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가을 빛을 찾으러

권영상 2012. 9. 25. 21:37

 

가을 빛을 찾으러

권영상

 

 

 

 

9월 23일, 아파트 마당에 나왔다. 가을이다. 어제 보던 그 살구나무며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어 빛이 완연하게 다르다. 감나무잎 빛깔이 다르다. 홍시빛이 우련하게 배어나온다. 이웃 건물들 위로 파랗게 뜨는 하늘에서 휘파람새 소리가 울려나오는 것만 같다. 낮달이 하나 맑게 박혀있다.

 

 

“그래, 가을빛을 찾으러 가자.”

단풍나무 밑에 우두커니 서 있는 차 곁으로 슬슬 다가갔다. 지난 주 주말농장에 가느라 세차해 놓은 차 그대로다. 본닛 위로 햇빛이 지느러미를 세우고 휙 지나간다.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을 켰다. 성남대로를 타고나가 세곡동 네 거리에서 우회전을 했다. 서울비행장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좌회전. 나는 지금 퇴촌의 가을 물빛을 그리고 있다. 거기 경안천의 파란 유리빛 같은 물빛. 물위에 반짝이는 물주름과 물주름에 부딪혀 튕겨오르는 가을 햇빛.......

자갈돌 위로 흘러가는 말갛게 익은 가을물을 나는 요 며칠 전 우면산 골짝에서 봤다. 그때 투명한 물속에 손가락을 찔러넣자, 손가락이 움씰, 했다. 서늘했다. 이른 겨울 무심코 단풍나무 초록빛 목피를 만졌을 때 놀라던 느낌처럼. 가을은 잘 정제된 빛깔의 계절이다.

 

 

이천으로 줄달음질 쳐가는 3번 국도에 올라섰다.

갈마터널을 지나는 좌우의 산빛이 고비를 넘긴 장년의 모습같이 늠름하다. 오랜만에 서울 아닌 곳에서 만나는 가을이다. 나는 달린다. 달릴 수 있는 한까지 달린다. 도평리가 가까워온다. 드디어 “퇴촌”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300미터 전방에서 좌회전입니다.”

내비게이션 속의 여자가 안내를 한다.

나는 여자의 말을 따른다. 좌회전을 하고 또 100 여미터쯤 갔을 때 그녀는 200미터 전방에서 다시 좌회전할 것을 권한다. 그 말을 놓쳤다. FM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FM을 끄지 않는다. FM이 풍부한 숲 해설가의 음성처럼 산과 들길 안으로 나를 이끈다. 내비게이션이 도로를 안내한다면 음악은 내가 접근하고 있는 이 자연의 품 안에 저항없이 안기도록 안내한다. 나는 FM을 따라 초가을 속으로 들어선다.

 

한번 그녀의 말을 놓치자, 내비게이션 속의 여자는 집요하게 좌회전을 요구한다. 새로운 길이 나타날 때마다 내가 가는 길을 붙잡는다. 나는 그녀의 요구를 계속 거부한다.

“강요하는 건 싫다구.”

나는 핸들을 움켜쥔다. 길은 개울을 따라 천천히 달린다. 개울을 따라 달리는 건 나만이 아니다. 음악도 힘차게 또는 고즈넉하게 개울길을 달린다.

한 악장이 끝나면서 연이어 다음 악장이 시작된다. 좀전과 달리 악기의 손놀림이 재면서 달콤하고 재치있다. 보나마나 2악장이다. 열어놓은 차창 밖에서 얼핏 물냄새가 넘어오고 개울 건너 빨간색 주택들이 보인다. 물결소리가 울려온다. 어린 은행나무 가로수 아래로 개울이 성큼 내려다 보인다. 크다. 지줄지줄 떠든다. 개울물이 지줄대는지 음악속의 개울이 지줄대는지..... 도평리의 가을이 깊어간다.

 

길은 개울을 따라 왼쪽으로 빙 돈다. 하회마을처럼 마을을 끼고 개울이 돈다. 개울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진 간이 음식점이 길다랗게 나온다. 유원지인 모양이다. 그러나 사람 하나 없이 고요하다. 나는 적당히 빈 땅에 차를 세운다. 음악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귀에 익은 음악이다.

“대체 이 곡 이름이 뭐지?”

이름을 알아내고 싶다. 시동을 끈 채로 계속 음악을 듣는다. 곡 이름을 알아내고 싶다. 암만 들어도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든다. 차창밖에 밤 하나가 뚝 떨어진다. 문을 열고 내려서서 밤을 줍는다. 빈 밤송이와 밤아람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밤들이 빨갛게 윤기가 난다. 방금 떨어진 모양이다. 밤을 줍다말고 FM의 볼륨을 높인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음악이 들리는 곳까지 걸어가 밤을 줍는다. 잠깐 동안인데 모자가 가득찬다. 굵다. 세워둔 차 곁에서 어정대다 밤나무를 쳐다본다. 밤나무 가지 끝에 밤송이가 여럿 달렸다. 누군가 던지던 굵은 나뭇가지 도막을 주워 나도 던진다. 몇 번인가 팔매질 끝에 밤아람과 밤송이가 떨어진다. 또 던진다. 나뭇가지 도막이 밤나무에 얹힌다. 나는 주변에서 각진나무토막을 주어와 또 던진다.

지나가는 차의 운전자가 나를 본다. 나는 씩 웃어 보이며 자꾸 던져올린다.

 

 

그러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짐승처럼 주운 밤의 껍질을 이빨로 까고, 앞니로 속꼅질을 벗긴다. 말쑥하게 벗긴 알밤을 앞니로 오독 깨문다. 아작아작 씹는다. 햇밤이라 연하다. 또 한 개를 이빨로 벗겨서 오도독 깨물어 먹을 때다, 음악이 절정을 향해 치닫더니 이윽고 끝난다.

나는 입안에 고인 햇밤물을 꼴깍 삼키며 진행자의 멘트에 귀를 기울였다.

베토벤의 6번, 전원교향곡이다.

씨디가 없는 나로서는 너무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어디서 많이 듣던 음악’이었다. 그렇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6번은 ‘전원생활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음악이다. 베토벤은 자연을 음악으로 말하려 했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도 음악으로 표현하려 했다.

 

 

나는 차의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방죽에 나가 섰다. 개울이 크고 넓다. 빨간 티셔츠에 맥고모를 쓴 아저씨가 개울물 한 가운데에 들어가 있다. 물이 가슴께까지 찬다. 아저씨가 천천히 산 그림자를 흔들며 자꾸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개울가로 내려가 고만두풀 숲에서 그를 향해 소리쳤다.

“뭘 하시지요?”

그가 나를 돌아다 본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닌데 왜 가슴 깊이의 물속으로 들어갈까.

“이 개울 이름은 뭐예요?”

나는 그를 놓칠까봐 이 개울 이름을 알아두고 싶었다.

“곤지암천요. 이게 빙 돌아서 경인천과 만나고 다시 지월리 서하리를 지나 퇴촌으로 가는 거구만요.”

그의 목소리가 물 속에서 이쪽으로 축축하게 건너왔다.

“이렇게 빙 둘러친 산이름은요?”

“무갑산 가지에요.”

무장이 갑옷을 입은 산 모양이라는 이름이다. 산비탈도 없는 가파른 산이다. 가파른데도 빈 데 하나 없이 숲이 빼곡하다. 잘 큰 참나무류들이다. 이 무갑산이 병풍같이 곤지암천을 빙 둘러싸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서 있는 도평 2리를 끼고 돌아가고 있다.

 

 

곤지암천 중간에 돌로 쌓아만든 보가 있다. 유유히 흘러가는 물이 거기에 와 하얗게 부서지며 서쪽으로 흐른다. 괜히 그 보를 건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보 건너편 개울가 돌들이 햇빛에 하얗다.

나는 바지를 걷어올렸다. 보 아래는 물살이 세다. 물보라가 제법 인다. 나는 물살이 약하고 느린 곳으로 들어섰다. 보기보다 큰 내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곳에 발을 들이밀자 물살에 발이 부르르 떤다. 발밑의 돌을 골라 디딘다. 물이끼 때문에 미끄럽다. 잘못 하다가 물에 빠질 것 같다. 물이 얕은 곳에서 잠시 멈추었다. 가을물이라선지 미적지근하다. 물이 온통 초록빛이다. 초록물 위로 무갑산이 얼비치고, 이쪽 자전거길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들이 물에 어린다. 마을을 끼고 오느라 그런지 물이 맑지 않다.

 

 

80미터쯤 되는 보를 고집스럽게 다 건넜다. 산자락 바위에 걸터앉았다. 엉덩이가 뜨겁다. 발을 올려놓은 돌들이 햇빛에 자글자글 익는다. 산 밑이라 바람 한점 없다. 일어서 고개를 잔뜩 치켜올려 산을 본다. 산이 얼마나 가파른지 하늘 반을 가린다.

건너편 길가에서 누가 불을 피운다. 하얀 연기가 뭉깃 오르더니 이내 사라진다. 하늘엔 던져올린 휴지처럼 무덕무덕 구름이 뜬다.

내 입에서 맴돌던 전원 교향곡의 테마가 슬몃 흘러나온다. 하늘에 구름이 뜨고, 어디선가 풀연기가 오르고, 강물엔 산그림자가 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개울가 길을 가고.... 서울에서 4,50분 거리에 이런 전원을 만날 수 있다니!

 

 

나는 다시 물을 건넜다. 얕은 물에선 돌멩이도 뒤쳐보고, 괜히 돌멩이 밑에 손도 밀어넣어 본다. 물밑에 이끼가 파랗다. 물을 다 건너자, 내 곁으로 맥고모자를 쓴 아까 그 남자가 다가온다.

“뭘 좀 잡으셨어요?”

내가 물었다.

그가 고깃바구니를 들어보인다.

모래모치 십여 마리가 담겨 있다.

그가 방죽 위로 올라가더니 타고온 차를 몰아 휙 가버린다.

 

나도 차에 올랐다. 나는 그의 반대방향으로 달렸다. 노랗게 벼가 있는 논이 나온다. 차를 세우고 나가 논앞에 선다. 내 등뒤에서 부서지는 햇빛 때문인지 논벌에 찍힌 내 그림자 둘레가 하얗게 빛난다. 벼가 가을해를 닮아 노랗다. 벼 한 톨을 떼어 깨문다. 무른 기운이 있으나 단단하다. 다시 차에 올라 엑셀러이터를 밟는다.

“200미터 전방에서 뉴턴입니다.”

내비게이션이 내가 나가는 방향을 또 막는다. 나는 달린다. 역시 길이 없다. 없는 게 아니라 차가 다닐 길이 아니다. 나는 차를 돌려 오던 길로 돌아섰다.

무갑산 산빛이 서쪽으로 이우는 햇빛을 함뿍 받는다. 햇빛이 노랗고 산은 이미 먼 단풍쪽으로 가고 있다. 이미 가을빛은 한 고비를 넘긴 9월 말에 가 있다. 모진 폭우와 강풍을 견뎌낸 사람의 빛깔이 저렇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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