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여름엔 감자반대기가 좋다

권영상 2021. 7. 3. 11:14

 

 

여름엔 감자반대기가 좋다

권영상

 

 

텃밭 감자를 캤다.

해마다 감자 캐는 날엔 가족을 위해 내가 감자반대기를 한다. 감자반대기는 고향 음식이다. 어딘가 고급진 음식이 있다 해도 어린 시절에 먹던 감자반대기만한 게 있을까. 그건 고향이 같은 아내도 마찬가지다. 바쁜 아내와 딸아이를 데려와 함께 감자를 캤으니 품삯 대신으로 넉넉히 감자반대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감자반대기는 대체로 민짜다. 그러나 이걸 좀 더 맛있게 먹으려면 다문다문 풋강낭콩을 넣는게 좋다. 햇감자로 만드는 만큼 강낭콩도 방금 밭에서 딴 풋강낭콩이라면 더 맛있다. 풋강낭콩 대용으로 완두콩을 써 보지만 감자반대기엔 풋강낭콩이 궁합이다.

 

 

반대기를 하려면 우선 강판에 감자를 갈아야 한다. 강판이란 사과나 배를 갈아 즙을 내는 구멍이 숭숭 뚫려난 기구다. 감자를 갈고 나면 그 산물을 삼베 보자기에 담아 알뜰히 즙을 짠다. 햇감자 즙은 오렌지 주스처럼 샛노랗고 예쁘다. 십여 분쯤 가만 놓아두면 녹말이 가라앉는데 감자반대기의 핵심은 이 감자녹말에 있다.

녹말을 가라앉히는 사이 찜통을 준비한다. 찜통엔 물에 적신 삼베보자기를 깔거나 삼베 보자기가 없으면 호박잎 대여섯 장을 따다가 까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감자반대기와 함께 먹을 궁합 반찬으로는 물김치가 있다. 흰 물김치 보다 보랏빛 비트 물김치가 좋다. 감자반대기의 풍미를 느끼려면 꿀 한 접시도 필요하겠다.

 

 

자, 이쯤 되면 녹말이 조용히 가라앉았을 테다.

웃물을 천천히 따라내면 그릇 바닥에 가라앉은 두터운 앙금이 바로 녹말이다. 감자 즙을 짜낸 무거리와 이 녹말을 골고루 섞는다. 감자반대기의 식감을 쫄깃거리게 하는 게 이 귀한 녹말이다. 다 섞었으면 이번엔 풋강낭콩을 넣어 버무린다. 이제 기본 과정은 거의 끝났다.

버무린 덩이에서 알맞게 떼어내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찰싹찰싹 두드린다. 오리나무잎 만큼 둥글고 납작하게 찰싹찰싹. 이제는 서로 붙지 않게 찜통에 반대기를 뉘일 차례다.

다 넣었다면 중간불로 40분쯤 가열하면 끝!

 

 

찜통에서 꺼낸 반대기에 맛소금을 가미한 참기름을 입히면 쫀득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감자를 캐는 날엔 연례행사처럼 감자 반대기를 만들어왔다. 아무 기술이랄 것도 없는 촌스럽고,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음식이지만 내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솜씨다.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이곳 안성에 고양이 이마만한 텃밭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자리를 용케 내어 해마다 감자를 심어왔다. 그 일은 고향 작은형수님께서 지난 8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감자씨를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아버님처럼 감자농사를 지어보신다니 보냅니다.”

아버지는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사시다 가셨다. 그런 아버지를 못 잊어 감자를 심겠다는 내 마음이 형수님은 기특하셨던 거다. 처음 약속하신 대로 해마다 감자씨 넣을 철이면 형수님은 신품종 감자씨와 이것저것 곡물을 함께 택배로 보내신다.

 

 

“세상에, 당신이 해 주는 감자반대기만한 맛이 있을까!”

아내는 반대기를 먹으며 내 솜씨를 추켜세운다. 딸아이도 서서히 내가 만들어주는 이 소박한 반대기 맛을 벌써 여러 해 동안 익히고 있다.

감자반대기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그보다는 퇴직과 함께 아버지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 텃밭 감자농사를 짓는 내가 대견해서 하는 말일 테다.

 

<교차로 신문> 2021년 7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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