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가격
권영상
겨울이다.
거실 바닥에 볕이 소복히 든다. 노랗다. 잘 여문 볍씨같은 햇볕이 애벌레들처럼 곰실댄다. 손을 뻗어 볕 속에 밀어넣는다. 손등이 간지럽다. 쿠키를 굽듯 손등과 손바닥을 번갈아가며 뒤척인다. 온몸이 따뜻해진다. 엉덩이를 들썩해 볕 안에 옴팡 들어간다. 얼굴이며 가슴이며 배가 따뜻하다. 순간 볕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옷통을 훌렁 벗었다. 웃통만으로 성이 안 찬다. 바지도 벗었다. 팬티 한 장만 걸치고 햇볕더미에 들어가 돌아앉는다. 개미가 기어오르듯 등판이 자글자글하다. 목덜미며 엉덩이까지 따갑다.
“다들 이리와 햇빛바라기 좀 해!”
나는 아내와 딸아이에게 소리쳤다.
“싱겁긴! 건너편 아파트 사람들 다 보겠네.”
시큰둥하다. 그래도 나는 겨울 햇볕 한 톨 놓치고 싶지 않다. 몸이 초콜릿쿠키처럼 노릿노릿 익어가는 기분이라 좋기만 하다.
6년 전만 해도 볕이 종일 들었다. 그때는 겨울햇볕 귀한 줄 정말 몰랐다. 그러던 것이 건너편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 겨울해가 귀해졌다. 오전 11시 20분쯤 거실로 해가 들어와 오후 1시 10분쯤 되면 아파트 너머로 해가 사라진다. 언제부턴지 겨울날의 주말이면 거실로 쏟아져 들어오는 쟁쟁한 볕이 기다려졌다.
햇빛 가격은 얼마일까.
퇴직을 생각하면서부터 전원생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전원주택 하나가 나왔다. 20평짜리 단층집인데 아담하고 예뻤다. 큰 평수를 기피하던 내게는 호재였다. 집만이 아니다. 텃밭까지 200평이나 딸려 있었다. 그런데도 가격이 시세의 반도 안 됐다. 급매물인가보다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그 집의 방향을 물었다.
“북향입니다.”
갑자기 부동산의 목소리가 수그러들었다. 그러고 보니 시세의 나머지 반은 햇빛 가격인 셈이었다. 햇빛은 체온을 상승시켜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햇빛 사라지기 전에 발이라도 한번 들이밀어봐.”
나의 재촉에도 아내는 여전히 시큰둥하다. 슈퍼의 물건 값은 잘 알면서도 햇빛 가격은 잘 모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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