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뜰보리수나무가 차리는 밥상

권영상 2021. 7. 11. 16:33

 

뜰보리수나무가 차리는 밥상

권영상

 

 

새들 우는 소리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나마나 동네 새들이 우리 집 뜰보리수나무에 아침 식사를 하러 왔다. 하도 시끌벅적해 창문을 열고 내다본다. 새들 십여 마리가 좋은 자리에 서로 앉으려 티격태격이다. 보리수 열매가 올핸 유난히 많이 잘 익어 어디에 앉든 실컷 먹을 수 있다. 그런데도 새들 보기에 굳이 좋은 자리가 있는 모양이다. 시야가 트인 우듬지가 그 자리다.

 

 

그 자리에 집착하는 새가 직박구리거나 물까치들이다. 이들은 한 번에 대여섯 마리씩, 열 마리씩 무리를 지어 날아온다. 그런 까닭에 식전이면 집안이 새들로 북적댄다. 직박구리나 물까치 말고 요즘 새로 오는 손님이 있다. 멋쟁이 노랑 꾀꼬리다. 이들은 늘 부부동반이다. 혼자 오는 법이 없다. 별나게 예쁜 새들은 경계심이 많아 절대 혼자 다니지 않는다. 그 말고 소리 없이 가끔 가끔 들르는 까치가 있고 까마귀나 산비둘기가 있다.

 

 

이들 중 몇몇을 빼고는 우리 집 뜰 안을 제집 드나들듯 한다. 이들의 거처는 대개 건너편 부엉이산인데 마치 공중그네를 타듯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우리 집 뜰보리수나무 위에 유연하게 내려앉는다. 그들은 그렇게 모여들어 이제 한창 빨갛게 무르익는 보리수 열매로 아침 식사를 즐긴다.

식사를 할 때면 새들도 수다가 필요하다. 모르긴 해도 보리수열매의 홍보석 같은 빛깔이며 달콤함이며 부드러운 식감과 발효미에 대해 수다를 떨겠다. 그들도 어렸을 적엔 나름대로 식사예절에 대한 공부가 되어 있었겠다. 그러나 한창 맛 드는 7월의 뜰보리수 열매가 유혹하는데 공부가 대수일까. 다들 자제력을 잃고 만다.

 

 

하긴 한 식탁을 두고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그리고 들쭉날쭉한 나이대의 새들이 동시에 수저를 들이밀려면 소란스러울 밖에 없겠다. 예절도 예절이지만 맛있는 걸 앞에 놓고 그깟 수다 좀 떨고, 좀 염치없는 결례를 저지른들 뭐 어떨까. 밥이 적으면 모르겠지만 한 상 가득한데 그쯤 서로 양해를 못할까.

보리수가 익으면서부터 그들이 우리 뜰 안을 드나드는 건 일상이 됐다. 원한다면 언제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꼭 아침 식전만이 아니다. 하루 중에 그들이 시장기를 느낀다면 어느 때에 찾아온들 가로막는 이는 없다.

 

 

식사가 다 끝났다. 이제 새들은 뜰보리수나무를 이륙해 포물선을 그리듯 건너편 부엉이산으로 귀환한다. 그 모습은 마치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전투기 편대처럼 멋있다.

그들이 떠나가면 다음 순서는 작은 텃새들이다. 참새나 박새 같은, 곤줄박이나 오목눈이 같은 녀석들이다. 그들은 조용히 담소를 즐기며 식사를 끝내고는 부리 끝에 빨간 열매를 하나씩 물고 사라진다.

 

 

기척없이 오랫동안 방에서 일을 하다가 나오면 데크 난간이나 수돗가에 빨간 보리수 열매가 한두 알씩 놓여있는 걸 본다. 처음엔 누가 이런 귀염둥이 짓을 할까 했는데 차츰 살면서 작은 새들이 물어다 놓고 간다는 걸 알게 됐다. 다들 아니라 하겠지만 새들이 내게도 한 알 맛보라며 두고 간 거라 나는 믿는다. 작은 새들은 덩치가 큰 새들과 확실히 다르다. 이렇게 좀 살가운 데가 있다.

 

 

8년 전이다. 이 집을 구할 때 나는 뜰 안에 나를 위해 모과와 매실나무, 대추와 자두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나만 먹자는 생각이 미안해 새들을 위해 뜰보리수나무를 심었다. 그게 8년 동안 자라 해마다 이쯤이면 새들 밥상을 풍성하게 차린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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