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이야기동시 연재>
이야기 바다에 빠지다
19. 기파화랑
신라를 동경하다
신라로 가고 싶다.
천년이 걸리든 천오백 년이 걸리든
그곳으로 가
그곳 살구나무 아래 모여사는 마을에서, 이야기꾼 가득한 골목에서, 보리가 파랗게 자라는 들밭에서, 꽃을 키우는 뜰에서, 바위를 타고 고기를 잡는 바다에서,
닭 울음에 귀기울이던 계림 숲에서
신라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들을 만나면 나는 먼저 인사할 테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들의 손을 잡고 반가워요, 반가워요. 할 테다.
경주 남산에 올라
머리에 깃을 꽂은 화랑을 만나고, 화랑 중에서도 빼어나고 빼어난
기파 화랑을 만나겠다.
그를 만나면 그가 얼마나 멋진 화랑이었는지
그의 의리가, 그의 우정이 얼마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지
그가 얼마나 겸손했는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신라의 나무들이며 풀들이며, 신라의 돌부리조차 구름조차 별들조차
바람에 들려오던 기파 화랑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 아는데
우리만 그를 모르고 있다는 게
부끄럽다.
그는 그렇게 난 척 하는 게
싫으셨던 거다. 빼어나면서도
자신을 감출 줄 아는 사다함 같은, 이차돈 같은, 미추왕 같은 사람들.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천축국으로 천축국으로 불법을 구하러 떠나던 청년들이 무수히 사는 나라
신라로 가고 싶다.
멋진 꿈을 품어
삼국을 하나로 통일한 사람들.
한 번 가서 만나보고 싶다.
찬기파랑가
열치매
나타난 달이
구름을 쫓아가누나.
새파란 냇물에
기파 화랑의 모습이 어린다.
일로 냇물가 조약돌에
기파 화랑이 품었던
끝 모를 높은 기개를 따르고 싶도다.
아아, 잣나무 높아
서리 모를 아름다움이여.
구름을 열치고 달이 나타났다.
그쪽 하늘에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달은 흘러가는 구름을 뒤쫓는다.
그때 새파란 냇물에 환하게 내려서던 그 밝고 아름다운 달.
그 빛나는 달이 꼭 기파화랑을 닮았다.
예전 어느 때인가.
충담이라는 이름의 스님은 깨끗하고 예쁜 조약돌 깔린
일로 냇가를 기파화랑과 나란히 거닐던 적이 있었다.
‘높은 뜻을 가진 화랑이구나!’
그때 스님은 기파 화랑과 이야기하며 기파화랑의 밝고 높고 깨끗한 기상을 보았다.
높은 잣나무 우듬지에 내리던 찬 서리에도
변하지 않는 의리와
절개를 지키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스님은 데구르르 굵은 눈물을 떨어뜨린다.
화랑 중의 화랑이여! 기파화랑이여!
나는 끝없이 신라를 동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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