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을 들이는 달, 12월
권영상
인디언 크리크 족은 12월을 ‘침묵하는 달’이라 했다. 목숨 가진 것들이 바짝 언 겨울의 위세에 꼼짝없이 잠든 달이라고 본 듯하다. 내가 인디언이라면 12월을 ‘정을 들이는 달’, 이라 짓겠다.
해마다 그렇지만 지난 한 해도 허겁지겁 살아왔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11월의 달력을 보며 나는 휴대전화를 열었다.
“12월 둘째 주나 셋째주 금요일로 날짜를 잡아보렴.”
내게 국어를 배우고 이제는 어엿한 가장이 된 제자에게 문자를 날렸다. 그 말고 또 세 명의 제자들과 3년 째 연말마다 만나는 모임이 있다. 그 때문에 제일 선배인 그에게 모임 날짜를 부탁했다. 이제는 친구나 다를 바 없는 그를 시간나면 가끔 만났다. 아이 키우는 일이며 아내와 마음을 맞추어 사는 어려움, 친구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복잡한 관계, 직장 생활 등 그의 고충을 듣는 일이 좋았다.
그렇게 가끔가끔 만났는데 올해는 달랐다.
그가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를 날려오면 ‘숨가쁜 일 넘기거든 내가 연락할게.’라거나 좀 여유가 생길 때면 ‘언제 밥 한 번 먹자.’라거나 ‘다음에 보자.’는 식의 의례적인 말로 답장을 했다. 그러면서 일 년이 다 가도록 한 차례도 얼굴을 대면하지 못했다.
언젠가 안성에 사는 서예 하시는 분과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분은 화요일이면 정기적으로 서울에 일을 보러 나오셨다. 몇 년 전만 해도 가끔 만나 술도 한잔씩 하고 밥도 먹었다.
“요새 통 못 보겠네요. 얼굴을 봐야 정이 들지요.”
그와 통화가 끝나갈 즈음에 나는 웃으며 그 말을 했다.
“그래요. 그럼, 다음 주 서울 가면 제가 꼭 커피 사겠습니다.”
그런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의 말이 하도 단호해 바보스럽게 그 다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달이 다 가도 소식이 없었다. 나는 혼자 웃었다. 내가 남발하던 그 의례적인 수사가 떠올랐다. 이런 의례적인 수사가 남발되는 원인 중에 하나는 활발한 통신 수단이다. 휴대폰과 이메일이다. 그 때문에 꼭 만나서 해결할 일도 휴대폰 한 통화로 끝낸다.
예전엔 출판사에 원고를 넘길 때면 그쪽 편집자와 인사동이나 홍대역 근처에서 수시로 만났다. 원고 외에도 사는 이야기를 하며 얼굴을 익히고 정을 들였다. 근데 요즘은 편집자 얼굴 한번 안 보고도 책이 나온다. 편한 이메일 때문이다. 이런 통신수단들이 편리해 좋기는 하지만 사람 사이의 정이 오갈 일이 없다.
12월은 ‘침묵하는 달’이 아니라 만나서 정을 들이는 달이었으면 좋겠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나 메일로 소통해 왔다면 12월엔 직접 만나 얼굴을 익히고 정을 들여 기왕 알고 지낸 관계를 튼튼히 하고 싶다.
“선생님, 12월 둘째 주 금요일로 정했습니다.”
제자한테서 문자가 왔다.
벌써 그날이 기다려진다. 암만 가까운 사이여도 보아야 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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