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와 나>
조금 갖고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
권영상
1. 어기찬 생명
호박 구덩이에
뒷거름을 넣고
호박씨를 묻었다.
참 얼마나 기막힌 일인지
호박씨는
그 냄새나는 구덩이에서
푸른 깃발을
찾아들고 나왔다.
<동시와 나>라는 주제를 앞에 놓고 생각을 해봅니다. 내게 있어 동시는 무엇이었나? 아니면 동시는 나와 서로 어떻게 기대며 살아왔는가? 그 생각을 하려니 제 동시 “호박씨”가 떠올랐습니다. 제게 있어 동시란 어쩌면 냄새나는 구덩이에서 찾아들고 나온 ‘푸른 깃발’ 같은 거였구나 했습니다.
호박씨를 심으려면 이른 봄 울담 밑에 괭이로 구덩이를 파야합니다. 깊고 넓게 팔수록 좋습니다. 구덩이를 다 파면 액비통에 잘 삭혀놓은 인분을 한 초롱씩 줍니다. 아무리 냄새나는 똥도 발효를 잘 시켜놓으면 구린내는 싹 빠지고 된장맛이나 김치맛처럼 구수해지지요. 그걸 먹은 흙구덩이에 호박씨를 넣고 불룩하도록 흙을 덮습니다. 그러고는 한 열흘 지나면 말뚝같이 실궂한 호박순이 흙더미를 밀치고 올라옵니다. 인분을 실컷 먹었으니 그 뒷심을 받아 검푸르고 기운찬 떡잎을 들고 나옵니다. 생명이란 게 얼마나 어기찬 것인지를 호박순을 보면 압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힘을 얻고, 의지가 약한 사람들은 번쩍, 하는 기운을 얻게 됩니다. 호박순의 실한 대가리는 용을 쓰듯 담장으로 기어올라가 담장을 푸르게 뒤덮습니다. 그래서는 인간에 이로운 호박을 키웁니다.
중학교 2학년 때입니다. 나의 기운이 뚝 꺾였습니다.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장기간, 그러니까 15,6년 동안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갑작스런 사건 때문에 나는 중학교를 어물어물 졸업하고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제가 원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종용 때문이었지요. 그 바람에 나는 ‘소치는 아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학교도 못 가고 암소를 돌보며 3년을 지냈습니다. 주로 집 뒷벌에 있는 경포호숫가에 나가 소를 풀어놓고 하루해가 다 가도록 풀밭에 누워 구름을 바라보며 살았지요.
그때 나는 그 형을 만났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그 형’입니다. 그 형은 우리 초당 허균선생 생가터에 공부를 하러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공부하다가 쉴 때면 그 형은 호숫가로 나와 기타를 치고, 책을 읽고, 그러다 심심해지면 촌놈인 어린 나를 데리고 놀았지요. 나는 그 형에게 호숫가 갈대밭을 보여주고, 잉어며 가물치 잡는 법이며, 감자서리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요. 그러며 같이 놀던 그 형은 방학이 끝나자 그곳을 떠났습니다. 떠나면서 내게 책 한권을 주고 갔었지요, 겉장도 다 떨어진.
나는 그 책이 무슨 경전이나 되는 듯 끌어안고 매일매일 한 페이지씩 되는 글을 외었습니다. 그 글은 너무도 힘찼습니다. 죽은 듯이 사는 나를 막 살려내는 듯 했고, 꿈이 없는 내게 꿈을 퍼붓는 것 같았습니다.
“임이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이것이 곧 임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임은 몇 번이고 비우고 비우신 다음 늘 새로운 생명으로 채우셨습니다.....”
나는 쉬지 않고 이 글을 외우고 또 외었습니다. 나중, 내가 고등학교에 어찌어찌하여 들어간 뒤의 어느 날, 나는 이 글이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기탄잘리’라는 걸 알고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그 형이 내게 이렇게 귀한 시집을 주고 간 겁니다. 나는 그날부터 새로운 생명으로 채워지는 내가 너무도 기뻤습니다.
“나도 시인이 될 테다.”
어린 나는 그때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는 말이 참 옳습니다. 외로울 때에 그 형을 참 잘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참 옳은 꿈 같았습니다.
한 편의 글을 쓰는 데는 뒷심이 필요합니다. 뒷심이란 호박씨 하나가 호박순으로 치밀어오르는 데 필요한 힘입니다. 내게 있어 그 뒷심이란 어머니의 오랜 병환과 3년이나 진학을 못하고 떠돌던 외로운 불행이었습니다. 그 불행이 내 꿈을 키워낼 뒷심이 될 줄을 누가 알기나 했겠어요. 시와 뗄 수 없는 관계가 그러니 그때, 내 나이 17살 무렵에 만들어진 셈입니다. 그 일로 나는 주먹잡이나 술주정뱅이가 되지 않고 이 길을 곧장 걸어왔습니다. 그러니 동시가 고마워도 보통 고마운 게 아니지요.
2. 빈둥빈둥빈둥
바람 부는 날
숲에 가 보면 안다.
나무들이 온종일 빈둥거린다.
빈둥빈둥빈둥
바람을 따라 이러저리 흔들리며 논다.
일없는 나룻배처럼
빈둥빈둥 빈둥거린다.
바람 부는 날에는
새들도 바람을 타며 하늘 모퉁이를
빈둥거리며 논다.
-그렇게 놀아서 나중에 뭐가 되려고!
아무도 그런 말 안 한다.
이것도 제 동시 “빈둥빈둥빈둥”입니다.
1979년에 등단하여 동시를 쓴 지 올해로 33년입니다. 참 많은 햇수입니다. 그러느라 그만 나이 예순을 덜컥 넘겼습니다.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큰 사업체 하나는 일구었을 테고, 정치를 했다면 꽤 큰 정치를 했겠지요. 그런데 먹고사는 일과는 먼, 문학 장르 중에서도 잘 알아주지 않는 이 동시쓰기에 한 세상을 바친 거네요. 어찌 보면 어리석기도 하고 미련스러운 게 나인 듯 합니다.
그러나 동시는 세속으로 향하려는 나를 끊임없이 바로잡아준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했습니다. 내가 방향을 잃을 때, 세속화 될 때 나는 ‘기탄잘리’를 떠올렸습니다. 기탄잘리가 절망에 빠진 어린 소년의 손을 잡아주었듯 동시도 나의 순수성을 지켜준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나는 한 가지 방식에 안주하며 글을 쓰지 못합니다. 성질 탓일까요? 고향 강릉에 살 적엔 주로 순수 서정시를 썼댔습니다. 그 몇 년 뒤 나는 <삼국유사>를 시로 썼는데 우리 것, 우리 뿌리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5공화국을 만나면서 억압받는 현실을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로 비유하여 썼지요. 제 동시집 <버려진 땅의 가시나무>,<밥풀>이 그때에 나온 겁니다.
그 시대가 끝나갈 무렵 경제 성장을 배경으로 동화문학이 문학시장을 키워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반면, 동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장르로 외면을 당했습니다. 그 때의 위기감이 동시 속에 서사적 구조를 담아보자는 생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것만이 서사문학 쪽으로 가버린 독자를 끌어당길 수 있을 거라 믿었지요. 그때 나는 두 권의 이야기 동시집을 냈습니다. <월화수목금토일별요일>과 <신발코 속에 생쥐가 산다>였습니다. 두 권을 내고 나는 이야기 동시집에서 손을 털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서정시로 돌아왔습니다. 시중에 나돌던 ‘어린이와 어른이 읽는’이라는 어정쩡한 동시집이 아닌, 타켓이 분명한, 어린이만을 위한 동시로 말이지요. 그 후에 나온 동시집이 <실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나>,<구방아, 목욕가자>,<잘 커다오, 꽝꽝나무야>,<엄마와 털실뭉치>등 입니다.
그 동안 새 영역을 탐색해 보려고 여러 분야를 파헤쳤습니다. 그러느라 동시집을 15권이나 냈습니다. 같은 성향의 책 몇 권을 내면 금세 새로운 길을 다시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쯤 와서 생각한 게 있습니다. ‘빈둥빈둥빈둥’입니다. 나는 내 동시의 밑바탕에 이 정신을 깔고 있습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너무 바쁩니다.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의 머릿속엔 성적과 경쟁만 있을 뿐입니다. 나쁜 어른들 때문입니다. 어른들의 욕망 때문에 아이들이 경쟁에 내몰립니다. 그러기에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행복하지 않습니다. 좀 해 행복할 줄 모르는 게 오늘의 우리들입니다.
빈둥빈둥빈둥.....
옛 어른들이 말했습니다. 노는 것도 인생의 하나라고. 쉬거나 노는 일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여백입니다. 독자들의 마음 안에 그런 여백을 그려주어야할 일이 이제 나의 일이 되었습니다. 적게 갖고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동시뿐이지, 싶습니다. <동시마중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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