고민이 뭐라고, 내가 지금 죽고 싶다고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휴대폰의 예법처럼 그 누구도 그 울음소리를 들어줄 수 없는 사회가 됐다. 휴대폰의 개인주의가 공동체 구성원간의 간고한 벽을 쌓아올린 셈이 되었다.
집 전화기의 벨이 울린다. 시금치를 데치던 아내가 턱으로 전화기를 가리킨다.
“저, 분남이에요.”
전화기 속 목소리가 반갑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세요?”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그 분남씨가 누구인가. 아내의 고향 초등학교 동창이다. 남편이 전자회사 임원이고, 아들이 군에 갔는데 두어 달 있으면 제대를 한다는 정도는 아내를 통해 안다. 자녀들이 대학을 갈 때면 서로 축하 선물을 해 주는 사이다.
“잠깐만요. 전화 바꿔 드릴 게요.”
바쁜 손이 난 틈을 보아 아내에게 수화기를 건넨다. 통화를 마치자, 아내가 얼른 가스레인지 쪽으로 다시 간다.
“뭐래?”
내가 묻는다.
“아들 결혼시킨다고. 제대하면 바로.”
그쯤 서로 묻고 살게 해주는 게 바로 집 전화기다.
그러나 휴대폰 통화를 마치고난 아내에게 통화 내용을 질문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아니, 예의가 아니게 되어 있는 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왜곡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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