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시 참깨동시

젤로가 사라졌다 24회 -계백

권영상 2025. 1. 13. 20:06

<월요 이야기동시 연재>

 

 

이야기 바다에 빠지다

 

20. 계백

 

나를 모른다 하라

 

 

“장군! 신라군이 방향을 바꾸어 우리 백제로 향하고 있나이다.”

신라군의 동향을 살피던 군사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아니, 고구려를 치러 북서진하고 있지 않았느냐?”
장군 계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덕물도에서 방향을 바꾸었나이다. 속임수인 듯하옵니다.”

“병졸수는 얼마인가?”

장군이 물었다.

“김유신이 이끄는 5만 병력이나이다.”

군사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5만이라.”

장군이 그 5만 신라군을 가늠하고 있을 때다.

“장군, 큰일났습니다.”

또 다른 군사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이번엔 또 뭐냐?”
순간 계백장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당나라 13만 대군이 우리를 치기 위해 황해를 건너오고 있나이다.”
“무어라. 당나라가? 그것도 13만?”
“그렇나이다.”

급박해도 너무나 급박하고,

경황 없어도 너무나 경황없는 상황이 한순간에 벌어졌다.

계백은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았다.

 

 

“이보시게, 달솔! 내가 가진 군사 5백을 내놓겠네.”

하루 내내 함께 자리한 좌평 충상 어른이었다.

“달솔! 나도 그러겠소이다.”

좌평 상영이 거들었다.

“나라의 존망이 바람 앞에 등불 같이 위태로워졌나이다.”

계백이 잠시 눈을 감았다.

각각 군사 500씩 내놓는다면 1500명, 왕이 내놓은 근위대 3500을 합하면 모두 5천이다.

“두 분 좌평어른! 5천 결사대를 만들어 다급한 신라군부터 먼저 상대해야겠습니다.”

장군 계백이 좌평 충상과 상영어른에게 고하였다.

“그리하오.”

“장군만 믿겠소이다.”

그들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계백은 곁에 선 소장 부여에게 명했다.

“서둘러 출전을 준비하라!”

장군 부여가 다듭하게 군막을 나가자.

계백도 군막을 나섰다.

어쩌면 이 전쟁이 백제의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불길함이

계백을 휩싸고 돌았다.

계백은 아내와 자식들을 보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이 전쟁으로 백제가 패한다면 아내와 자식들은 그들의 포로가 되거나 비참한

말로를 겪게 될 게 뻔했다.

집에 당도한 계백이 문을 열었다.

놀란 가족들이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라에 돌이킬 수 없이 큰 전쟁이 일어났소. 내가 죽는다면 우리 집안 모두가 치욕을 당할 것이 뻔하오.”

장군이 허리에 찬 칼의 손잡이를 단호히 움켜잡았다.

“장군! 치욕스럽게 죽고 싶지 않으니 우리를 베고 전쟁에 나가시오.”

아내가 두려운 기색 하나 없이 말했다.

그러자 계백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건 사내의 도리가 아니오. 다만 적군이 나를 아냐고 묻거든 모른다 하시오.”

어린 자식들에게도 말했다.

“너희들 역시 아비를 모른다 하라.”

 

 

5천 결사대

 

 

계백은

군막으로 돌아왔다.

5천 결사대가 결집해 있었다.

계백이 병졸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마땅히 분발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리라!”

그리고는 칼을 뽑았다.

“충성! 충성! 충성!”

군졸들이 이 불길한 전쟁을 앞에 두고 함성을 질렀다.

“우리는 5천 결사대. 이제 황산벌로 간다. 가서는 싸우다 나라를 위해 죽는다.”

계백장군이 앞에서 황산벌을 향해 달려나갔다.

“우리는 5천 결사대!”
제 1군이 뒤따랐다.

“목숨을 걸고 싸우러 황산벌로 간다!”
제 2군이 뒤따랐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는다!”
제 3군이 뒤따랐다.

 

 

황산벌 전투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5만 신라군과 싸우기 위해 5천 결사대는 황산벌에 3개의 진을 쳤다.

아침부터 싸움이 시작되었다.

계백 장군이 이끄는 백제는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신라와

하루 동안 4번의 치열한 전투를 치루었다.

4번 모두

백제가 이겼다.

신라는 더는 싸울 힘이 없어 기진맥진했다.

멸망해가는 백제를 빤히 건너다 보면서도 이 마지막 기회를 뒤집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화살처럼 튕겨져 나왔다.

“장군! 제가 달려나가 백제군을 쓰러뜨리겠습니다.”
모두들 보니 나이 어린 화랑 반굴이었다.

반굴은 김유신 장군의 동생 김흠순 장군의 아들이었다.

“장하도다! 반굴은 화랑의 아름다운 정신으로 나가 싸워 이기라.”

장군의 명이 떨어지자, 반굴은

자신을 따르는 몇 몇 화랑들과 함께 적진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5천 결사대의 벽에 부딪혀 죽고 말았다.

신라군은 점점 깊은 좌절의 늪으로 빨려들었다.

 

 

7월의 햇빛은 더욱 뜨겁고 병사들은 점점 지쳐갔다.

“장군! 제가 홀몸으로 싸움에 나가 신라군의 사기를 일으켜 세우겠나이다.”

품일장군의 아들인 16살 어린 관창이었다.

“좋다! 화랑의 명예를 위해 싸우러 가라.”

장군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관창은 말 안장에 앉아 적진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백제 결사대에 생포되고 말았다.

잡혀온 관창을 보고 계백이 말했다.

“어린 녀석이구나. 살려줄 테니 돌아가 어른이 되어 다시 오라.”

관창은 포승에 묶인 채 말 잔등에 걸터앉아 돌아왔다.

“화랑이 어찌 임전무퇴를 모르느냐!”

품일장군이 살아돌아온 관창을 나무랐다.

16살 어린 관창은 다시 칼을 휘두르며 적진을 향해 달려나갔지만

이내 죽은 몸으로

말 잔등에 묶여 돌아왔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신라군은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비 맞은 봄풀처럼 푸른 함성을 내지르며 일어섰다.

그리고 적을 향해 달려가 단숨에 5천 결사대를 무찌르고 적의 진지를 빼앗았다.

전쟁은 7월 해가 지기 전에 끝났으며

계백 장군도 결사대와 함께 노을이 물들어가는 황산벌에 쓰러져 들꽃이 되었다.

이윽고 의자왕이 머물던 사비성도

백제도 슬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