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선유도 공원 가는 길

권영상 2020. 7. 17. 11:06

선유도 공원 가는 길

권영상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한강 선유도 공원이다. 정수장 잔해를 자연으로 복원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모처럼 틈을 내어 20 여 년 전에 한번 다녀온 기억으로 선유도 공원 제 1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거기서 선유도로 들어가는 다리까지는 생각보다 멀었다. 자전거 길을 피해 강기슭을 따라난 오솔길을 걸었다. 오솔길은 강 물결에 젖을 듯 강가로 바짝 다가서다가 풀숲으로 다시 들어서고를 반복한다.

 

 

“서울에 이렇게 조붓한 길이 있다니!”

한강에 나와 보기도 오래됐거니와 이런 길 걷기도 오래됐다. 강가 돌 틈엔 갯게가 기고, 얕은 물엔 피라미가 반짝인다, 자운영과 망초가 피는 길을 돌아나오자, 물버들 숲에 숨어 낚시꾼들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코로나를 비켜온 분들일지도 모른다.

 

 

양화대교 밑을 지날 때다. 강물을 꼬나보던 낚시꾼 한 분이 벌떡 일어나 활처럼 팽팽히 낚싯줄을 끌어당기고 있다. 꽤나 큰 고기가 걸려든 모양이다. 사람들이 그리로 모여든다. 낚시채로 잉어만치 큰 물고기를 끌어올린다. 숭어라고 했다.

“다시 놓아 줄 거지요?”

내가 순진하게 물었다.

“좀 있다 회쳐먹을 거라우.”

벙거지 모자를 쓴 낚시 주인이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나의 질문이 그분에겐 어이없었던 모양이다. 한강이 맑아졌다고 하지만 물고기를 식용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회로 먹다니!

사내는 숭어 턱을 강아지 목줄처럼 길게 묶어 강물 속에 던져 넣는다.

 

 

나는 버드나무 그늘이 좋은 시멘트 턱에 물러나 앉는다. 건너편에 선유도가 길게 누워있고, 낚시꾼들은 선유도를 향해 낚시를 던진다. 낚시가 날아가 떨어지는 거기, 숭어들이 뛰고 있었다. 햇빛에 숭어들이 번쩍거린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공중제비를 해서는 첨벙첨벙 뛰어내린다. 강이 꿈틀거린다.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고, 내 마음도 뛴다. 7월 햇빛이 맑은 날, 강가에 앉아 한가로이 숭어 뛰는 풍경을 바라보는 재미도 큰 재미다. 내 마음을 아는지 숭어들이 트럼펠린 위의 아이들처럼 펄쩍펄쩍 뛰며 논다.

 

 

나는 휴대폰 인터넷을 열고 ‘숭어’를 찾았다.

허균이 쓴 ‘성소부부고’에 숭어는 서해에 사는데 경강, 그러니까 뚝섬과 양화도에 이르는 한강의 것이 가장 좋다 했고,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숭어의 생선회는 맛이 달고 무독하며 비장에 좋다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는 옛 양화도인 여의도와 양화대교가 가까운 숭어의 본고장에 와 있는 셈이다. 낚시꾼들이 굳이 숭어회를 먹는다는 뜻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한강 가에 나와 숭어를 잡는 분들은 어쩌면 그 옛날의 양화도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고향의 윗분들이 하던 대로 숭어를 잡아 그 자리에서 회맛을 보려는 것이겠다.

 

 

거기서 다시 일어나 선유도로 가는 다리를 향한다. 숭어 뛰는 풍경을 보고 돌아가던 허균이나, 실학을 하던 분들의 발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분들은 순전히 걸어다니며 이 땅의 귀한 것들을 소중히 찾아 적고 고치고 했겠다.

선유도 공원에 들어선다. 옛 정수장 시멘트 구조물들의 잔해를 감싸안고 있는 줄사철나무며 덜꿩나무들을 본다. 붉게 핀 가시연꽃이며 깨어진 벽돌 밑으로 흐르는 실오라기 물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듣는다. 상처 입은 선유도의 회복이 얼마나 힘든지를 다시 느낀다.

 

<교차로신문> 2020년 7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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