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한때는 몹시 사랑했던 것들

권영상 2023. 3. 23. 11:55

 

한때는 몹시 사랑했던 것들

권영상

 

 

 

길고양이를 따라 아파트 뒷마당을 돌아들 때다. 관리소분들이 단풍나무 곁에 가건물을 짓고 있었다. 자전거 보관소를 만든다는 거다. 엄청 큰 넓이다.

주인 없는 자전거가 100대는 될 겁니다.”

100대라는 말에 나는 그렇게나요!’ 하고 놀랐다.

건너편 동 1층 로비에 자전거 거치대가 있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때는 그냥 자전거 세워두는 곳이구나 했었다.

 

 

나는 길고양이를 보내고 자목련 꽃그늘을 돌아오다가 혹시나 하고 자전거 세워두는 곳에 들렀다. 마치 자전거 집하장 같았다. 사람이 다니는 통로만 남기고 빼곡히 자전거가 들어차 있었다.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에서부터 이륜 자전거까지. 산악자전거에, 안장이 높고 핸들이 낮은 로드바이크, 작은 바퀴의 깜찍한 미니벨로 등 없는 게 없었다.

100대보다 더 많으면 더 많았지 적게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통로 곁에 있는 장바구니가 달린 자전거의 종을 울려봤다. 잠에서 깨어나듯 짜르릉 운다. 살아있다. 그러나 슬픈 건 자전거마다 잠금 벨트가 바퀴를 묶고 있다.

 

 

지금이 봄이다.

그런데 벚꽃 화사한 길을 달려 나갈 자전거들이 어둑한 로비에 묶여있다. 한때 이들 모두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을 거다. 꽃길이며 강변길도 달렸을 거다. 한때 자전거 주인의 애지중지 사랑도 받았을 테다. 그 사랑이란 게 단 하루로 끝나거나 아니면 작심삼일로, 아니면 한 주일이거나 아니면 봄 한철로 끝났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자전거는 잘 포장된 도로나 산길을 달려 나갈 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수명은 이렇게 끝나고 지금은 먼지에 쌓여 녹슬어가고 있다.

 

 

이 자전거들이 다시 주인을 만나 햇빛 속으로 달려 나가지 못할 거라는 건 그 주인도 알고 관리소도 알고 있을 테다. 그런데도 처분을 못하고 가건물을 짓는 데엔 이유가 있겠다. 슬픈 건 자전거들이다. 사랑도 영원할 것 같았는데 옛 맹세처럼 끝나고 말았다.

 

 

집에 들어와 늘 보아오던 내 방안을 살핀다. 먼지 앉은 자전거들처럼 단 한번의 눈길을 받고 숨죽여 지내고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때 감동적으로 읽고 언젠가는 다시 읽을 것이라며 책장 속에 꽂아둔 러시아 소설들, 잉크 글씨를 엄청 사랑할 것처럼 문방구를 지날 때마다 사다가 쌓아놓은 청색 파일럿 잉크병들. 한때는 몹시 사랑했으나 나도 모르는 사이 잊혀진 것들은 그 말고도 많다. 인사동에서 사온, 단 한번 켜보고 만 석유 등잔이 있다. 혼자 있을 때면 조용히 라디오를 듣겠다며 사다 놓고 몇 번 듣다가 외면한 목제 라디오도 있다.

 

 

한때 무슨 바람이 불어 덜컥 사다놓은 기타가 또 있다. 포켓을 열어본지 오래 되어 방구석에서 먼지 세례를 받고 있다. 먼지 앉은 내 꿈도 있다. 호숫가에 살던 어린 시절 나는 수생식물을 연구하는 식물학자가 꿈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나를 그 꿈으로부터 자꾸 먼 곳으로 데려가 여기에 내려놓았다. 어린 시절의 내 꿈은 내 마음의 어느 모퉁이에서 기약 없이 먼지에 쌓여가고 있겠다.

 

 

우리에겐 시도하다가 포기한 수 없이 많은 한때가 있다. 그것 없이는 못 살 것 같던 수많은 유혹을 쫓으며 우리는 살아왔다. 그걸 곁눈질이라 해도 좋겠다. 그 숱한 곁눈질이 있어 우리는 하나의 방향을 지치지 않고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처음부터 정해진 한 길만 보고 달려왔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행했을까. 불륜을 뺀 모든 곁눈질은 인생을 풍부하게 한다.

 

<교차로신문> 2023년 3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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