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쥬드, 나쁘게 보지마
권영상
“아드님이 음주 운전으로 사고를 냈습니다.”
전화 한 통이 다급하게 서형 휴대폰으로 걸려왔다.
서형에겐 아들이 없다. 딸만 둘이다. 그렇지만 큰딸이 결혼했고, 그 사위를 아들! 아들! 했으니 서형은 아드님이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아버님도 음주운전 잘 아시지요? 경찰에 넘어가기 전에 피해자와 합의를 해야 하니…….”
300만원을 계좌로 보내라는 말에 두 말 않고 보냈다. 은행에서 돌아오며 큰딸에게 위로 전화를 걸었는데 그제야 그게 보이스 피싱이라는 걸 알았단다.
몇 년 전, 내 친구 서형이 겪은 이야기다. 보이스 피싱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서형 이야기를 하며 조심하라고들 했다. 서형은 사위를 아들처럼 사랑했다.
근데 사람의 일을 대체 누가 알까. 그 아들! 아들! 하던 사위가 이혼을 하고 그들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돌아온 건 큰딸과 5살 아들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답답한 서형과 나는 그 답답함을 핑계로 만났다. 그가 그 5살 아들 보리와 함께 왔다. 보리를 위해 가까운 양재천으로 갔다. 양재천 오리며 잉어며 비둘기들을 보여줬다. 보리는 인사성이 바르고 붙임성도 좋았다.
“우리 할아버지 꿈은 제가 우주과학자 되는 걸 보는 거랬어요. 키 큰 아저씨 꿈은 뭐지요?”
제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라 하면서 내게는 그와 달리 꼭 키 큰 아저씨라 불렀다.
“키 큰 아저씨 꿈이 오늘 바뀌었다. 우리 보리 결혼하는 거 보러가는 거다.”
“바꾸세요. 저 결혼 안 해요. 이혼할 거 뭣 하러 해요.”
그러고는 다리를 향해 뛰어갔다. 거기 물 아래 잉어가 떼 지어 놀았다.
“상처가 없을 수 없겠지 뭐.”
서형이 뛰어가는 보리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내가 다 알 수야 없지만 서형 가슴에 서형만의 슬픈 아픔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았다. 두 시간쯤 함께 있다가 보리가 좋아한다는 햄버거를 먹고 헤어졌다.
“키 큰 아저씨, 안녕 계세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때 보리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속으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렴.’ 했다.
혼자 걸어걸어 돌아오는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비틀즈의 ‘헤이 쥬드’가 흘러나왔다. 헤이 쥬드, 세상을 나쁘게 보지 마. 헤이 쥬드, 참아야해. 헤이 쥬드, 넌 해낼 거야.
존 레논이 그의 아내 신시아 레논과 아들 줄리언을 두고, 오노 요꼬와 재혼을 하자, 폴 메카트니는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신시아 레논을 찾아간다. 그는 무엇보다도 부모의 이혼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레논의 5살 아들 줄리언이 불쌍했다. 그때 그 어린 줄리언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폴이 쓴 곡이 그 유명한 ‘Hey Jude’ 이다.
“헤이 쥬드, 나쁘게 보지 마. 슬픈 노래라도 더 낫게 만들어봐. 그럼 더 나아질 거야.”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보리를 위해 그 노래를 불렀다. 나 나나 나나나나 헤이 쥬드.
주변에 보리 같은 아들과 함께 돌아온 딸들이 더러 있다. 결혼하는 만큼 이혼율도 높다보니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현상이지 싶다. 헤어질 거면서 뭣 하러 결혼해요! 하던 보리의 세상을 아파하는 말을 다시 생각한다.
<교차로 신문> 2021년 6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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