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심을 나무 다섯 그루
권영상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우거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성 땅입니다. 당장이라도 서울을 버리고 내려가 한적하게 살고 싶지만 거기 누가 임시로 살고 있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만 답답합니다.
“이사 비용을 드리겠다고 사정 이야기를 해봐.”
아는 친구들은 그럽니다. 사정을 얘기하면 그들도 충분히 이해할 거라는 거지요. 그렇게 하면 뜻밖에도 답답한 문제가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 좋자고 사정 이야기하려니 자신이 없습니다. 그들도 거기가 좋아 거기 산중에 와 살고 있는데 가라면 또 어디로 갈까요.
이도저도 못하는 내가 바보같습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끔 차를 몰고 가 그 집을 숨어 엿보고 오는 겁니다. 대놓고 마당에 들어가 서성거리는 것도 그들 보기 달가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 그냥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남의 집을 보듯 집 근처를 얼씬거리다 돌아옵니다.
“마당엔 잔디 대신 나무를 심어야겠어.”
나는 돌아오며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웃집들은 마당에 잔디를 깔고 비싼 소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멋을 내보자고 거기 내려가는 게 아닙니다. 상추며 콩, 오이 등속을 내가 손수 심어 가꾸어 보자고 가는 겁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농사지으시던 걸 보아왔으니 아버지 하시던 대로 파종도 해 보고, 웃거름도 넣어보고, 땀도 흘려보고, 호미질도 해 보고 그럴 생각입니다.
“농사짓는 일이 어렵다는 거 알긴 안 모양이지?”
아내가 내 말에 수긍을 합니다.
앞 마당은 나무를 심고, 그 대신 집 양쪽 가장자리에 채소를 심을 생각입니다. 나무라고 심는다 해봐야 한 대여섯 그루 정도면 적당하겠습니다.
나는 집에 오는 대로 마당에 심을 나무들을 책에서, 인터넷에서 찾았습니다. 여려 차례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중간 크기 교목쯤 되는 유실수를 심기로 했습니다. 그게 가장 훌륭하고 이상적인 선택일 것 같지요? 제가 고른 나무는 이렇습니다. 매실나무 두 그루에 감나무, 살구나무, 그리고 블루베리 서너 그루. 매실은 몸에 좋대서 평소에도 담가두고는 요긴하게 씁니다. 감나무는 감보다 감잎을 차로 쓸 수 있어 좋습니다. 블루베리는 외제를 사서 먹느니 우리가 직접 키우면 열매를 따는 재미도 있고, 재배하는 재미도 있을 테지요. 그래서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결정하고 난 뒤부터 혹 누가 나무 심을 이야기를 하면 거침없이 이 나무들을 주어섬깁니다.
그런데 이 생각이 서너 달 지나면서 바뀌었습니다.
심을 묘목 적은 공책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놀랐습니다. ‘훌륭하고 이상적인’ 선택이라는 게 모두 내가 따먹자고 한 나무들입니다. 기껏 생각한 게 이런 유치한 것이라니요. 깨끗하게 가꾸어 나만 깨끗히 먹자고 안성에 집을 구한 것 밖에 안 되는 셈입니다. 너무도 얌체없는 짓 같았어요. 나 좋자고 유실수를 심어놓고 그걸 따 먹는 행위라는 게 얼마나 이기적인가요.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그런 내가 너무도 얄미웠습니다.
요 얼마 전 우면산 팥배나무 밑에서 본 게 있습니다.
어치며, 곤줄박이, 박새들이 커다란 팥배나무에 심심찮게 날아듭니다. 나무 벤치에 앉아 가만히 보려니 그들이 마치 제 집 문지방을 넘나들듯 팥배나무 속을 들락거립니다. 가만가만 다가가 나무를 쳐다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팥알만한 팥배들이 매달려 빨갛게 익었는데 참 볼만했습니다. 들락거리는 새들이 그걸 따 먹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팥배나무 밑에 무질러 앉았습니다. 새들이 거기로 와 팥배만 따 먹는 게 아닙니다. 와서 쪼빗쪼빗 울기도 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느라 날개짓 소리도 내고, 제 그림자를 데리고 폴짝 날아가기도 하고. 그러니까 새들이 여기로 날아와 너무 행복해 하는 거에요.
그때 저는 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거구나! 하고요.
그리고는 안성집에 심겠다던 감나무와 살구나무를 빼고 그 자리에 팥배나무와 고욤나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매실나무도 한 그루면 족할 것 같았습니다. 그 자리엔 새들 좋아하는 버찌나무나 보리장나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마당 귀퉁이에는 찔레를 심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자, 이제 어떤가요? 나무 선택이 마음에 좀 드시나요?
내 먹을 욕심을 버리고 새를 불러들여 그들에게 먹을 것을 좀 나누어 주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뿐합니다. 팥배나무 하얀 꽃이 이 가을에 그리 앙증맞도록 예쁜 열매를 익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고향집 마당귀엔 고욤나무가 커다란 게 한 그루 있었습니다. 겨울로 들어가면 추위와 눈에 얼어 고욤이 쪼글쪼글해집니다. 그걸 따 먹어보면 아주 달콤하지요. 그때면 우리 집을 지나가던 까치나 까마귀들이 그냥 가지 못하고 고욤나무에 꼭 들릅니다. 날아와 앉아서는 아침을 먹듯이 고욤맛을 보고 갑니다.
마당 귀퉁이에 찔레덩굴을 심어놓으면 제일 좋아할 새가 오목눈이입니다. 요기 산길을 가다보면 찔레덩굴에 오목눈이가 사는 걸 봅니다. 굴뚝새만 한 놈이지요. 찔레덩굴 안에서 폴짝폴짝 가지를 건너뛰며 찔레열매를 먹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찔레덩굴 속은 포식자에게 잡힐 염려없는 안전한 곳이지요. 흰 눈이 세상을 다 덮을 때 눈 사이로 빨갛게 드러나는 찔레열매는 보기도 좋지요. 그 빨간 열매는 배고픈 새들 눈에 또 얼마나 잘 뜨이겠나요. 곤줄박이며 딱새, 멧새들이 오며 가며 우리집 마당을 들르겠지요. 그들은 그냥 가는 법이 없습니다. 반짝이는 노래 몇 소절을 꼭 들려주고 갈 테지요. 이렇게 유실수를 심겠다던 생각을 싹 버렸습니다. 그 대신 새들 좋을 나무를 고르고 나니 나도 덩달아 좋아집니다.
창가에는 생강나무 한 그루를 심을 계획입니다. 생강나무는 봄에 꽃피는 나무들 중에서도 가장 이른 봄이 꽃을 피우지요. 우면산 어느 골짝에 가면 생강나무가 빼곡하게 어우러져 사는 데가 있습니다. 거기 봄이 와 생강나무 꽃이 피면 꽃향내가 정말 좋습니다. 창을 열면 언뜻 들어오는 꽃향기도 좋겠지만, 겨울내내 배가 고팠던 벌들에겐 생강나무 꿀은 더 없이 좋은 양식일 겁니다. 배를 곯으며 겨울철을 간신히 견딘 개미한테도 좋겠지요. 맨몸으로 겨울을 난 딱정벌레도 생강나무 꽃가루가 그리울 테지요.
갑자기 내게 야생의 벗이 많이 생긴 기분입니다.
“이웃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한다.”
성공적인 전원생활을 소개하는 책은 이 말을 금과옥조로 여깁니다. 그러나 진정한 전원생활은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야겠지요.
마당에 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놓고 그들이 사철 들려주는 말에 귀 기울이며 살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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