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봄바다
권영상
이른 아침 느닷없이 휴대폰이 울었다. 서훈이었다.
“선생님, 봄바다 보러 내려오세요.”
갑작스런 전화에 나는 좀 망설였다. 그가 있다는 순긋 해변은 고향 인근 바다지만 서울서 3시간 거리다. 나는 급한 대로 알았다며 일단 전화를 끊었다. 먼 거리인데도 내가 흔들린 건 ‘봄바다’라는 말 때문인 듯 했다.
봄바다도 봄바다이지만 내가 내려가겠다고 한 것은 그가 내 오랜 제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오랫동안 교직에 있었다. 그 어느 무렵 그는 우리반 학생이었고, 대학을 다닐 때나 군에 가 있을 때나 디자인 공부를 하러 외국에 나가 있을 때도 그는 나와 오랫동안 편지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가 한 때 직장을 그만 둘 때도 그는 나의 조언을 듣겠다며 나를 찾아왔었다. 그때가 벚꽃이 만개할 때였다. 을지로에서 저녁을 먹고, 충무로에서 술을 마신 우리는 벚꽃이 한창인 남산의 밤길을 걸어 올랐다.
“연극 무대 디자인을 한번 해보려고요.”
다니던 광고 회사를 그만 두고 손수 사업을 해 보려는 모양이었다.
그때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별로 없었다. 그쪽 방면에 대해 별로 아는 정보도 없었고, 있다고 해도 오히려 나의 조언이라는 게 그의 삶의 방향을 방해할 것만 같았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이라는 건 그의 말을 들어주거나, 그와 밥을 같이 먹어주거나, 같이 술을 마시고 같이 길을 걸어주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번에도 나를 보고 싶어하는 걸 보면 어쩌면 나와 함께 있고 싶은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차를 몰아 먼 길이지만 그가 있다는 순긋해변에 내려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 전화를 받고, 바닷가 백사장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웃음 띤 얼굴이었고, 나를 한번 안아보고 싶다며 나를 껴안아 주었다.
바다는 파도 하나 없이 잔잔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바닷가 커다란 갯바위에 기어올랐다. 그도 나도 엉금엉금 기어 그 위에 섰다. 바다가 너른 품을 벌려 우리를 맞아주었다.
“선생님, 우리 바다 보고 야! 소리 한 번 쳐 봐요.”
나를 만나면 한번 소리쳐 보고 싶은 뭔가가 내면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손나팔을 하고 바다를 향해 야아아! 소리쳤다. 바다가 암만 잔잔하다 해도 우리 둘이 소리치는 목소리는 이내 바다에 스러졌다.
바위에 앉아 힘들었던 허리를 뒤로 젖히고 그 봄바다를 바라보았다. 사제지간이라 해도 우리는 혈육만큼 가깝다. 그도 나도 보수적인 농촌에서 자라 생각도 문화도 비슷했다.
“선생님, 한 달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한 동안 바다를 바라보던 그가 그 말을 꺼냈다.
“아버지 돌아가시면 함께 가기로 했잖아!”
나는 그 말을 떠올렸고, 그는 힘없이 코로나를 들먹였다.
아버지를 잃고 어디에 마음 둘 곳이 없자, 나와 함께 있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했다.
해질 무렵쯤 우리는 해변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그의 숙소에 들러 술 한 잔을 마시며 긴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아버지처럼 마음이 편해요.”
그가 그런 속마음을 내비쳤다. 나도 그렇다. 그를 보면 봄바다처럼 마음이 편하다.
<교차로신문> 2023년 3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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