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시 참깨동시

젤로가 사라졌다 22회- 궁수 거타지

권영상 2024. 12. 30. 20:07

<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이야기 바다에 빠지다

 

18. 궁수 거타지

 

기울어가는 신라

 

 

“사신의 임무를 다하고 돌아오겠나이다.”

아찬 양패가 진성여왕에게 고했다.

“내 그대를 지켜줄 궁수 50명을 줄 터이니 임무를 다하고 오라.”

여왕이 대전 바깥까지 따라 나왔다.

당나라 사신으로 가는 아찬 양패는 여왕의 막내아들이었다.

여왕은 한참 동안 아들 일행이 가는 행렬을 지켜보았다.

궁수 50명여명이 따르는 행렬인데도 왠지 초라했다.

그 찬란하던 신라도 숱한 반란으로 기울어져 가고, 여왕도 정치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사신 일행이 완도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다.

따르던 시종이 말했다.

“완도에 후백제 군사들이 머문다 하니 뱃길을 군도로 바꾸는 게 좋겠나이다.”
일행은 그의 말을 따랐다.

배가 군도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날씨가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거친 바다는 열흘 동안이나 일행의 발을 묶었다.

섬사람들이 말하기를 섬 안에 있는 신성한 못에 제사를 지내면 순풍이 온다고 했다.

그 못에 제사를 지내자, 난데없이 물길이 치솟았다.

그날 밤, 양패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나는 서해를 지키는 용왕이오. 활 잘 쏘는 사람 하나를 이 섬에 남겨두고 떠나면 순풍을 만나게 될 것이오.”

아침이 되자, 양패는 누구를 남길 것인가로 고민했다.

“궁수 이름을 쓴 나무편을 하나씩 물에 던져 가라앉으면 그를 남게 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섬에 사는 지혜로운 어부였다.

양패는 이름을 쓴 나무편을 하나씩 물에 던졌다.

과연 이름 하나가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궁수 거타지였다.

 

 

중을 죽이다

 

 

바다가 잔잔해지자, 일행은 군도를 떠났다.

군도엔 거타지만 근심스러이 남았다.

이른 새벽, 못에서 한 노인이 걸어나와 거타지에게 말했다.

“해가 뜰 때 중 하나가 나타나 다라니를 외면 나의 가족들이 물 위에 떠오를 것이오. 중은 우리 가족의 간을 빼먹으려할 텐데 그때 당신이 활로 그 중을 쏘아 주시오.”

거타지가 대답했다.

“알겠소. 그러리다.”

해가 뜨자, 과연 노인의 말대로 중이 나타났다.

중은 노인의 가족들을 보자, 간을 빼먹으려고 다가갔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거타지는 활로 중을 쏘아 맞추었다. 중은 여우로 변하여 땅에 떨어져 죽었다.

“그대의 은혜로 살아났으니 그대에게 내 딸을 주겠오.”

노인은 딸을 꽃가지로 변하게 한 후 거타지의 품 속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용 두 마리에게 명하여 거타지를 태우고 가 사신 일행을 호위하라 일렀다.

거타지와 사신 양패가 탄 배는 용의 호위를 받으며 무사히 당나라 땅에 닿았다.

이 소식을 들은 당나라 왕은 이들을 후하게 대접하였다.

 

사신 일행은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신라로 돌아왔다.

거타지는 품속에 넣어온 꽃가지를 꺼냈다. 한순간 꽃가지가 예쁜 여인으로 변했다.

둘은 행복하게 살았다.

 

 

젤로와 노인

 

 

젤로는 운 좋게도 군도에 살고 있는 지혜로운 어부를 만났다.

어부는 바닷가에 나와 그물을 깁고 있었다.

젤로가 인사를 드리며 그 어부 곁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설화 속 힘없는 용왕이 누구신지 아시나요?”
그 말에 어부가 대답했다.

“내가 알기로 주변 반란 세력들에 휘둘리는 힘없는 진성여왕이다. 이 이야기는 힘없는 여왕의 신세를 힘없는 용왕으로 에둘러 표현한 것 같다.”

“이 설화의 주인공은 당연히 사신으로 가는 양패일 것 같은데 양패보다 거타지의 활약이 더 눈에 띕니다. 어찌 된 건가요?”
어부가 그물을 깁던 손을 놓고 말했다.

“당나라를 다녀온 뒤 왕 역시 거타지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 이유로 그렇게 보였을 듯 하다.”
젤로가 놀라며 물었다.

“거타지가 왕이 되었다는 말은 금시초문입니다.”

“‘거타지는 예쁜 여인을 얻었고, 돌아와 결혼을 했다.’ 여기서 여인은 나라를 상징하고 여인을 얻고 결혼을 했다는 말은 그가 왕이 되었다는 뜻 아니겠누?”

“그럼, 거타지는 누군가요?”

“힘없는 백성들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해결해 주는 영웅이 아닐까 싶구나.”
“아, 세상이 어지러울 때 나타나는 그런, 민중들이 만들어내는 영웅이었군요.”

젤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젤로가 작별인사를 하고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