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버스터미널에서의 어떤 배웅

권영상 2012. 11. 12. 08:48

 

버스터미널에서의 어떤 배웅

권영상

 

 

 

 

 

금요일 오후 4시 20분 동해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출발 5분전이다. 옥계에 있는 한국여성수련원에 일이 있었다.  굳이 승용차를 두고 버스에 오른 건 버스에서나마 좀 쉬고 싶어서였다. 나는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눈을 감았다. 허겁지겁 달려와 그런지 가슴 뛰는 소리가 난다.

“아가씨, 우리 어무이 멀미해 가지고 그러니 자리 좀 바까 주소.”

그때였다. 굵직한 사내 목소리가 출입문 쪽에서 났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빙그레 웃었다. 오래 전, 직행버스나 고속버스를 탈 때면 많이 듣던 말이었다.

 

 

“우리 어무이, 묵호 이모집 가시는데 멀미해 그런다 아입니까.”

눈을 안 떠 볼 수가 없었다. 어떤 사내이길래 낯선 여자 승객에게 이토록 솔직한 대화를 꺼낼 수 있을까 해서였다. 묵호 이모를 찾아가시는 사내의 어머니는 나름대로 마음이 들떠 있거나 행복해 있을 테다. 그런데 멀미로 고생하신다면 그건 어머니 본인도 그럴 테지만 자식으로서도 못 견딜 일이다.

 

나는 눈을 떴다. 덩치가 큼지막한 사내다. 살집이 좀 있어 그런지 한눈에 보기에도 순진해 보이는 40대 후반이다. 그는 버스 천장에 고개가 닿을까봐 구부정하게 서서 이제 막 자리를 양보하느라 일어서는 젊은 여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연실하고 있었다.

“어무이요. 일로 오소.”

사내는 저쪽 뒤쪽에 앉은 어머니를 불렀다.

 

나는 눈을 붙이려던 생각을 버리고 그들 모자를 유심히 봤다. 사내의 어머니가 다가와 자리에 앉자, 사내는 안심한 듯 버스에서 내려 버스 곁에 서 있었다.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서 있을 모양이었다. 사내는 주홍색 등산점퍼에 검정 바지를 입고, 한 손에 두툼한 가방을 들었다. 어머니의 눈길을 받기가 뭣해 그런지 딴 데를 보고 서 있다.

“얼른 아들한테 가 봐.”

창가에 앉은 엄마가 창밖의 사내에게 소리친다. 집에 두고온 손자를 그렇게 지칭하는 모양이었다. 사내는 어머니 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미 걱정말구 어여 가.” 어머니가 이번엔 가라고 손짓을 했다. 사내가 또 고개를 끄덕이고는 딴 데를 보고 섰다.

 

 

그러는 사이 버스 출발 시간이 다 됐다.

운전석 위에 붙어있는 디지털 시계에 ‘4시 20분’이 떴다. 버스 기사가 올라왔다. 시동을 걸며 버스 출입문을 닫았다.

“차 좀 열어주소, 기사 양반!”

사내의 어머니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스비가 있을란지......” 열어주는 출입문으로 사내의 어머니가 내려갔다. 나도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가 손에 쥔 돈을 사내의 손에 쥐어준다. 사내가 한사코 뿌리친다. 결국 사내가 못이기는 척 어머니의 손에 들린 돈을 받았다. 사내의 어머니가 다시 버스에 오르자 차는 이내 출발했다. 사내가 어머니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나도 그 사내를 향해 이유 없이 손을 흔들었다. 사내는 내가 흔드는 손을 못 보았겠지만 나는 사내의 목소리를 마음으로 들었다.

“어무이, 잘 댕기오소.”

 

버스가 터미널을 빠져 나갈 때까지 어머니를 배웅하던 사내의 모습이 자꾸 어른거린다.

참 착한 아들과 어머니의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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