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비 내리는 날의 청계산

권영상 2021. 6. 28. 16:10

 

 

 

비 내리는 날의 청계산

권영상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차를 몰아 청계산으로 향했다. 원터골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비를 꺼내 입었다. 이 정도 비라면 산을 오르기에 더운 날보다 오히려 낫다. 날 좋은 날 가뿐한 산 공기를 마시며 오르는 산도 좋지만 잔비를 맞으며 오르는 산도 좋다.

7월의 묵중한 청계산은 숨 가쁠 정도로 녹음이 우거졌다. 간밤부터 내린 비에 늙은 나무들이 더러 쓰러져 있다. 거친 세상을 살아왔으면서도 요만한 부슬비에 또 힘없이 쓰러지는 게 나무들이다.

 

 

쓰러진 나무 하나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 나무를 비키느라 길을 돌아갈 때다. 이쪽 우묵한 골짜기 안의 떡갈나무 숲이 손짓하듯 나를 부른다. 나는 가던 길을 두고 그쪽으로 성큼 들어섰다. 쿨쿨거리던 산 물소리가 슬몃 사라지고, 우묵한 골짜기가 갑자기 아늑해진다. 길인 듯 아닌 듯한 그 골짜기를 밟아 쭉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나무숲에 지던 빗소리가 뜸해진다.

쉴 겸 풀섶 나트막한 바위에 걸터앉으며 주머니에 넣어간 물병을 꺼냈다. 물 한 모금을 마시며 비에 젖은 숲을 둘러봤다. 마을로부터 먼, 인적없는 산중인데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주변 나무나 산비탈이 나를 에워싸는 것처럼 아늑하다. 내가 지금 머물러 있는 이 우묵한 자리가 그런 알 수 없는 느낌을 준다.

 

 

그때 눈에 익은 나무 하나가 보였다. 앵두나무다. 비에 젖은 앵두가 빨갛다. 슬그머니 일어나 앵두나무 곁으로 다가갔다. 앵두가 익은 채 드문드문 달려있다. 앵두 하나를 따 입에 넣었다. 달콤함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앵두를 따먹는 내 머릿속에 고향집 담장 너머에 서 있던 앵두나무가 떠올랐다.

그럼, 여기가 혹시 누군가 살다 떠난 집터 아닐까.

불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산중에 웬 앵두나무일까. 그렇다고 보니 이쪽에 껑충한 살구나무도 한 그루 서 있다. 그 곁엔 늙은 뽕나무도 한 그루. 이 자리가 나를 감싸듯 아늑한 느낌을 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누군가 살던 자리가 분명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의 안온한 체온이 나를 휩싸고 돈다.

 

 

이곳이 집 자리라면 앵두나무가 서 있는 저 자리는 어쩌면 집의 남향이겠다. 살구나무나 뽕나무가 선 자리는 동향일 테고....... 그러면서 집의 방향을 잡고 보니 그 집의 크기도 어렴풋이 잡힌다. 집의 크기를 잡고 보니 그 집 마당의 크기도 잡히고, 우물이 있을만한 자리며 장독대가 있었을 뒤란도 대충 짐작이 간다.

그렇게 크지 않은 아담한 초가삼간. 그제야 풀숲 사이에 숨어 있는 주춧돌이며 깨어진 장독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한 때 누군가 살다가 떠난 집터였다.

 

 

나는 다시 매바위를 향해 젖은 숲을 헤치며 올랐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 그 집에도 순한 아버지가 살고, 자상한 어머니가 살고, 좋은 자식들이 살았겠다. 그들이 서로 아끼며 살았던 자리라 그렇겠지. 잠시 머물던 나조차 편안하고 아늑한 가정의 느낌을 받았다. 울담에 앵두나무가 있고, 살구나무가 서 있는 집은 그 집 사람들 마음씨도 좋다. 알콩달콩 머리를 맞대고 살 줄 안다.

 

 

뜸하던 비가 다시 부슬부슬 내린다. 산은 말이 없다. 사람을 품고 집을 품고, 그러다가 싫다 하면 산 아래로 내려 보내고, 혼자 남아 묵묵히 세월을 감당하며 사는 게 산이다. 비가 오면 비 맞고, 날 좋으면 해를 품고 그렇게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