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몸에선 외롭지만 가을 냄새가 난다
권영상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내어 인터넷에서 수제천을 꺼내어 듣는다. 텔레비전 드라마 사극에서 왕세자가 등극할 때 나오는 귀에 익은 관현합주곡이다. 화려한 음악이지만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우리 전통음악은 사람을 흥분시키지 않는다. 나도 잔잔해진 마음으로 일어나 아파트 마당으로 깊이 들어선 가을을 본다. 이 땅에 와 한 때 세상을 푸르게 물들이던 나뭇잎들도 기어이 노란 빛으로 떠난다. 몇번인가 낙엽들이 땅에 내려앉는 걸 보는 동안 음악도 끝이 났다. 창문을 닫고 앉는다. 수제천의 여운이 고즈넉히 방안에 흐른다.
그러고 보니 내 방에도 고전악기가 하나 있다. 내 책상 옆 서가 맨 윗칸에 늘 우두커니 있는 옹기로 만들어진 검정빛 악기다. 얼핏 보아 굵은 감자를 닮았다. 나는 그걸 꺼내어 손안에 놓았다. 훈이라는 악기다. 자세히 보니 감자가 아니라 양파를 닮았다. 밑둥이는 평평하고 배부른 허리가 위로 올라갈수록 오무라진 헐없는 양파 모양이다. 이게 악기란다. 값비싸고 정교한 서양 악기만 보아온 내 눈에 이건 악기라기 보다 초등학생이 장난삼아 만든 토기 같다. 그래서 그랬겠다. 이름도 외었다가 잊었다가 했다. 그러니까 훈은 내게서 그런 대접을 받았다.
이 훈이 내 손에 들어온 것만도 7,8년은 됐지 싶다.
어떻게 내 손에 들어왔는지, 기억조차 없다. 아, 기억이 난다. 국어선생님 한 분이 국악기 연수를 다녀오며 사주신 거다. 그분 나름대로는 뭔 좋은 선물이라도 해야겠는데 하고 고심을 하였을 것 같다.
나는 선물로 준 분이 고마워 이 훈을 내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책상위에는 차츰차츰 당장 급한 일을 하는데 필요한 책들이 또 올라오기 시작했다. 훈은 조금씩 조금씩 밀려나 책 뒤에 가 놓이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자, 나는 서가 맨 꼭대기 칸에 올려두었다. 그게 악기였으니 망정이지 악기가 아니었다면 방구석까지 내려와 굴러다니다가 좁으면 베란다에 쫓겨나고 말았을 것이다. 베란다 화분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가 누구의 발길에 채어 화분에 부딪힌다면 그것의 수명은 그렇게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곧죽어도 훈은 악기였다. 아무 쓰일 데가 없는 물건도 악기니까 서가 속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 같다. 국악기 중에도 모르는 악기가 많고, 이름만 알거나 이름도 처음인 악기가 많다. 편경이나 편종은 들어봤다. 그러나 특종, 특경, 어,축, 약, 화. 우. 둑, 휘, 삭고, 건고 등은 처음이다.
서가 속의 훈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외던 이름조차 잊을 때 누가 물으면 글쎄, 하고 말기 일쑤였다. 연주 무대에서 본 적도 없고, 훈이라는 이름도 악기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름이었다.
그러다가 오늘 처음으로 훈을 꺼내었다. 먼지가 악기의 어깨에 뽀얗게 앉았다. 가만히 보니 앞면에 구멍(지공)이 세 개 뚫려있고 뒷면에 두 개가 뚫려있다. 먼지를 둔 채 취구에 입을 대고 불어본다. 불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오랫동안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살았으니 소리가 날 리 없겠다. 쉬쉬, 헛바람소리만 난다.
나는 다시 전후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고 취구에 입을 대고 불어봤다. 역시 소리가 없다. 이리저리 대고 부는데 뜻밖에도 부웅, 하고 운다. 그 자리를 기억하고 고기에 입술을 대어 또 불어본다. 우우웅, 한다. 기적같이 소리가 살아난다. 이 ‘우우웅’하는 소리가 응종음이란다. 다섯 개의 지공을 막고 나오는 소리다. 양음악의 ‘도’에 해당되는 소리. 둥그런 몸체를 울리고 나오는지라 소리가 보기와 달리 굵고 편안하다. 어쨌거나 소리가 나는 걸 보면 악기는 분명 악기인 모양이었다. 악기임에도 내 책장에서 무려 7,8년을 옹기그릇쯤으로 푸대접을 받으며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 오랜 잠에서 깨어나 내가 알맞게 입을 대자, 비로소 훈은 잠든 소리를 살려냈다.
잠이란 무엇인가. 죽음이 아니라 제 내부에 생명의 불씨를 지켜내는 일이다. 비록 실오라기 같은 불씨라도 그 불씨의 끈을 놓지 않고 멈추듯이 지속하는 상태. 그러므로 잠을 ‘씨앗을 담는 그릇’이라 보는 학자들이 있다. 우리가 죽은 듯이 잠을 잔다 해도 우리의 육신 안에는 생명이라는 씨앗이 담겨 있다.
몇 년 전인가 만주의 어느 연못 속에서 1200년 된 연꽃씨를 건져 분홍 꽃을 피우는 데 성공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설마!’했다. 어떻게 고 조그마한 씨앗이 공기도 통하지 않는 진흙 속에서 1200년을 견딘담, 하고. 1200년이라는 기간을 상상해낼 수 없는 나에게 그 말은 납득이 안 됐다. 근데 재작년인가 우리나라 가야문화연구소가 성산산성 발굴 작업시 연못 안에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연꽃씨 열 개를 찾아내었다 한다. 물론 그 씨앗으로 붉은 연꽃을 피워내는데 성공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러니까 그 연꽃씨는 700여 년 동안 생명을 품고 연못 속에 잠들어 있었던 셈이다. 그뿐 아니다. 일본 자바의 연꽃공원도 2000년 전의 연씨를 되살려내 만들었다고 한다.
생명의 신비성보다 잠의 신비성에 더욱 놀란다. 잠은 고 작은 씨주머니 그릇 안에서 씨앗의 불씨를 놓지 않고 수천 년을 견뎌냈다. 생각할수록 이해 못 할 만큼 신비한 것이 잠이다.
생각이 거기에 가 닿자, 지금 내가 들고 있는 훈이 좀전과 달리 보였다. 훈의 어깨에 앉은 먼지를 털었다. 휴지를 적셔서 말끔히 닦았다. 그러고는 취구에 경건히 입술을 대었다. 숨 한 줄기를 들이쉬어선 일정한 속도로 조용히 불었다. 숨죽이며 있던 소리에 핏기가 돌며 살아나기 시작했다. 바람에 휘파람 소리를 내는 병보다 더 크고 둥근 소리다. 훈은 7,8년 동안 그 어떤 미래에 대한 예감도 없으면서 잠을 잤다. 그러면서도 저의 소리, 응종음을 단 한 시도 내려놓지 않았다.
나는 빈 방이 울리도록 굵고 부드러운 음을 자꾸 살려낸다. 그러다가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지나가는 가을 속으로 훈을 불었다. 노랗게 익어가는 느티나무 빛깔과 찬 바람 소리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떠드는 소리와 쇠붙이 미끄럼틀에서 나는 발소리를 만나 한 식구처럼 어울린다. 소리는 소리와 어울린다. 오래된 전통악기가 21세기를 사는 지금의 아이들 목소리와도 금방 섞인다. 아이들이 훈의 소리를 듣고 우리 집을 쳐다본다. 훈을 멈춘다. 어디선가 훈의 소리가 저혼자 들려온다. 디귿자 모양의 아파트가 훈의 소리를 받아 되울려내는 반향이다. 외롭지만 훈의 몸에서 가을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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