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그 사랑이 나무에게도 진정한 사랑일까

권영상 2012. 11. 29. 21:42

 

그 사랑이 나무에게도 진정한 사랑일까

권영상

 

 

 

 

   수업을 마치고 내 방에 내려와 막 앉을 때다. 가방 속에 넣어둔 휴대폰이 울렸다. 꺼내어 보니 낯선 전화번호다.

 

“여보세요!”

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저어, 안성 집에 사는 사람입니다.”

여자분이다. ‘안성 집’이라 말하는 걸 보니 안성 집에 잠시 세를 들어와 사는 여자분 같았다. 아직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어 나는 그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망설였다. 그러다가 쉬운 대로 “안녕하세요? 애기 어머니.”하고 받았다.

 

경상도 사투리가 간간히 섞인 그분 용건은 작년 살아보니 현관문에 바람이 많이 들어오더라. 그러니 덧문을 하나 더 만들어 달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애기가 감기 걸릴까봐 그런다며 거기 마침 소목일 하는 목수가 한분 상주해 있으니 부탁해 달겠다고 했다. 나는 얼른 애기를 위한 건데 뭔들 못하겠느냐고 승낙을 했다. 그러면서 말틈을 내어 어색하게 내 용건을 꺼냈다.

“이런 말씀 드려도 되나 모르겠습니다만.”

망설이는 내 목소리를 듣고 그 경상도 억양의 애기 엄마가 ‘해 보세요.’ 그랬다. 나는 그 목소리에 용기를 내어 간신히 말을 꺼냈다.

 

“내년 봄에 거기 마당에 나무 몇 그루 심을까 해서 그러는데, 가서 좀 심어도 될까요?”

내 말이 끝나자, 저쪽에서

“아,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신가요. 연락을 해주시고 오세요. 그러면 저희가 삽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여자분은 사근사근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심을 나무는 대략 감나무, 매실나무, 팥배나무, 명자나무, 생강나무, 줄장미 등으로 미리 정해두었다. 묘목 살 곳도 서울 근교 청계산 주말농장 근처에 있는 농원을 알아 놓았다. 허락도 받아놓았으니 이제 봄만 돌아오면 된다.

 

 

‘나무를 어떻게 심지?’

그런데 그렇게 나무를 심겠다 하고 나니 걱정 아닌 걱정이 생겼다. 세상에! 나무를 어떻게 심냐니! 나는 어처구니 없는 나를 향해 웃었다. 웃고 생각해 보니 괜한 걱정 같지는 않았다. 평소엔 ‘그냥 심으면 되지’, 했는데 아니다. 나무란 한번 심으면 수십 년을 간다. 그런 나무를 내 실수로 잘못 심으면 단 한 달도 못 살고 만다. 딸아이를 키우느라 토끼며 앵무새며, 십자매, 햄스터까지 얼마나 많이 길러보았는가. 그러나 그들 모두 우리들의 부주의로 잃고 말았다. 내게는 그런 아픈 기억이 있다. 처음 분양 받아올 때는 애지중지 받아오지만 잃고나면 그때만 애잔할 뿐 또 얼마 지나면 다 잊는 게 무서운 사람의 기억이다. 그런 기억 때문일 거다. 막상 내가 고른 나무를 내 땅에 심으려 하니 어떻게 심고, 가꾸어야할지 걱정이 되었다. 내게는 좀 그런 악취미가 있다. 닥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근심 걱정하는 성질이 좀 있다. 아니, 어쩌면 이게 나이를 먹었다는 징조일지도 모른다.

 

 

“나무 심을 구덩이를 파면 그 밑에 거름을 넣나?”

나는 주방에서 파를 다듬는 아내에게 슬며시 물었다.

“거름을 넣었다가 썩으면 그만큼 나무가 주저앉지 않을까?”

문득 한 질문인데 아내가 그렇게 받았다. 나도 그런 걱정이 있었다. 그냥 땅을 파고 묘목을 심는 건지, 거름은 넣는건지. 나무마다 구덩이의 깊이는 다르지 않은지. 누군가에게 들은 말인데 구덩이를 깊게 파야할 나무가 있고 그렇지 않은 나무가 있댔다. 이를테면 소나무는 구덩이를 파서 심기보다 묘목을 맨땅에 세워놓고 흙을 끌어올려 뿌리를 덮어준다는 마음으로 심어야 산다는 말을 들었다. 어떻든 이식한 나무가 죽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것은 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저런 고민 아닌 고민을 하고 있을 때다.

<고문진보> 후집을 읽다가 우연히 유종원이라는 이의 “정원사 곽탁타 이야기”를 만났다.

곱사등이 정원사인 곽탁타가 있었다. 등에 낙타처럼 혹이 불거졌다고 해 마을사람들이 ‘탁타’라고 그를 놀렸다. 그는 그 별명이 자신에게 걸맞다며 제 이름 대신으로 썼다는 인물이다.

그는 정원사답게 나무를 옮겨심는 명수였다. 다른 이들이 옮겨심으면 나무가 죽는데 탁타가 옮겨심은 나무는 모두 튼튼하게 잘 살았다.

“탁타, 대체 그 비결이 뭔가?”

그의 실력을 부러워하는 정원사들이 찾아와 비결을 물었다.

 

 

“내게 무슨 비결이 있는 건 아닐세. 단지 나무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지.”

그가 말하는 나무의 본성이란 나무를 옮겨심을 때 뿌리를 곧게 펴고, 흙을 덮을 땐 쪽 고르게, 덮는 흙은 옛흙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뿌리 사이는 꼭꼭 다져주며 아기를 낳듯 정성을 다 해 심으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심고나면 아주 내버린 듯이 대해야 하네. 그래야 나무의 본성이 온전히 보존되니까.”

그러면서 그는 다음 말을 덧붙였다.

“나무를 지나치게 사랑하고, 너무 걱정한 나머지 아침 저녁으로 어루만져주고, 떠나서도 생각하고, 심하면 손톱으로 나무껍질을 벗겨보고 그러면 끝내 나무를 죽인다.” 고 했다.

내가 나무 심기를 걱정한 건 어쩌면 이 대목 때문인듯 하다. 나무를 사랑한답시고 지나치게 간섭한 나머지 그만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나는 곽탁타의 나무 옮겨심는 법을 읽으면서 그런 내가 실은 두렵다. 내 손으로 내가 선택한 나무를 내 땅에 심는다면 내가 그 나무를 어떻게 대할지 불을 보듯 뻔하다. 나무를 가꾼다는 핑계로 나는 밤낮 나무에 매달려 나무를 달달 볶을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내 딸아이를 키울 때도 내가 얼마나 그의 인생에 끼어들어 이래라 저래라 했는지 안다. 곽탁타의 말에 의하면 나무는 묘목을 심을 때는 정성을 다하되 심고 나면 내버리듯이 잊으라 했다. 나는 식목에 관한 책을 뒤져보았다. 나무 심는 법도 나왔고, 키우는 법도 나왔다. 주로, 나무를 심고 나면 몇 년생은 어떤 가지를 어떻게 자르고, 어떻게 순을 치고, 중심 줄기는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거름을 줄 때 나무 둘레에 구덩이는 어떻게 파는지 등에 대한 글만 나왔다. 나무의 인생에 끼어들어 이렇게 저렇게 간섭해야 바르게 큰다는 식으로 내 눈에 읽혔다.

 

 

다친 달팽이를 보거든

도우려고 나서지 마라.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성급한 도움이 그를 화나게 하거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마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장석주의 글에서 읽었던 장 슬로우의 시가 생각났다.

나무를 사랑한다며 나무의 생애에 함부로 끼어들 내가 두렵다. 나무를 심어놓고 그 나무로부터 멀찌기 떨어져서 밤이든 낮이든 아주 내버린 듯 지켜볼 여유로움이 내게 있을까. 하루라도 빨리 꽃피우고 빨리 열매 맺게 하려는 이 도시의 광풍과도 같은 과속 습성을 내가 버릴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나무를 심기 전에 내가 먼저 할 일이 있다. 나를 뜯어고치는 일이다. 거리를 두고 느긋하게 바라볼 줄 아는 답답할 만큼의 외면! 고구마 한 줄기, 오이 한 점 심어 가꿀 때도 내가 얼마나 내 뜻대로 그들의 삶에 끼어들어 간섭하게 될 지를 안다. 나무는 나무대로, 풀은 풀대로, 고구마는 고구마대로 저들은 이 땅에서 사는 소명을 안다. 그러니 남의 일에 가타부타 훈수를 두는 건 그들의 본성을 해하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농사를 잘 모르는 농사꾼이란 얼마나 독선적이고 전제적인가. 제 판단대로 모종을 내고 뽑고, 가지를 자르고, 치고, 원하는 대로 옮기고, 베어내고, 통째 밭을 갈아엎는다.

 

독선을 버리지 않고는 나무를 심되 나무를 살리지 못한다. 그냥 두어도 나무는 느리게 제 본성을 찾아간다. 우리가 나무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나무에게도 진정한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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