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어린왕자
권영상
지난 7월 말부터다.
아침 9시면 어김없이 우면산을 올랐다.
팥배나무 산중턱에 오르면 먼저 운동기구에서 팔굽혀 펴기나 허리운동을 한다. 그러고 나면 바로 곁에 있는 팥배나무 그늘 밑 나무 벤치로 간다. 거기서 망가진 내 척추 교정을 위한 운동을 한 십여 분 또 한다. 운동이 끝나면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서쪽으로 난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다. 나무 벤치에 앉으면 탁 트인 서쪽 하늘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작아도 산봉우린 산봉우리라 하늘이 통째 훤하게 보인다. 그 하늘에서 피는 뭉게구름을 욕심없이 바라보는 일이 무엇보다 좋다. 뭉게구름은 언제나 서쪽에서 온다. 그쪽에서 검고 무거운 구름을 몰아오기도 하고, 그쪽에서 솜구름처럼 푹신푹신한 구름을 피워 올리기도 한다. 그런 하늘의 일을 여기 와 앉으면 늘 만난다.
‘여기가 어느 별일지도 몰라.’
구름 사이로 지는 붉은 구름 그림자를 볼 때면, 또는 회색빛 거대한 뭉게구름을 바라볼 때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키 큰 아카시나무들은 폭염에 지쳐 빛깔이 검푸르다. 몇 해 전 태풍에 부러지고 남은, 듬성듬성 서 있는 아카시나무들은 언제 봐도 낯설다. 낯설어서 마치 원시의 숲에 온 것 같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그 원시의 숲이 왜 여기서 떠오르는 걸까. 어쩌면 이 팥배나무 산중턱에 인적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한 30여분 앉아 운동을 하고, 또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사람 하나 없이 고즈넉하다.
그런 때에 내가 만나는 분이 있다. 어린 왕자다.
내가 운동을 하거나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내 옆 벤치에 와 소리없이 앉는 분이 그 분이다. 여든이 넘어보이는 소년 같은 할아버지다. 머리칼이 희고 짧다. 하얀 티셔츠에 하얀 무명바지를 입은 키가 자그마한 분이다. 얼굴은 작고 눈은 동그랗다. 깨끗하다. 우리가 시중에서 보는 오만과 고집으로 가득찬 노인이 아니라 그런 모든 것이 거세된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분이다.
그분은 내가 벤치의 등받이를 잡고 팔굽혀 펴기를 하거나, 또는 의자에 앉아 맨손 운동을 하는 내내 고요히 앉아 계신다. 때로는 운동이 조금 모자라 운동기구로 옮겨 가 운동을 할 때에도 마치 나를 지켜보러 오신 분처럼 앉아 계신다. 몸무게를 말하라면 30킬로그램 정도 되실까. 그런 가벼운 분이 여기까지 어떻게 걸어올라 오시는지.....
“참 깨끗한 분이십니다.”
몇 차례 만난 뒤에 내가 인사를 먼저 드린다.
“아, 예.”
그분이 호오, 웃으며 인사를 받는다.
“늘 오시지요? 어제도 뵈었어요.”
“아, 예.”
하얀 눈썹의 그분이 몸을 움씰한다.
그렇게 인사를 드리고 나는 다음 코스로 가기 위해 일어선다. 거기에서 빙 돌아 산을 내려가면 산골짝이 나타난다. 골짝은 지난해 폭우로 무너진 산비탈을 정비한 곳인데 고만두풀이며 물봉선, 달개비꽃이 서로 어우러져 피고 있다. 그 풀숲 사이로 골짝물이 달달달 굴러온다. 풀숲을 빠져나온 골짝물이라 손을 대면 서늘하다. 그 물로 땀에 젖은 얼굴을 씻고, 산을 내려오는 게 우면산을 오르는 즐거움이다.
그 다음 날도 나는 여전히 일과처럼 산을 오른다. 평상시 대로 운동기구에 매달려 운동을 하고 와 팥배나무 밑 나무벤치에 앉는다. 거기서 이런저런 운동을 하고 있을 때다. 그분께서 조용히 내 곁 나무벤치에 와 앉으신다. 나는 운동을 마치고 간략히 인사를 드린다.
“안녕하세요?”
“여기 이 모자.”
그분은 대답대신 내 모자를 내미신다.
저쪽 운동기구 곁에다 놓고 온 모자를 그분이 알고 가져오셨다.
“고맙습니다. 어떻게 제 것인지 아시고?”
“여러 날을 보았으니까요.”
그분이 호오, 웃어 보인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분과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분은 보통의 우리나라 어르신들과 달리 말수가 적다. 뭔가를 여쭈어 보면 간략히 단답형으로 대답하신다. 욕심이라곤 없어 보이는 분이다. 내게는 그분이 꼭 별에서 온 이방인 같다. 아니, 그 분의 외모로 보아 꼭 어린왕자 같아 보였다.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운동을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사내가 직장에 안 나가고 산에 올라와 운동이나 한다는 게 이상하게 보일 듯 싶었다.
“허리가 안 좋아 방학을 이용해......”
나는 그렇게 인사를 드린다.
내 말을 어린왕자 그분은 금방 아신다.
“그러니까 학교에?”
“네. 학교에.”
“나도 옛날에는.....”
여든이 넘으신 얼굴이 열 살 소년 같이 맑다.
그러는 사이로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그분 곁으로 슬슬 걸어오더니 발 밑에 앉는다.
“내 친구지요, 여기서 만난.”
애완견보다는 큰, 중개쯤 되는, 눈이 까만 착해 보이는 흰둥이다.
“안녕!”
나는 흰둥이에게 인사를 한다. 구면이다. 이 팥배나무 산중턱 윗길 등성이에서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길 잃은 개다. 어느 날인가 흰둥이를 찾으러온 가족들을 산에서 만났다. 그때 흰둥이 이야길 했었지만 결국 못 찾은 모양이다. 등성이 언저리에서 몇 번이나 봤다. 아마 등성이길에서 주인과 헤어진 모양이다. 주인을 만나기 위해선지 흰둥이는 늘 거기 있었다. 흰둥이를 볼 때마다 그는 풀섶이나 그늘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굶주려 배가 고픈지 힘이 없어 보였다. 어떻든지 그만큼이라도 살아내려면 산속을 헤집고 다니며 먹을 걸 찾느라 발버둥쳤을 텐데 온 몸은 얼룩 한 점 없이 희고 깔끔했다.
“자, 밥을 먹자.”
눈썹이 하얀 그분이 주머니에서 빵 봉지를 꺼낸다.
흰둥이가 일어나 그분을 쳐다본다.
그분이 빵을 한쪽 떼어 입에 대어주신다. 흰둥이가 받아먹는다. 또 주신다. 혀로 입술을 핥으며 연실 흰둥이가 빵을 받아먹는다. 다 먹은 흰둥이가 저쪽 여뀌풀섶 밑에 가 눕는다.
나는 그분과 나란히 앉아 우리 앞에 열린 파랗게 넓은 하늘을 바라본다. 마치 어느 별에 앉아 한없이 큰 우주를 바라보는 기분이다.
“하늘이 맑아 별이 보일 것 같아요.”
나는 그런 말을 불쑥 꺼낸다.
“우린 별을 못 보지만 그 별 사람들은 우릴 보고 있을 거에요.”
그분이 그러신다.
“그럴까요?”
“그 사람들은 눈이 밝을 테니까요.”
“그럴까요?”
“저 개를 먹여주는 이도 그들일 거요.”
그분이 눈을 감는 흰둥이를 돌아다 봤다.
“그들이요?”
“그러잖음 이 산에서 저 녀석이 뭘 먹고 살까?”
나도 가끔은 그 생각을 한다.
먹을 거라고 없는 나무와 풀뿐인 이 산에서 어떻게 흰둥이는 살아남을까. 뭔가 풀뿌리 한쪽이라도 먹으려고 발버둥쳤다면 털이 흙투성이가 될 텐데 그는 늘 깨끗하다. 그 사이 폭우도 내렸고, 태풍도 왔지만 흰둥이의 털빛은 늘 곱다. 달라진 게 있다면 눈꼽이 나고 그늘이나 햇빛에 나와 앉아 조은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그런 모습으로라도 살아 있다면 노인분의 말대로 눈이 밝은 별의 사람들이 내려와 흰둥이에게 먹을 것을 준 때문일지 모른다.
“아, 그렇겠네요.”
나는 대답을 하고 목마를 정도로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 한 조각이 아카시나무 너머에서 일어난다. 그것이 나무를 타 넘을 때까지 앉아 있다가 일어선다.
“이만 가겠습니다. 내일 또 뵙지요.”
“아, 예.”
그분이 고개를 끄덕하며 내게 인사를 보낸다.
나는 그분 곁을 떠난다. 마치 나무 벤치가 있는 우주의 별을 떠나듯이.
그리고 오늘, 작은형님의 추석 차례를 마치고 와 산을 올랐다.
하늘이 더 없이 파랗다. 숲도 선선하다.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이 가을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쓰르라미가 나무우듬지에서 쓰르람쓰르람 풀벌레처럼 가늘게 운다.
운동을 하고 팥배나무 그늘 밑 나무 벤치에 가 앉았다. 여전히 눈앞에 펼쳐진 하늘은 가없이 넓고 파랗다. 가을 정오가 가까운 무렵의 시간대다. 주변 여뀌풀숲이 물감을 뿌려놓은 듯이 빨갛다. 밤하늘의 성운처럼 신비롭다. 햇빛이 곱고 따사롭다. 숲마저 조용하다. 숲에서 느닷없이 초식공룡 한 마리가 튀어나올 것 같다.
그때다. 흰둥이가 등성이 쪽에서 내 쪽으로 걸어온다.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은 새로 심어놓은 어린 벚나무 둥치 밑 노란 가을 볕에 눕는다. 나는 그에게 줄 게 없다. 흰둥이를 볼 때면 생각나지 그를 떠나면 잊고 만다. 흰둥이가 피곤한 눈을 감고 잔다. 주인을 잃은 개는 속이 허전해 늘 피곤하다.
나는 남국으로 내려가는 별처럼 작은 여객기를 본다. 여객기가 가고 난 빈 하늘이 다시 파랗다. 그분의 말처럼 저 하늘에서 이쪽 별의 흰둥이를 찾아와 먹이를 주는 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저렇게 깨끗한 하늘이라면 누군가가 흰둥이를 보살피러 오고도 남겠다.
운동을 마치고 일어선다. 기다려도 그분은 오지 않는다.
‘연휴니까 내일이나 모레쯤 오면 만날 수 있겠지.’
소년 같은 얼굴의 자그마한 그분이 기다려진다. 가만 생각하니 주머니에서 빵을 꺼내 흰둥이에게 주던 그 노인이 어쩌면 별에서 온 분은 아닐까. 괜히 그런 생각이 일어난다. 아니다. 말의 억양이나 말투로 보아 고향이 구례쯤인 분이다. 몸이 가벼워 가을 공기를 타고 날아와 슬쩍 여기 내 곁에 내려설 것 같다.
나는 다음 코스로 이동하면도 혹시나 하고 뒤를 돌아다 본다. 없다. 흰둥이는 그냥 자고 있는지 숲이 온통 짙은 초록으로 숨쉬고 있다. 숲속 길을 따라 그늘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나무숲 사이로 하늘이 파랗게 나를 들여다 본다. 그가 내게 내게 속삭이듯 말을 거는 것 같다.
“당신이 우리 별의 노인분과 아는 사이인가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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